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권을 돌리는 아침 17

by 김은형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54. 어? 뭔가 좀 달라진? (2018.10.4.목)

비알레띠 모카포트에 커피를 올려놓고

금강권 돌리기를 하려고 나이트가운을 벗고 옷을 갈아입다가

화장대 거울에 비친 나를 본다.

어? 뭔가 좀 달라진?

갑자기 유쾌한 불안감에 나도 모르게 낄낄낄 웃음이 새어나온다.

유쾌한 불안감이란 이제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


19세에 대학생이 된 나는, 모든 남자가 긴 머리에 허리가 잘록하고 나풀대는 스커트의 소녀스런 여자들만 좋아한다는 일반론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읽으며 뚱뚱한 몸의 아내를 그리는 것으로 세계전쟁의 참혹한 고통을 이겨내던 병사가 휴가를 맞아 아내를 찾았지만, 말라버린 아내를 보고 절망하여 자살해버리는 장면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세계전쟁의 참혹성이 충격적인 것이 아니라 뚱뚱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도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놀랍게 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믿는 세계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반듯하고 확신에 찬 19세 대학생이었다.

역사소설인 『고요한 돈강』에 대한 레포트 제출을 색정소설인 『돈쥬앙』을 밤 세워 읽고 제출하여 A학점을 맞은 것은 더 웃기다. 난 ‘돈’자만 보고 서점에서 책을 잘못 구입했으며, 『돈쥬앙』을 읽으며 교수님이 왜 끝없이 이어지는 색정의 세계를 숙제로 냈는지 알 것 같다고 썼다. 나는 젊은 남자는 젊은 여자만 좋아한다는 일반론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으나 할머니들에게만 흔들리는 『돈쥬앙』의 한 등장인물을 보며 나의 세계가 지진을 일으키는 경험을 했고, 이것이 바로 교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배움의 핵심 포인트라고 레포트에 적었다. 나중에 교수님이 연구실로 부르셔서 갔더니, 자네가 책을 잘못구입해서 읽었으나 레포트의 핵심은 자신이 내준 숙제의 핵심이라서 A학점을 주시겠다는 말씀이었다. 지금생각해도 훌륭한 인품의 교수님! ㅋㅋㅋ

오늘 아침 나는 두 소설 속에서는 완전 사랑받을 수 없는 여자로 등극한다.

적어도 레마르크 소설 속 남편과 살찐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들이 실망할 것 같다. 하하하

50대가 되면 허리와 배를 중심으로 비만해지는 것은 물론 중력의 법칙에 의해 눈꼬리도 피부도 모두 땅을 향해 쳐지기 시작하는데

화장대 거울에 비친 나는 팔뚝 살도 가슴도 모두 위로 올라간 느낌이랄까?

확실히 겨드랑이와 옆구리를 중심으로 상체 라인이 살아나고 있다.

금강권 돌리기와 호흡 이종의 효과? 두 달 쯤 꾸준히 한 운동이니까?

그러나 내 신체의 변화를 아직 일반화할 수는 없다.

나만의 변화일 수도 있으니까.

유쾌한 불안감에 시달리며 혼자 낄낄대는 오늘 새벽!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가 되어가는 자신감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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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55. 시선의 방향은 욕망의 방향이다. (2018.10.5.금)

치즈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딸아이와 오랜만에 장을 봤다.

구입항목이 11가지 정도인데, 5가지가 치즈이거나 치즈 맛이거나.

금강권을 돌리고 커피를 끓이러 주방으로 가니 커다란 치즈볼 통이 눈에 들어온다.

“시선의 방향은 욕망의 방향이다.”


커피를 들고 내방으로 돌아오며 세상도 치즈볼 통과 같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샛노랑 치즈파우더를 뒤집어쓰고 둥근 모양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같지 않다.

같은 통에 들어있어 밀접하지만 하나는 아니다.


매일 새벽 금강권 돌리기를 하며

매일 매일 글과 그림을 올리는 내 삶의 패턴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패턴이 있는 것과 패턴을 읽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의미는 경험에 의해서 정해진다.

경험을 많이 하고 반복을 많이 할수록 명확해진다.


그냥 하는 것.

금강권 돌리기가 어떤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인지 생각지 않고

좋고 싫고를 떠나 시절 인연 따라 그냥 하는 것.

좋아서 즐겁고 싫어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그냥 해보는 거다.

삶의 수동성은 어쩌면 삶의 지혜일거다. 해탈일거다. 경지일거다.

그래서 오늘 새벽도 1000번의 금강권을 돌리고 호흡이종으로 숨을 가라앉힌다.

기억과 감정은 yes or no의 행동을 선택하도록 한다.

그냥 일음일양의 패턴이랄까?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의 의미와 가치를 정한다.

금강권 돌리기가 갖는 내 삶의 의미와 가치도

어쩌면 100일이 지난 후에 내가 갖게 될 기억과 감정에 의해 정리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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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56. 감나무를 적시는 가을비 (2018.10.6.토)

태풍은 중심에 있을땐 무섭지만

한 발짝 벗어나 바라보는 것은 참 아름답고 더욱 안락하다.

오늘 아침 금강권 돌리기는 지루할 틈 없이 즐겁게 몸이 활짝 따듯해진다.

2층에 사는 덕분에 감나무를 찾아오는 새들과도 자주 마주치고

새들의 모닝 수다에 새벽잠을 깨기도 하는 호사를 누린다.

태풍 때문인지 오늘 아침 유독 분주하게 새들이 감나무로 찾아든다.

빨갛게 익기 시작한 감은 부리로 톡톡 건들고

아직 파랑색이 완연한 땡감은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날아가는 새들...


아! 익지 않은 감이 떫은 이유가 있었구나!

아직 그들은 훼손되어서는 아니 될 존재들.

씨앗이 영글어 새 생명을 잉태할 준비가 될 동안은

그 무엇도 감히 저 새파랗게 어린 감의 존재에 손을 댈 수 없도록

감은 스스로 떫은맛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었구나!


감나무에서 ‘퍽’하고 떨어져 폭탄처럼 작렬하게 터지는 홍시의 붉고 끈적한 과육들은

내겐 공포의 대상이다.

어쩌면 내가 어려서부터 홍시를 무서워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까?

홍시가 ‘퍽’하고 터지는 순간이 바로 생명 폭발의 순간!

감나무가 자신의 존재를 땅에 뿌리내릴 첫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

가을 태풍으로 흔들어 떨어진 홍시는

‘퍽’하며 과육을 모두 벗고 땅 속으로 들어가

겨울 내내 땅속에서 따듯했다가

봄바람 맞고 떡잎 내밀고 5월에 꽃 피워 8월에 열매를 맺는다.


감나무에 앉은 새들 덕분에

오늘 아침 금강권 돌리기는 하루의 문을 활짝 열어주며

온 몸의 온도를 더욱 따뜻하게 높여준다.

난 갑자기 어린 시절 실에 꿰어 목에 걸었던 감나무 꽃을 목에 걸고

훌라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행복감에 젖는다.

감나무를 적시는 가을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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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57. 몸이 나를 기억한다. (2018.10.7.일)

몸이 나를 기억한다.

9시가 좀 넘어서 일찍 잠들기도 했지만,

알람 소리 없이 3시가 조금 넘어 눈을 떴다.

나이 때문인가?

기억 때문인가?

평소보다 1시간을 일찍 일어나니 조금 더 여유롭다. 더군다나 휴일이다.

금강권 돌리기도 따라서 더 여유롭다.

아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무념무상이랄까?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가 생기니 호흡도 더 차분하다.

문득 무조건 달리는 나를 몸이 기억하고

샤넬 쇼의 모델들이 몸에 걸친 체인들처럼

과유불급의 삶을 찰랑찰랑 연결하며 끊임없이 소란한 것이구나 싶다.

부드러운 실크 러플처럼 좀 여유 있을 순 없나? 하고 반문하는 사이

금강권 돌리기는 벌써 1000회!

나의 몸은 이제 빙글빙글 돌아가는 금강권 돌리기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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