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권을 돌리는 아침 14

by 김은형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44. 굽 높은 슬리퍼 (2018.9.24.월)

새벽.

굽이 높은 슬리퍼를 신고 돌리는

명절 아침 금강권 돌리기는 불균형하다.

호흡도 끝까지 다 들여 마셔지지 않고,

뱉아 내는 숨 또한 가볍고 얕다.

딛고 선 땅과 발의 균형이 곧 삶의 균형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무조건 목표를 향해 기계적으로 행하던 불균형한 금강권 돌리기를 600회에서 접는다.


오후.

성묘와 골목길 투어를 마치고

가족들 모두 올갱이국을 먹으러 나간 친정집 거실에서

아버지가 생전에 수집하신 소나무 그림을 보며 금강권 돌리기를 한다.

마치 강원도의 적송 숲에 온 것처럼

몸도 마음도 모두 편안하여 호흡도 깊고 몸도 유연하다.

500회를 마치고 나니 친정집 거실 만큼의 평화가 마음과 온 몸 안에 깃든다.

함께 저녁식사 하러가지 않았다며 속상해하시는 엄마의 잔소리도 즐거워질 만큼.


밤.

삶의 균형은 굽이 높은 슬리퍼를 벗어버린 맨발의 상태만으로도 가능하다.

다만 불균형을 느끼면서도 멈추지 못하거나 벗어버리지 못하며 집착하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불편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굽 높은 슬리퍼를 벗고, 굽 높은 고무신을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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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45. 엄나무와 엑스맨 (2018.9.25.화)

알싸한 가을 새벽 공기를 휘휘 저으며 금강권 돌리기를 한다.

어쩌면 벌써 희끗한 초겨울이 당도한 걸까?

하지만 정원의 식물들은 여전히 푸르게 창창하다.

특히 오늘 새벽 엄나무의 장엄한 웨이브는 더 짙은 색으로 굽이친다.

오랜 시간 벽돌과 철사로 조형한 엄마의 자랑이다.

가시 돋친 엄나무의 유연한 웨이브가 독특해 엄마 집은 엄나무 집으로 불린다.

나는 금강권을 돌리며 구불구불한 엄나무의 기형적인 가지에서 ‘이식’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어쩌면 엄나무의 웨이브는 엄마의 생각이 이식된 기형이거나 돌연변이(?)다.


어젯밤 우연히 TV에서 ‘엑스맨 아포칼립스’라는 영화를 봤다.

엑스맨은 뮤턴트, 돌연변이들의 이야기를 기본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이야기의 구조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방향은 다양하겠지만 의식, 신념, 잠재의식, 생각, 상식 등 다양한 사유체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이식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아포칼립스는 프로페서X의 정신세계로 침투해 그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식시켜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파괴적인 세계를 구축하려고 한다. 이때 프로페서 X는 싸움 과정에서 자신과 아포칼립스의 정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역이용하여 아포칼립스와 정신 내부에서 싸움을 시작한다. >


기존의 제도와 상식이 다른 게 아니라 틀리다고 인식하는 돌연변이인 뮤턴트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어쩌면 세상의 기존 사유체계일 거다. 기존의 상식과 제도를 일반화하고 자신의 다름을 불편하거나 틀린 것으로 확정해버리고 자신의 힘을 약화시킨다.

어쩌면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뮤턴트다. 구부러진 엄나무도 무턴트일 수 있다. 그러나 돌연변이를 인정하는 다양화된 사회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더 큰 힘을 위해 이식되어지는 포장된 가치들과 지식체계들을 선별하고 막아내는 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미디어라는 괴물에 의해 엄청나게 무분별한 가치들을 이식받는다.

‘행복과 웰빙은 좋은 것이다’까지는 공감할 수 있지만,

‘행복과 웰빙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다양한 가치규정들이 진짜인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물어야한다.


엄마집 엄나무의 구불구불한 매력은 엄마의 미적 취향이 이식된 결과물이다. 사람의 모습과 삶의 태도와 자세 또한 그렇지 않겠나? 우린 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며 일정 부분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상대에게 이식시킨다.

명절에 만난 가족들에게도 난 이미 내게 이식된 또 다른 생각과 가치를 이식시키고 있었다. 어쩌면 페이스북에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를 연재하는 것 또한 그런 과정일 수 있다.

나는 단순히 ‘운동은 좋고, 그것을 나누는 것은 더 좋다.’라는 단순한 논리를 실현하기 위해

새벽부터 금강권을 돌리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관련 책자를 읽는다.

짤막하고 보잘 것 없는 글이라도 쓰고 지우고 읽고를 반복하며 완성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가진 생각이 진짜 이로울 것인가? 돌연변이라 할지라도 가치로운가?에 대해서는 반추해보지 않았다.

어쩌면 태극권의 금강권은 건강에 좋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니까 가치롭다고 우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화수미제(火水未濟)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시작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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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46. 비탈길 (2018.9.26.수)

어제 저녁부터 지독한 몸살에 시달린다.

정신과 몸은 정말 뗄래야 뗄 수 없는 것 같다.

생각과 의식이 뒤집어지니 몸도 따라 뒤집어진 듯.

어젠 모든 것이 멈춘 느낌이랄까?

차도 밧데리 방전으로 멈췄고,

멀쩡하던 비단 고무신의 높은 굽도 떨어져나갔다.

자연히 광주비엔날레에 다녀오려던 일정도 취소.

오후 늦게부터는 몸살 기운이 돌더니 저녁부터는 앓아누웠다.

새벽 5시, 눈을 뜬다. 그러나 일어날 기운은 없다.

6시가 다 되어 간신히 일어나 삼배를 하고 금강권 돌리기를 시작한다.

팔도 제대로 올릴 수 없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삐걱거리는 몸을 참는다.

300개쯤 돌리자 조금 수월해졌나? 속에서 토감이 인다.

지금 멈추면 오늘은 두 번 다시 금강권 돌리기를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 때가 그칠 때면 그치고 행할 때면 행하여 그때를 잃지 않는 것이 밝은 것이니...”

어떤 일이든 고비는 있기 마련인데,

아마도 금강권 돌리기도 반절쯤 오다보니 이제 한 고개 넘나보다.

비탈길의 고됨을 이기고

오늘도 임무를 완수한 나의 머리를

내가 스스로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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