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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미 Feb 15. 2022

사랑은 때론.

아이들의 사랑학 개론.

올해로 9살, 6살이 된 아이들은 잠에 들기 전 책을 한 권씩 들고 온다. 소위 말하는 잠자리 독서를 하기 위해서다. 사실 이 시간의 가장 큰 수혜자는 나다. 책을 읽는 것보다 중요한 건 따뜻한 잠자리에서 가장 편안한 상태의 아이와 대화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투닥거렸던 아이와 나는 이 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상태로 서로를 만난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며 책을 읽고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나에게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만드는 기쁨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기쁨이기에 이 시간 가장 혜택을 보는 건 분명 나다.  


이 날도 어김없이 아이들은 책을 한 권씩 가지고 왔다. 첫째는 일주일째 <9살 마음사전>을 들고 왔는데 이 책을 가지고 나누는 대화가 꽤나 재밌었고 인상 깊었다. 책에서 정의 내리는 다양한 마음들을 들춰보는 것에 더해 아이들과 대화로 만드는 우리만의 사전 만들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날 우리만의 사전 만들기 주제는 ‘사랑’이었다. 책을 읽고 난 뒤 아이들에게 "사랑이 뭐지?"라고 물었더니 5살이었던 둘째가 해맑게 답하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안아주는 거야, 이렇게”

(역시 둘째다. 둘째가 사랑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이 말에 감동받는 나는 아이를 안아주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 순간 조용히 있던 첫째가 말했다.


“그런데 사랑해서 안아주지 못할 때도 있어. 그래도 사랑하는 거야. 사랑은 그런 거야.”


와. 정말? 이런 인생의 진리를 네가 벌써 깨우쳤단 말이야?


사랑해서 안아주지 못할 때. 맞다. 그럴 때가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안아줄 수 없다. 하지만 너무 사랑해서 안아주지 못할 때도 있다. 너무 사랑하면 안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섣불리 안아주면 이 사람의 마음이 부서질까 봐, 안아주는 것만으로는 내 마음이 온전히 다 전달되지 않을까 봐, 차마 안아주는 것 만으로 당신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없을까 봐,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름의 깊은 생각이 담긴 아이의 말에 한 대 맞은 기분으로 “그렇지”라는 말을 되뇌고 있는데 첫째가 갑자기 나를 꽉 안아주며 말한다.


“근데 엄마 사랑해서 안아주지 못할 때도 있지만 난 안아줄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니까”


아. 아이의 사랑은 언제나 나의 예상을 뒤엎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니까 라니.

생각해보면 그렇다. 사랑하기 때문에 안아주지 못할 때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안아주었다. 마음이 부서지더라도 다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안아주고, 내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지라도 작은 조각이라도 전해지면 위로가 될까 하고 안아주었다. 더 안아주지 못해서 아픈 적은 있었어도 안아주어 후회되었던 적은 없다. 그저 안아주었다. 말없이. 토닥이며.


안아주는 행위가 얼마나 사랑을 대변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사랑이란 넓고 깊어서 말로 정의되거나 행위로 대체할 수 있는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을 전달하기에 안아주는 것만큼, 그저 안아주는 것만큼 따뜻한 전달방법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안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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