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4. 일. 파리의 일상여행자 17
고흐가 마지막 여생을 보냈던 오베르 쉬아즈를 찾아 나섰다가 정말 심각하게 길을 잃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수많은 친절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던 날도 없었다.
메모리 게스트하우스에서 동숙하는 친구들의 말로는 파리 북역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들었으나 나는 숙소 출발 후 3시간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오베르 쉬아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북역에 가서 파리근교로 향하는 열차를 갈아탄 뒤 열차만 세 번을 갈아타야 비로소 오베르 쉬아즈에 도달할 수 있는 매우 어려운 길찾기 방정식이었다. 파리 북역에서만 10번도 더 질문을 하고 1층부터 4층까지 다섯 번쯤 왔다 갔다를 반복해서 행한 후 드디어 기차에 올라타고 첫 번째 장소에 무사히 도착,
그러나 그 때부터가 문제였다. 도대체 그 많은 기차 중 나는 어떤 기차로 갈아타야하는 것일까?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는 거다.
내가 가진 실마리는 단 오베르 쉬아즈라는 단어 하나,
기차를 기다리며 담배를 피우는 젊은 프랑스인 친구들에게 단어가 적힌 수첩을 내미니 바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서로 상의를 한 뒤 그중 흰색 장미꽃을 한 송이 들고 있던 ‘페즈’라는 친구가 나를 데리고 안내로 갔다. 안내하는 직원은 매우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직접 데려주는 것이 더 빠를 거라고 설명한다. 한참 설명을 듣고 난 뒤 나는 다시 청년의 안내로 그들과 같은 기차에 올랐다.
19세의 그들은 18세의 나이에 죽은 페즈의 여자 친구 무덤에 장미꽃으로 조의를 표하러 가는 중이란다. 페즈는 터키인으로 파리에 사는 모슬렘이고 여행이 취미라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서로 페이스북을 교환하고 친절한 그들은 내렸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 그들이 신신당부한 역에 일단 내린다.
아무도 없다. 이제 오베르 쉬아즈까지는 단 한 정거장. 그런데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모른다. 그 때 천사처럼 맞은편 지하도에서 어린 여자아이와 그녀의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물론 철길 너머로 나는 큰소리로 ‘오베르 쉬아즈 트레인’을 외치기 시작한다. 스마트한 그는 금방 알아듣고 나를 그가 있는 방향으로 건너오라 한다. 하지만 영어를 못하는 그는 나보다 더 난감하다. 그때 그의 여자 친구인듯 보이는 여자가 나타나자 설명을 멈추고 따라오라 손짓한다. 결국 나는 친절한 프랑스인의 차를 타고 오베르 쉬아즈에 도달한다. 감사한 마음에 내가 쓰던 립스틱을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니 너무 기뻐한다. 그리고 딸아이에게는 뭔가 귀여운 느낌의 물건을 선물하니 기쁨이 얼굴에 가득 번졌다. 따듯한 감사가 담긴 비주로 인사하며 헤어진다.
오베르 쉬아즈.....그 작은 마을이 주는 감동이란 참........
상하이에서 온 용일이란 여대생과 함께 고흐 동상을 보고, 가제의사의 집을 찾아 나서고, 라이브러리를 구경한다. 작은 지역 시장의 생동감이란 또한 얼마나 푸른 날것이냐? 나는 신선한 생선을 사고 싶어진다. 그리고 한국식으로 매운탕을 끓여서 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한 그릇씩 나누고 싶어진다. 월드 베스트상을 탔다는 고다 치즈 또한 너무 맛있었다. 고흐는 이런 시장 풍경과 정겨운 사람들의 모습에서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을까?
동네를 둘러본 뒤 프랑스에 와서 가장 맛있는 송아지 간 요리와 연어스테이크, 달팽이 요리를 먹고 우린 너무 행복하다.
오는 길은 무척 고생스러웠으나 무척 스마트한 중국 여대생 용일 덕분에 나는 이제 돌아갈 걱정이 없이 느긋하게 식사를 즐긴다.
레스토랑의 사장님과 여종업원도 모두 너무나 유쾌하다.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나도 오베르 쉬아즈 주민으로 한 달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베르사이로 가는 기차역을 향해 다시 발길을 돌린다.
고흐가 오베르쉬아즈에서 새파랗게 생생한 날것의 삶의 공간에서 살았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위안이 된다.
고흐의 그림 <오베르 쉬아즈 교회>의 왼쪽 하늘의 짙푸른 깊이가 처음부터 나를 울리며 정화시킨 것 또한 어쩌면 고흐의 영혼이 그 하늘에 박힌 별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심하게 길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찾은 고흐의 마을 오베르 쉬아즈는,
마치 내가 갈 길 잃고 헤맬 때마다 고흐 그림에서 찾은 위안처럼
생생하고 따듯하고 감동적인 곳이었다.
참 감사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