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21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21. 살아있음에 모든 것이 감사한 오후 (2018. 9.1.토.)
몸의 상태에 놀라 잠에서 깨어나기는 처음.
잠에서 깨어나기 전부터 나의 몸은 온통 소름이 돋은 듯 쎄한? 상태다.
어쩌면 나는 완전히 기에 눌렸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새벽, 알람소리를 못 듣고 눈을 뜨니 5시 40분이 넘은 시간,
부랴부랴 금강권 돌리기를 50번 한 뒤 늦게라도 새벽기도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렀다.
검정색 카니발 차량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은 상태로 어두운 새벽길에 나서 마침 급하던 나는 그 차를 인식하지 못하고 우회전을 했고, 그 차는 갑자기 뛰어든 내 차에 화가 난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상황을 인식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고, 이미 그때는 그 차가 내차를 왼쪽에서 칠 듯이 치고 들어와 앞길을 막은 상태였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 하마터면 그 차를 뒤에서 들이받을 뻔했다.
뒤로 후진을 하니 카니발은 직진을 하며 내 차 옆에 더 타이트하게 자신의 차를 붙여서 의도적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내차와 검정 카니발은 종이 한 장 차이의 간격으로 후진하거나 직진하거나를 반복하면서 계속 대치 상황. 내가 왜 그에게 그런 소름끼치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 아마도 내가 그에게 완전히 포위당하고 갇혀있다는, 어떤 방향으로도 그 상황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막막함과 갑작스런 상황에 당혹스러움이 모든 감각을 다 닫아놓았던 듯. 그런데 그 때 내 차 뒤에서 빵빵거리는 차 소리가 들렸다. 마침 택시가 그 좁은 골목을 따라 큰 도로로 나가기 위해 들어왔던 것... 아~~~~~ 관세음보살이라도 찾고 있길 잘했나보다 싶은 순간, 카니발 뒤에도 승용차 한 대가 라이트를 껌벅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진짜 관세음보살이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검정카니발은 택시에 길을 터주기 위해 잠깐 옆으로 비켜섰다. 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잽싸게 핸들을 틀어서 검정 카니발의 족쇄를 풀고 나왔지만 그 소름 돋는 기 눌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마침 내 차를 택시가 바로 따라 붙어 카니발은 더 이상 나를 따라올 수 없는 상황. 그래도 도망치듯 달려 다시 갤러리아 타임월드 사거리에서 빨강 신호등에 대기하게 되자 뒤에 오는 모든 차들이 카니발로 보이기 시작했고 법당에 도착할 때까지 온 몸에 소름이 더 돋으며 온몸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법당 안으로 들어서면서도 내 차 번호판을 보고 끝까지 저승사자처럼 따라올 것 같은 심리적 압박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30배쯤 절을 하고 나자 마음이 조금 안정되기 시작했을까? 갑자기 오늘 새벽의 상황이 검정 카니발이라는 타자와 나와의 관계가 아니라 크리슈나무르티의 ‘조그만 나’, 내 내면의 작은 사람을 이루고 있는 기억의 산물들인 내적 관찰자와 나의 관계로 변환되어 생각되기 시작했다.
어제 정년퇴임식에서 선생님들과 식사하며 새로 오실 교장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무성했다. 오래전 연수원에서 6개월을 함께 파견교사로 일한 기억을 바탕으로 나의 사견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이미 거의 10년 전의 일, 내가 알았던 그는 이미 그가 아니다. 내가 그 시간동안 많은 변형을 겪으며 새로운 사람이 되었듯이(긍정도 부정도 아닌 단순히 변화된 ) 새로 오실 교장선생님도 그 때의 사람이 아님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나는 10년 전 과거에 기반 한 인물평을 현재의 일처럼 늘어놓았던 것이다.
당연히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쓰레기와 같은 기억에 둘러싸여 스스로를 꼼짝할 수 없이 가두어 놓고 눙크스탄스(기독교 신비가들이 말하는 영원한 현재를 일컫는 말)의 무경계의 순간, 현재 안에 세상의 모든 시간과 공간과 우주가 함께 하는 그 시간을 온통 암흑의 거대 괴물, 현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거나 피해망상이거나 열등감이거나 등에 눌려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새벽의 검정카니발이 내게 가한 물리적 심리적 압박은 사실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스스로 거대한 쓰레기인 기억의 덩어리들을 자신의 주변에 쌓아놓고 그곳에 갇힌 상태로 스스로 불행이나 좌절, 피해의식과 같은 부정적 심리의 족쇄를 차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눈감은 자, 깨어있지 않은 자의 세계가 왜 그토록 암울한 것인지를 직감한다.
새벽기도가 끝나고 도반들이 나를 위로한다고 콩나물 국밥을 먹자해서 식사도 하고 24시 도너츠 가게에서 커피도 마신다. 도반들의 수다는 깊어지고, 나는 새벽 도너츠 가게에서 새로 나온 치즈 도너츠 세트를 바라보며 금강권 돌리기를 시작한다.
금강권 돌리기가 600회를 넘어설 즈음 온 몸을 휘감고 있던 한기가 빠져나가는 느낌? 950회를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그림일기를 쓰고 나니 온 몸에 맥이 탁 빠진다.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켰다가 그냥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고 두 시간 쯤 뒤 다시 새벽의 억센 소름 돋는 기운이 몸에 살아나면서 잠에서 깨었다. 식은땀에 등이 축축하다. 내가 새벽에 완전히 기에 눌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도 좋지 않다. 무작정 금강권 돌리기를 두 세트 돌리고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진하게 내린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오늘 새벽의 일들을 기록할 힘이 생긴다.
난 갑자기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밝은 빛을 생각한다.
“ 단테여 뒤돌아보지 마세요. 빛만 보고 앞으로 전진 하세요”
모든 시간이 빛처럼 지금 이 순간이다.
기억은 지나간 과거일뿐 이미 삶이 아니다 .
창문 앞 감나무를 휘감는 가을바람이 지나는 이순간이
내 삶의 모든 시간이며 빛이다.
살아있음에 모든 것이 감사한 깨인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