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98 - 100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98. 동쪽하늘 금성과 스페셜‘S’ (2018. 11. 17. 토)
동쪽 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금성을 바라보며
6시50분에 대전역에 도착하니 ktx 특송 서비스가 주말엔 8시부터란다.
내려놓았던 짐을 다시 차에 싣고 주차장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다
미처 돌리지 못한 금강권 100개를 마저 돌린다.
어? 사이드 밀러에 붙어있는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S’ 발견!
아~~~~~~~~ 저 전설의 ‘S’를 그동안 잊고 있었구나. 하하하하
내 차는 소울인데다 “respect value” 스티커까지 붙어있는 고품격 리무진?ㅋ이다.
특히 ‘S’가 빠진 “re pect value”
2012년 떡공 학생이었던 K는 자동차 튜닝과 디자인에 몰입해있는 멋진 예술가였다.
다만 그의 디자인은 3년 내내 아주 정확히 똑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그려낸다는 특징이 있었다. K는 자폐를 앓고 있었다. 그는 모든 선생님의 차를 자신의 디자인대로 튜닝하고 싶어 했고, 그 첫 번째 실험대상이 내 차였던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자동차용 스티커를 사와서 내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붙였으나 학생문제로 정신없던 나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교무실로 찾아와서 선생님 차를 언제 팔거냐고 물었다. 왜?라고 물으니
“제가 튜닝해 놓았잖아요.”한다.
“응? 언제? 어디를? ” 했더니 내 차로 데려가서 먼저 사과를 했다.
“사실 제가 잘 붙이려고 했는데 스티커를 놓쳐서 ‘S’가 사이드밀러에 붙어버렸어요. 죄송합니다.”
“아니, 왜 내 차에 이런 걸 붙여놓았니? ”
“선생님 자동차를 내 디자인으로 미리 튜닝해서 선생님이 중고차 시장에 내놓으실 때 제가 사려고 미리 튜닝을 시작했어요.”
하하하하 웃겨서 쓰러질 뻔했다.
내 차 사이드 밀러의 ‘S’는 이토록 특별하다.
그런데 더한 특별함은 7년여 동안 비바람과 수십 차례의 세차에도 불구하고 떨어지지 않고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K’는 지금쯤 꿈꾸던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어있을까?
아이에게 꿈을 주었던 “re pect value”는 ‘S’가 없어도 그래서 그대로 가치롭다.
어쩌면 자동차에 대한 아이의 마음과 정성이 ‘S’에게 7년의 세월을 견디게 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성은 고난을 이긴다. 어깨가 조금 아프고 매우 분주한 아침이었지만, 동쪽 하늘을 빛내는 금성과 7년을 견뎌온 ‘S’덕분에 아주 행복하고 즐거운 아침이었다.
99는 왠지 11과 닮아
거의 다 찼으되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다.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99.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새삼 깊이 호흡되는 아침 (2018. 11. 18. 일)
특별한 일정이 없는 일요일 아침의 금강권 돌리기는 여유로움이 있다.
오늘 아침엔 한 달 전 모닝 티 테이블을 꾸미며 스트레이트 잔에 꽂았던 여린 세이지가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금강권을 돌린다.
두 개의 가느다란 실뿌리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여리고 어린 세이지가 든든한 나무로 자라가는 기초가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여린 세이지는 나보다 훨씬 든든하고 강건하다.
금강권 돌리기를 100일 동안 하고 나면 환골탈태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은 참 유혹적이었다.
어쩌면 나는 유혹적인 희망으로 금강권 돌리기에 과잉집중하며 시간과 에너지와 다른 기회를 낭비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변형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소모적이기 때문이다.
변형된 삶이란 나의 존재 전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동안 생성된 다양한 마음의 동요와 혼란은 변화를 위한 올바른 궤도에 올라섬을 말하는 것일 수 도 있다. 모든 창조성은 카오스 상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고통을 동반하지 않은 영적 성숙은 없다, 미지의 것,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영적 성숙을 말한다. 그 과정 중에 어떤 단단하고 투명한 것이 자신의 중심에 있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된다.
불과 3달여의 금강권 돌리기도 내겐 성숙의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은 극에 이르면 변한다.
자신이 하나의 목적이었다가 어떤 것에 대한 도구로 전락하기도 하고, 확신에 찼던 믿음 또한 변형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혼란 또한 새로운 변형의 전주곡임과 동시에 자신의 결정이며 자아이동의 순간이다.
술렁이는 혼란의 순간에 자아를 조금 이동시키면 마음은 고요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움직임의 순간을 차분히 기다리게 된다.
상황에 의해 존재가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상황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치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새삼 깊이 호흡되는 아침이다.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100. 공감과 헌신은 기적을 만든다. (2018. 11. 19. 월)
다른 날과 똑 같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어떤 일이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의례는 매우 가치롭다. 냉장고에 붙어있는 마그네틱도 본래 그 존재 그대로인데, 우리가 그것을 어떤 프레임으로 읽어내고 패턴화하며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읽히거나 근원부터 다른 가치의 것으로도 인식되기 때문이다.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종료를 기념하기 위해 내가 준비한 의례는 3개.
- 이끔. 배려, 지지, 응원과 격려에 감사인사 전하기
- 새벽에 청소하고 샤워 후 금강권 돌리기.
- 새로운 책 사서 읽기.『멍 때리기의 기적』
100일이라지만, 네 달에 걸쳐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도래하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금강권 돌리기를 하며 일어난 변화를 정리해보니 작은 변화가 눈에 보인다.
태극권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무방비 상태로 진입하며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사유, 새로운 가 치 체계 및 새로운 세계를 탐험했다.
나는 자신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고집불통 존재임을 더욱 확실히 자각했다.
주역을 읽고 공부하며 자연과 세상의 이치와 겸손의 지혜에 조금 더 눈을 떴다.
순종하는 삶의 거룩함으로 주인으로 살겠다는 의식이 수정처럼 투명하고 단단해졌다.
일의 일관성과 지속성에서 파트너십과 협업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보는 것과 인식하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 크고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매일 규칙적인 글쓰기를 통해 학생 작가 지망생들과 그룹이 만들어졌다.
이 변화들은 노자의 말처럼 긍정이거나 부정이거나 절대적인 것은 없다. 마치 내가 대전 대표미인이라 자처하는 것도 하나의 농담일 뿐 상황에 따라 자신에 대한 은유와 서술의 형태는 달라지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공감과 헌신은 기적을 만든다. 여섯 살이던 딸아이의 20여 년 전 편지처럼 올바른 신념과 믿음과 사랑은 세월을 뛰어넘어 늘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낸다.
‘오늘은백화점애가썼다.노트하고스케치북을샀습니다.엄마힘들지았나요.네가그래서엄마한태편지를써서요.엄마사랑해요.그리고엄마생일때네가에쁜옷사줄께요.아참그리고신발도사줄께요.하트.꽃.예쁜자신모습.’
지치고 힘겨울 때마다 내게 웃음과 희망으로 힘을 주던 딸아이의 편지는 이젠 하나의 기도문과도 같다.
어쩌면 100일 동안 한 팀이 되어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최선생님과 밝은빛 태극권의 타이치 라이프 팀들의 공감과 헌신 또한 운동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를 하루도 쉬지 않고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을 거다.
이제 ‘금강권 돌리기 프로젝트 100’ 팀은 해체되지만, 다시 한 번 더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공감과 헌신은 기적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