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는 삶의 거룩함 몽마르트..

2018. 1.13. 토. 파리의 일상여행자 14.

by 김은형

몽마르뜨를 오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랜만에 게인 파리의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공기는 쾌청하다.

나는 몽마르뜨를 오르며 언덕 끝에 있는 시크레쾨르 대성당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푸르고 쾌청한 공기는 바로 원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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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파리 시내 또한 정겹다. 10년 전 딸아이와 살라미 바게트를 들고 바로 그 자리에 서서 비둘기를 피해 다녔던 사랑스러운 추억도 떠올랐다. 더없이 좋은 날씨와 함께 문득 내 마음도 청정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성당 안으로 들어선다. 예수님이 십자가 못에 박히는 모자이크를 바라보며 갑자기 그가 놓아버린 마음과 세상과 생각과 욕망에 대해 깊은 공감으로 전율이 일어난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 고통의 순간에 존재 자체를 맡겨버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존재를 놓아버린 모습이랄까? 자신의 의도대로, 계획대로 알량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도달하기 위해 애를 쓰는 중생들의 모습이 아니라 더 큰 하나님의 뜻에 온 몸과 존재 전체를 맡긴 “ 오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라는 기도가 들려올 듯한 그 모습에 엄청난 감동이 일었다. 10년 전 딸아이와 시크레쾨르 성당을 둘러 볼 때는 본 기억도 없는 저 작은 하나의 모자이크가 오늘 내 존재 전체를 뒤 흔든다.


마태수난곡의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를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가 우리를 위해 불러주고 있는 느낌이랄까?


갑자기 나 자신의 알량함에 부끄러움이 확 올라온다. 세속적인 모습은 물론이고 무지한 욕망덩어리인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스스로 대단히 헌신적인 교육활동과 삶을 살고 있다고 자처하는 나의 알량함과 교만함이 존재 전체를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청정한 자신의 본질과 본성을 포기하지 않고 기꺼이 죽음을 맞았던 예수님의 숭고함과 비교되며 깊은 전율과 감동과 무게로 다가온다.


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망각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청정하고 오염되지 않은 자신의 숭고함과 존재 자체의 정결함은 잊고 세속적인 잣대에 오염되어 얼마나 많은 시간 자신을 학대하고 타인을 원망하며 살아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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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의 숭고함과 존귀함은 누군가 나를 규정하는 방식에서 초래되는 것이 아님을, 그 존재 자체가 스스로 갖는 태도와 자세에서 비롯되어지는 것임을 나는 다시 몽마르트 성당에 이르러 깨닫는다.


몽마르트 언덕을 오른다는 것은,

어쩌면 바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하필이면 언덕위에 성당이 있는 것이 단순히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건축학적 의미가 아니라 성당을 향해 오르는 동안 스스로 깨어있는 상태가 되도록 가파른 오르막길 위에 성당을 지었을지도 모른다는 ....


몇 년 전 통영국제 음악제에서 마태수난곡을 들으며 가졌던 감동 이후 예수님의 삶을 통해 얻은 아주 큰 감동이고 가르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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