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권을 돌리는 아침 15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47 - 50

by 김은형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47. 크리스토플 티팟 책갈피 (2018.9.27. 목)

여전히 흔들거리는 몸을 일으켜 금강권을 간신히 50번 돌리자마자

온 몸에 힘이 다 소진되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털석 주저앉는다.

두 번 더 일어서서 반복하자 더 이상 일어설 수도 없다.

소파에 앉은 채로 금강권을 돌리며

내가 경계에 걸려있구나 생각하다 우연히 『백범일지』에 눈이 갔다.

땅에 막대기로 선을 긋고 이 선을 넘어오면 내 아들이라고 아버지에게 선언하던 백범!

어쩌면 그가 그린 경계는 참 스마트하고 명철한 경계였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펼쳐드니 오랫동안 찾던 크리스토플 티팟 책갈피가 떡 하니 웃고 있다.

책을 3분의 2쯤 읽고 더 이상 읽지 않았던가?

다 읽고 그냥 아무데나 꽂아 놓았던 것일까? 그 또한 경계가 모호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금강권 돌리기를 끝까지 마쳐야한다는 것이다.


막강한 바람의 속도를 거슬러 올라가야만, 거센 강물의 흐름을 거슬러 가야만

경계에 끼인 상태가 아닌

경계를 없앤 상태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가벼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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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48. 유괘한 50진법 (2018.9.28. 금)

잠에서 깨자 눈도 뜨지 않고 누운 채로 침대에서 앉은 채로 다시 50번씩 2회 금강권을 돌린 뒤 일어서서 돌리기 시작한다. 나의 세계가 108배의 숫자세계에서 이제 50진법, 또는 2진법의 세계로 다시 재구성되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몸살을 앓은 며칠 동안 이종호흡의 2진법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엄지발가락에 힘도 들어가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어지럽다. 아마도 내일은 좋아질 거다. 거실로 나가지 않고 침실에서 금강권을 돌리다 보니 벽에 걸어놓은 108염주가 눈에 들어온다. 정토불교대학 졸업할 때 법륜스님께 받은 졸업선물! 참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108염주는 36개의 번뇌를 3회 반복하여 절하면서 몸과 마음의 아상을 내려놓고 소멸하는 108배 수련에서 주로 사용한다. 동양에서 8이란 숫자는 중요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불교에서는 상스러운 상이 8가지가 있고 볍륜도 8각형이다. 연꽃의 잎은 8개이기 때문에 득도를 뜻한다.

주역에서는 팔괘를 이용하여 세계를 표시하며, 명성황후가 고종황제에게 가례 때 받은 비녀도 28개로 별자리의 상서로운 의미를 담았다. 오늘 아침 문득 108배를 36회씩 3세트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가볍다. 금강권을 50회씩 20세트도 하는데? 왜 그동안 108배가 금강권 1000번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던 것일까? 시간도 훨씬 짧게 걸리는데... 마음의 문제? 아니, 습관화된 고정관념? 어쨌든 36회씩 3세트라면, 108배는 너무나도 가벼운거다.


숫자 2는 협력과 균형, 긴장과 대립을 의미하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선과악, 중국은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태극과 조화의 숫자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계도 모두 2진법으로 구성되어져있는지도 모르겠다. 좋고 싫고, 이쁘고 밉고, 하얗고 까맣고, 니편 내편, 통 불통, 맛있고 맛없고, 행복하고 불행하고, 0 아니면 1... 등등등. 심플하지만 임팩트 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두려운 세계인지도 모른다. 둘 중 하나에 속할 수밖에 없다는, 선택의 여지가 달랑 둘 뿐이라는 건 어쩌면 시작부터 갇힌 세계다. 근원자체부터 둘 중의 하나로 자유가 종속되어져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가끔 컴퓨터의 계산체계가 무서울 때도 있다. on off, yes no, 참 거짓...


그것에 비하면 금강권 돌리기의 50진법은 완전 좋다. 적어도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숫자이기에. 티벳 사자의 서에서도 사자들이 49일 만에 새로운 생명을 향해 몸을 던져 새 삶을 선택한다. 그러니 다음 날인 50일째는 새 삶의 첫날! 그래서 50대인 나는 더 즐거운가? 새로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라서? ㅎㅎㅎㅎㅎ

머릿속으로 숫자놀이를 하며 금강권을 돌리다보니 숫자를 잊고 몸을 잊는다.

어쩌면 우리 몸도 빌렘 플루셔의 말처럼 핸드폰과 같은 기계(기관)일지도 모른다. 뇌에 종속된 기계인데, 기관의 역할을 하는? 그렇게 보자면 디자인 철학자 빌렘플루셔(Vile'm Flusser)는 천재다.

오늘 아침 문득 빌렘 플루셔의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기술적 형상의 세계』, 『피상성 예찬: 뉴미디어 세계로의 상상력』, 『테크마티크 문화』, 『그림의 혁명』 등등... 그를 디자인철학자의 시각에서만이 아닌 커뮤니케이션 학자로서의 관점을 통해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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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49. 동서남북 (2018.9.29.토)

한밭수목원에 차를 대고 이응노 미술관 입구에서 금강권을 돌린다.

동서남북의 풍경이 모두 마음에 들어온다.


동: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이 솜사탕처럼 가볍게 아름답고

서: 딸아이가 처음 롤러스케이트를 배우며 나를 빙빙 돌던 나무의 벤치가 정겹고

남: 드문드문 무심하게 놓여진 조각상들의 무심함이 재밌고(조각이 좋다는 의미는 아님)

북: 이응노 미술관의 아름다운 건축미와 정원의 조화가 아름답다.


이렇게 사방이 모두 좋으니 무엇 하나 특징 있게 담을 것이 없다.

어쩌면 특별할 것이 없는,

사방이 모두 편안하고 담담하여 평화로운 이 상태가 궁극의 행복일지도 모른다.

다리에 힘이 생기고 몸에도 활력이 조금 붙으니

동서남북 어디라도,

납덩이처럼 무거운 세권의 책을 등에 지고 금강권을 2000번 돌린다 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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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옹기종기 (2018.9.30.일)

금강권 돌리기만 돌고 도는 것은 아니다.

빙 돌려 앉은 옹기종기 쿠션들도 재잘재잘 돌아가며 정답고

핸드폰 하나를 돌려 가며 안부와 덕담을 나누는 사람들도 정답다.

금강권 돌리기를 시작하며 서래마을 사람들과

커피로, 책으로, 빵으로 서로 응원과 감사를 나누다 보니

금강권 돌리기 횟수만큼 조금 더 열리는 새로운 세계를 본다.


타이치 브레인들의 아지트인 카페 ‘서래수’는

마치 우리 동네 카페처럼 익숙하고,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도 마치 오랜 지인처럼 익숙하다.

확실히 사람의 거리는 마음의 거리.

극단적으로 외향적인 나도 가끔은 낯설고 수줍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분들과 전화로 안부를 나눌 수 있는 것은

금강권 돌리기라는 공통의 관심사!^^


쿠션처럼 옹기종기 둘러앉아 빵과 커피로 마음과 꿈을 나누는 사람들이

포근한 쿠션처럼 따듯하게 다가오는 아침!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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