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일상 여행자 2018. 1.11.목.
“받아들이지도 말고 거부하지도 말라 다만 깨어있어라. 다만 보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선입견이 없이 보라”
- 오쇼 라즈니쉬 -
1유로를 주고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길게 줄을 선 노틀담 성당 정문 앞에 선다.
문제를 해결한 뒤여서 일까? 성당 뜰에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들이 정겹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대학생이 준 이태리 레몬 사탕을 관광객들과 나눠먹으며 어두운 성당 안으로 들어선다.
흐린 날씨에 스테인드글라스의 성스러움은 빛을 잃었지만,
성당 안 모든 공기가 입장한 모든 사람들의 삶을 종교적인 색채로 변형시킨다.
나 또한 경외감에 무릎 꿇는다.
대리석으로 만든 잠든 성인의 손이 하얗게 변해있다.
나도 그의 손위에 손을 얹자 어떤 성스런 삶의 기운이 전해져온다.
어쩌면 잠든 성인도 ‘다만 깨어있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매 순간 깨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성당 한 귀퉁이에서 낮은 목소리로 기도를 하는 노 수녀님과 눈이 마주친다.
노 수녀님의 눈이 촉촉이 젖어있다.
그의 기도는 무엇이었을까?
우리 같은 세속인들만 성스러운 순간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구나.
어쩌면 우리는 성스러운 공간 자체가 주는 엄청난 파동에 감성까지 흔들리고 있는 것일 것이다.
노틀담 성당을 찾은 사람들은 모두 심연에 숨겨진 자신을 만나기 위해 모여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틀담에 쭈그리고 앉은 악마도, 날개를 편 천사도 모두 잠들거나 깬 차이만 있을 뿐 그들은 늘 같은 공간에 공존한다.
콰지모도와 같은 추함도, 에스메랄다의 아름다움도, 타락한 신부의 욕망도 모두 노틀담 안에 공존한다.
오랜 시간동안 노틀담은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안기도 하고, 세상 밖으로 내보내기를 반복하며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받아들이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으며 다만 문을 열고 닫는 단순한 행위 하나로 자신의 깨어있음을 증명했다.
노틀담을 나서며 나는 내 삶도 또한 어쩌면 노틀담과 같아야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그저 문을 여는 거다.
그 안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음이나 양이나 그들의 선택일 뿐이고,
바람을 붙잡지 않는 그물처럼
또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받아들이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으며 여일하게 살아가는 것,
인도 철학자의 가르침을 오늘, 파리의 노틀담 성당으로부터 전해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