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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멘토 May 24. 2017

21 죽음을 기억하라: 스토아 학파 1

나를 위한 고대윤리학 입문 by 박정민(연구공간 환대)

스토아의 현자들     


키프로스섬의 도시 키티온에 제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언젠가 그는 최선의 삶을 사는 법에 대해 신탁을 구했는데, ‘죽은 이들과 교류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이 말을 옛사람들의 책을 읽으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독서에 힘썼다. 무역상이었던 그의 아버지도 아테네에 다녀올 때마다 책을 사다 주었다고 하니 제논은 상당한 독서광이었던 듯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무역상이 된 제논이 한 번은 페니키아에서 염료를 싣고 항해하다가 배가 난파되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그는 아테네 외항인 피레우스 항에 상륙한다. 아버지가 사다주던 책들이 생각났을까?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그는 아테네로 가서 아예 서점에 들어가 앉아 책을 구경했다. 그중에서도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 회상>을 넋 놓고 읽다가 서점 주인에게 물었다. “이 책에 나오는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 있나요?” 그때 바로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이 서점을 지나갔고, 서점 주인은 그를 가리키며 “저 사람 따라 가보슈.” 하고 말했다. 서점 주인이 가리킨 사람은 바로 디오게네스의 제자, 퀴니코스 학파의 크라테스였다. 제논은 뭔가에 홀린 듯이 크라테스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의 제자가 되어 철학을 연마하기 시작한다.  

제논은 퀴니코스 철학자들의 가르침에는 대체로 공감했지만 그들의 기이하고 극단적인 행동까지 따르기에는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한 번은 크라테스가 제논을 훈련시키기 위해 죽 그릇을 들고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니게 했다. 이것은 남들의 비웃음에도 익숙해지기 위한 퀴니코스 학파의 훈련법이었다. 하지만 제논은 쭈뼛거리다가 끝내 죽 그릇을 내던지고 달아났고, 크라테스는 “뭐가 겁나서 도망가나, 애송이!” 하며 비웃었다고 한다.

첫 스승이었던 크라테스를 떠난 것은 제논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 후로 여러  학파를 거치며 다양한 철학을 섭렵했고 점차 자신만의 독자적인 철학을 시작하게 된다. 제논은 공공건물인 강당의 주랑(柱廊)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했는데, 기둥이 늘어서 있고 벽에는 그림이 그려진 이곳은 ‘울긋불긋한 주랑’, 즉 스토아 포이킬레(stoa poikilē)로 불렸다. 사람들은 스토아 포이킬레에 모인 제논과 그 학생들을 가리켜 ‘스토아 사람들’, 즉 스토이코이(stōikoi)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스토아 학파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 제논

제논이 창시하고 클레안테스와 크뤼십포스를 거치면서 체계적으로 정리된 스토아 철학은 이후 로마에 전해져 많은 동조자들을 얻었다. 제논을 비롯한 초창기 인물들의 저작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 탓에, 사실상 우리에게 더 친숙한 스토아 철학자들은 로마인들이다. 세네카는 뛰어난 문필가이자 정치가였다. 네로 황제의 스승으로 잘 알려졌으나 후에 폭군 네로의 광기에 의해 살해된 불운한 운명이기도 했다. 세네카가 남긴 「행복한 삶에 관하여」, 「섭리에 관하여」,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등은 스토아 철학의 내용을 평이한 문체로 풀어준다. 그는 또 슬픔을 겪고 있는 지인들을 위로하는 글도 썼는데 「마르키아 여사에게 보내는 위로」, 「폴뤼비우스에게 보내는 위로」, 「어머니 헬비아에게 보내는 위로」 등이 그것이다. 

귀족이었던 세네카와 달리, 노예였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에픽테토스 자신도 노예였다. 게다가 다리를 절었는데, 일설에는 주인이 부러뜨렸다고도 한다. 후에 노예 신분을 벗어나 자유민이 되자 스토아 철학자가 되어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에픽테토스의 어록을 요약, 정리한 <엥케이리디온>이라는 책이 지금까지 널리 읽힌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황제로서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를 이끈 이른바 5현제의 한 사람이다. 그는 <명상록>이라는 책에 자신의 내면을 성찰한 메모를 남겼는데 이 책은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과 더불어 가장 널리 읽히는 스토아 철학서가 되었다.      



자연을 따르는 삶


스토아철학은 자연학, 논리학, 윤리학의 영역을 모두 포괄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로마인들의 실용적 성향과 맞물리면서 실천적 성격이 더 강해진다. 철학의 실용성을 강조하기 위해 에픽테토스는 철학의 탐구 과제를 시험적으로 세 가지로 구분한다. 이를테면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치자. 첫째 과제는 원칙을 실제로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둘째 과제는 원칙의 근거를,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면 왜 안 되는지’를 논증하는 것이다. 셋째 과제는 그 논증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첫 번째 과제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인데 실제로 사람들은 세 번째 과제에 모든 시간과 정력을 쏟는다고 꼬집는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로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어떻게 [이론적으로] 논증되는지를 쉽게 논하고 있는 것이다.(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52) 

    

이렇게 되면 철학을 한다는 것은 선대 철학자들의 책을 읽고, 그것을 풀이하는 것에 그치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선대 철학자들의 말이 남김없이 다 풀이될 경우 철학자들은 할 일이 없어질 것’이라며 에픽테토스는 쓴웃음을 짓는다. 반면 그는 철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척도를 오로지 실천에서 찾으려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크뤼십포스의 책을 나에게 설명해주시오’라고 말할 때, 나는 그의 가르침에 일치하고 부합하는 행동을 보여줄 수 없는 것에 대해 얼굴을 붉힐 것이다.(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49)

     

그렇다면 스토아 철학자들이 추구한 삶은 어떤 것일까? 창시자인 제논은 여러  학파의 철학을 공부했지만 출발점은 역시 퀴니코스 학파였다. 그래서 스토아 학파의 윤리학에서 퀴니코스 학파의 특성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자연에 따라 살라’는 가르침이다.      


행복하게 사는 것과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세네카, <행복한 삶에 관하여>, 8)  

    

자연에 따라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 자연을 자주 접하는 것? 하늘을 자주 보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맨발로 흙을 밟는 것? 사방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오늘날에는 이런 일들이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그런데 자연에 따라 산다는 것은 단지 생활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자연’은 우리의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도 있다. 우리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자연, 우리의 내적 본성, 스토아 학파는 이것을 들여다보고 여기에 귀 기울일 것을 주문한다.  

그렇다면 우리 안의 자연을 따르는 삶은 무엇일까? 인간 사회가 만들어놓은 외적 규범들을 무시하고 거스르는 것일까? 그렇기도 하다. 디오게네스를 비롯한 퀴니코스 학파의 철학자들이 보여준 것이 이런 삶이다. 그런데 ‘자연에 따라 산다’는 것은 문명의 규범을 비껴가고 탈주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연은 그 나름대로 엄정한 질서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에 따라 산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삶만 의미하지도 않는다. 자연에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얼굴도 있지만 차갑고 엄숙한 얼굴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죽음이다. 모든 생명체는 성장하고, 병들고, 노쇠하고, 마침내 죽음에 이른다. 이것이 모든 생물의 자연본성이다. 하지만 인간은 죽음과 무관한 것처럼, 마치 자연의 질서에서 비껴나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너는 천년만년 살 것처럼 행동하지 마라. 죽음이 지척에 있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4:17)     

 

우리 삶에 죽음의 가능성이 언제나 깔려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 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죽음을 모른 척한다. 그래서 80이 넘은 노인에게도 “아직 정정하신걸요”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물론 이 말은 가식이 아니라 상대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소망’은 ‘사실’이 아니다. 자연은 사실로 이루어진 것이지 소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에픽테토스가 말하기를, “제 자식에게 입 맞출 때 ‘내일 이 아이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야’라고 마음속으로 속삭여야 한다”고 했다. “그건 재수 없는 말이야.” “천만에!” 하고 에픽테토스는 대답했다 “자연의 과정을 뜻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재수 없는 말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곡식이 베어진다는 표현도 재수 없는 말일 것이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1:34)     


돌잔치에서 발설하기라도 했다간 뺨맞기 좋은, 독설가 디오게네스에게나 어울릴 말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라도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가치 판단 이전에 냉엄한 진실 아닌가. 이것을 억지로 외면하는 것은 자연이라는 현실을 등지고 공상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스토아 철학자들은 죽음의 그림자가 누구에게든 예외 없이 드리워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아니, 오히려 죽음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생각할 것을 주문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 추방, 그 밖에 무시무시하게 보이는 다른 모든 것들을 날마다 네 눈앞에 놔두어야만 한다. 특히 모든 것들 중에서 죽음을. 그러면 너는 결코 그 어떤 비참한 생각도 가지지 않을 것이고, 또한 어떤 것을 지나치게 욕망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2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명상록>에서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죽음의 운명을 상기시킨다. 이 글을 쓴 이가 로마 제국의 1인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읽는다면 사형 집행을 기다리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죄수의 일기로 착각할 법도 하다. “출생이 여러 요소들의 결합이라면 죽음은 여러 요소들로 해체되는 것이며, 조금도 곤혹스러워할 일이 아니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4:5) “잠시 뒤면 너는 재나 유골이 될 것이며 이름만, 아니 이름조차 남지 않게 될 것이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5:33) “머지않아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모두가 너를 잊게 될 것이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7:21)

황제의 신분에도 이런 비관적인 자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기이할 정도다. 그런데 이 황제가 노예 출신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말을 인용하며 동조하고 있다는 데서 드러나듯이, 그의 눈에 비친 인간은 신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동일한 운명에 처해 있었다. 곧 죽어서 소멸하리라는 운명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나 그의 노새 마부나 죽은 뒤에는 같은 처지가 되었다. 그들은 둘 다 똑같이 우주의 생식력이 있는 이성으로 환원되었거나 아니면 원자들로 분해되었기 때문이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6:24)      


로마 제국 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상처 입은 자들의 철학

    

스토아 철학자들의 이런 피해의식은 공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불행과 상처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는 인간의 운명에 극히 예민하다. ‘너 자신을 알라!’ 이것은 소크라테스 이래 철학의 오랜 격언이었다. 여기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따르면 ‘나’는 영혼이며, 주체적인 존재이자 천상의 고향으로 돌아가 불멸의 신들과 함께할 고귀한 존재다. 그러나 스토아철학자들의 자의식은 다르다.     


“너 자신을 알라!” 인간은 무엇입니까? 아무리 작은 충격에도, 아무리 작은 진동에도 깨지는 그릇입니다. 죽어 없어지는 데 커다란 폭풍은 불필요합니다.(세네카, 「마르키아 여사에게 보내는 위로」, 11)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인간은 튼튼하게 포장되지 않은 채 이삿짐 속에 있는 유리컵 같은 존재다. 이삿짐 박스가 이리저리 밀쳐지는 동안 유리컵은 사방으로 부딪히며 불안한 존재를 유지한다. 이렇듯 왜소해진 자의식, 세계로부터 상처 받을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자각이 스토아 철학의 근본 정조를 이룬다. 흥겨운 음악으로 하루를 여는 사람들에게 찬물이라도 끼얹듯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아예 하루를 시작할 때부터 삶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품으라고 권하기도 한다.      


날이 새면 너 자신에게 말하라. ‘오늘 나는 주제넘은 사람을, 배은망덕한 사람을, 교만한 사람을, 음흉한 사람을, 시기심 많은 사람을, 붙임성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2:1)     


이 어두운 페이지들을 지나다 보면 결국 스토아 철학의 기본 착상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것은 ‘나에게 달려 있는 것’과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 사이의 날카로운 구별이다. 스토아 철학에는 자신의 능력을 진단하고 한계를 긋는 냉철함이 있다.      


존재하는 것들 중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은 생각, 충동, 욕구, 혐오, 한 마디로 우리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다.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은 몸과 소유물, 평판, 직위를 비롯해서, 한마디로 우리 자신이 하지 않는 모든 일이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본성적으로 자유롭고 저지되지 않고 방해받지 않으나,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약하고 노예적이며 저지되고 다른 것들에 의존한다.(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1)   

   

세상은 내 것이 아니다. 세상 대부분의 것들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많은 좋은 것들은 우연히 나에게 머물러 있다가도 서둘러 나를 떠나간다. 결국 스토아 철학은 무력한 자들의 철학, 상처 입은 자들의 철학이다. 이런 세상에서도 나는 행복할 수 있는가? 티끌처럼 미미한 존재인 나도 행복의 정복자가 될 수 있는가? 이것이 스토아 철학의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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