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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미 Feb 11. 2022

나의 작은 선생님.

우리 집에 사는 작은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우리 집엔 나의 작은 선생님이 산다. 선생님이 산다 라니? 너무 예의 없나? 선생님 하면 떠오르는 인상. 근엄하고, 적어도 나보다는 나이가 많고, 박학다식한 선생님. 그런 선생님을 떠올린다면 나의 말이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말 우리 집엔 선생님이 산다. 인생의 다양한 순간에 답을 알려주는 선생님이 산다. '툭' 던지는 말 한마디로 '탁'치게 만드는 일타강사 선생님이 산다. 책을 읽어도 답이 없고 지혜로운 이에게 물어도 모를 때 “이건 어때?”라며 또 다른 길을 생각하게 하는 선생님이 산다.


우리 집엔 두 아들이 산다. 선비와 천방지축을 오가는 두 아들이 산다. 진지함과 방정맞음을 오가는 두 아들이 산다. 어른스럽지만 아이다움을 놓치지 않고 사는 두 아들이 산다. 도서관에 사는 건 얼마나 행복할까 말하며 도서관에서 살기를 소원하는, 책을 사랑하는 두 아들이 산다. 축구, 등산, 자전거까지 땀을 흘리며 뛰노는 것에 진심인 두 아들이 산다. 레고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는 일이 그 무엇보다 흥미로운 두 아들이 산다. 생각주머니에 있는 걸 꺼내어 자신의 세상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두 아들이 산다.


우리 집엔 나의 작은 선생님 두 아들이 산다. 아이들은 나의 선생님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배우기를 자처한다. 아이들과 8년을 지내보며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삶의 많은 부분은 아이에게 배울 수 있다는 것. 내가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을 갖지는 않는다는 것. 어른인 내가 아이들에게 더 나을 수도 있는(아이에 관한 어른의 선택과 제안이 늘 더 낫다고 생각하는건 어른의 착각이지 않을까.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은게 아니라.) 제안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아이가 어른인 나에게 길을 제시 해 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정답일 확률이 더 높다는 것.


아이들의 눈은 정확하다. 어른의 눈에 아이들은 부족해보이고 연약해 보이지만 그건 아이가 부족하고 연약한 게 아니라 어른인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다. 아이의 눈을 잃었고 아이의 마음을 잃었다. 그래서 차마 다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적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나의 작은 선생님을 통해 본 세상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작은 선생님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삶의 지혜가 얼마나 깊은지, 작은 선생님이 건네는 위안이 나의 삶을 어떻게 지탱해주는지. 그것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정확히 말하면 앞으로 이곳에서 적어 내려 갈 글은 나의 글이 아니다. 나의 작은 선생님의 말이고 글이다.


소박한 나의 글이 부모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배울 기회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도 언제가 어른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경이로움을 선물했던 아이였고 지금도 많은 순간 아이들을 스쳐지나가는 어른이기에 이 배움은 나와 상관없지 않다. 그러나 이 배움은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보지 못하고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한다. 시선을 낮춰야만 볼 수 있고 옆에 다가가야만 들리는 배움이다.  


모두의 삶에서 나의 작은 선생님을 발견하는 기쁨을 공유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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