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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body Sep 28. 2019

독일 와인 여행 3

코헴으로 가는 길

2일 차


교통지옥 서울에서 20년 넘게 운전을 했고 외국에서도 많이 해봤으니 강 따라 한적한 시골길 타는 것쯤이야... 하고 자만했던 것부터 잘못이었다. 실수를 하고 고개 숙일 일이 생겨야 겸손의 미덕을 다시 깨닫는 나에게 여행은 배움의 장이다.


코블렌츠 인근 비닝겐이라는 마을에 있는 와이너리 헤이만 뢰벤슈타인Weingut Heymann-Löwenstein에 11시 반  전에 도착한다고 말을 해두었던 차라 렌터카를 인계받자마자 서둘렀다. 내비게이션과 구글맵을 따라 잘 가는 듯하다가 헤매는 바람에 늦어버렸고, 사과로 인사를 대신해야 했다.


시로 정식한 건물 전면
건물 앞을 장식하는 작품



서늘하고 고즈넉한 안마당


현재 사용하지는 않는 오래된 압착기


1980년에 와이너리를 설립한 라인하르트 뢰벤슈타인은 “모젤의 이단아”라는 별명에 걸맞게 개성이 강한 와인을 뚝심 있게 내놓는다. 모젤 하류 지역 급경사지의 점판암 토양에서 자라는 포도로 뛰어난 와인을 생산하는 이 와이너리는 독일 고급 와인 생산자협회인 VDP 회원이다. 또한 클레멘스 부쉬 등의 생산자들과 함께 Fair and Green eV를 창립해서 지속가능한 생산방식을 추구한다.


향긋한 골기와 효모향 가득한 셀러와 젝트 제조 테이블
와이너리 설립 전부터 있었다는 유서 깊은 저장고
독일산 대형 오크통과 스테인리스 통
병입한 와인
밭에서 가져온 점판암

지하 저장고에는 포도밭과 연결된 파이프가 지나가서 밭에서 나는 바람소리, 돌에서 나는 소리 그리고 자연의 소리가 발효, 숙성 중인 와인에 전달된다. 식물이나 동물에게 음악을 틀어주는 이치와 비슷하다.



여러 포도밭에서 가져온 점판암 샘플


가장 맛있었던 울렌 L 리슬링


와인 생산방식에 대해 먼저 눈, 귀, 머리로 받아들였다. 양조장과 지하 저장고를 둘러보면서 들은 설명에 따르면 양조방식은 유기농 혹은 비오다이내믹 생산에 가까웠다. 혹시 인증을 받았거나 받을 계획이 있는지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규정에 매이기보다는 자연의 순리에 맞춰 자연스럽게 맛있는 와인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인 열정적인 생산자다. 와이너리에 자생하는 천연 효모로 발효되는 포도는 각 밭의 특징, 혹은 토질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푸른색, 회색, 붉은색 점판암 모두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준다.


그다음에 시음장으로 올라가서 코와 입으로 포도밭을 맛보았다. 토양에 따라 근엄하거나 화려하거나 부드럽거나 단단했지만 전반적으로 진하고 풍부한 편이었다. 그전에 맛보았던 모젤 와인에 비해 현란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음노트는 instagram@seoulseung




30분 정도 가면 엘츠 성Burg Eltz이 보일 줄 알았더니 강가를 벗어나 구릉지대에 있는 마을 사이를 지나서야 산속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주차장이 있었다. 말이 주차장이지 공터 앞에 부스 하나 놓고 주차비 받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이었다. 그래도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에 기쁘게 €2를 냈다. 등산복 차림으로 성까지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우리는 1인당 €2 내고 셔틀버스를 탔다.


12세기부터 지금까지 엘츠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성 내부는 가이드 투어로만 볼 수 있다. €10 입장료를 내면 15분마다 시작하는 투어에 합류할 수 있고, 영어 투어도 있다.



염소젓 치즈와 샐러드


음식을 노리는 친구

엘츠 성 식당에서 산과 숲을 보면서 먹은 점심이 유물보다 인상 깊었다. 부끄럽지만. 성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였는데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 갑옷과 무기들, 호빗족이 사용했을 법한 자그마한 침대와 가구들, 그리고 두꺼운 돌로 만들어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는 음식 저장고와 같은 유물들이 있었다. 역시 사진은 현대인에게 필수 불가결한 기억 보조장치인가 보다.


중세 건물들이 잘 보존된 마을인 코헴에 도착했다. 모젤 강변 2차선 도로가 큰길인 작은 마을이었고, 숙소는 중심부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강가에 있었다. 오래된 목조건물이라 엘리베이터도 없었지만 식당 카운터 겸 숙소 프런트를 맡은 젊은 여자분이 고맙게도 방에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셨다.


모젤 강변 도로가 코헴의 큰 길



강남에서 다리 건너 강북으로




강을 따라 산책을 하며 마을을 둘러본 다음 강 건너편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7시만 되어도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먹고 마시는 일 밖에 없었다. 이렇게 좋을 수가!



강 건너편에 있는 Hotel Hieronimi  1층에 있는 식당 테라스에서 지는 해를 보며 저녁을 먹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가족 소유의 Fuhrmann-Burg 포도밭에 있는 오래된 수령의 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민든 와인이었다.


생각해 보면 음식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는데, 모젤 강바람 양념 덕분인지, 긍정여신 언니가 살짝살짝 뿌려주는 칭찬 MSG 때문인지 아주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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