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6. 화. 파리의 일상여행자 24
Avenue des Champs-Élysées, Maison Cartier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를 읽으며 공주가 되기를 꿈꾸지 않았던 소녀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를 동경하는 이유는, 그들이 백설처럼 예쁘면서 공주이거나 마법으로 공주가 되는 기적 보다는, 항상 멋진 왕자와 화려한 무도회에서 춤추며 프러포즈 받고 결국 행복하게 살았더라는 간택의 환상이 더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대체로 우리는 마치 ‘화려한 삶이 곧 행복이다’라는 공식을 세포에 각인한 채 태어난 존재처럼 공주와 왕자의 삶에 대한 엄청난 환상을 갖고 있다. 영국왕실에 대한 관심이나, 덴마크, 네덜란드, 일본, 모나코, 부탄 등등 세계 모든 왕실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늘 세상의 핫 이슈다.
샹젤리제 거리를 걷는다. 그러나 그 어떤 명품 매장에도 들어가지는 않는다. 다만 스쳐 걷다가 시선을 끄는 디스플레이 방식에 시선을 고정하고 바라본다. 내 발걸음을 최초로 멈추게 한 까르띠에 매장의 표범 쥬얼리.
까르띠에 쇼윈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나는 오랜만에 표범디자인의 쥬얼리를 보며 윈저공의 사랑이었던 심프슨 부인의 목과 팔에 걸렸던 빨강색 루비와 다이아몬드 장식의 목걸이와 팔찌를 떠올린다.
일반 소녀들이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를 읽으며 공주나 왕비가 되기를 꿈꾸었다면, 나는 중학생 때부터 엄청나게 읽었던 잡지책들 속에 등장한 윈저공과 심프슨 부인의 러브스토리를 읽으며 나도 왕세자를 만나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유? 그녀의 지위가 부러웠던 것이 아니라, 윈저공이 심프슨부인에게 선물한 어마어마한 보석들, 특히 그 보석들이 갖고 있는 예술적 감각들이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기 때문이었다.
빨강색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루비라는 보석에 빠져든 것도 바로 심프슨부인이 착용한 까르띠에 목걸이 때문이기도 했고, 표범의 빨강 루비 눈알 때문이기도 했다. 돌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 내 아내가 착용하던 보석이 다른 여인의 피부에 닿지 않게 하라”
윈저공의 유언과 달리 심프슨부인은 그것을 경매하여 파스퇴르 연구소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겨 소더비에 나오게 되었다는데, 얼마 전 그녀의 팔찌가 80억에 경매 되었다고 한다.
쇼핑할 일이 없었던 나는 샹젤리제 벤치에 한가하게 앉아 까르띠에에서 80여종을 제작했다는 심프슨부인의 주얼리를 검색하다가 깜짝 놀랄 사실을 접했다.
그 둘이 히틀러에 우호적이었고, 2차 대전 당시 히틀러를 독일로 가서 만나기도 했다는 사실. 그리고 심프슨 부인은 윈저공과 사랑할 당시 유부녀였다는 이유로 둘의 결혼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윈저공이 왕위 즉위 후 일년을 채우지 못하고 권좌에서 내려왔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영국주재 독일대사와도 뜨거운 관계이면서 영국의 기밀을 독일로 넘긴 정황이 포착되어 그 둘의 결혼을 국가적 차원에서 절대 승인할 수 없었고, 윈저공이 공작으로 내려오자 바로 바하마와 프랑스 등으로 유배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둘은 잠시 영국을 방문하기는 했지만 영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프랑스에서 주로 삶을 영위한다. 패션아이콘이 되어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찍은 윈저공과 심프슨부인의 사진은 둘 사이에 담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유추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윈저공이 보석을 좋아한 심프슨부인을 사랑한 이유로 “우리는 보석에 스토리를 담는다” 는 기치를 내건 까르띠에는 더욱 유명해졌다.
그러나 윈저공은 왕위를 내려놓을 만큼 심프슨부인과 평생 진정한 사랑을 했을까? 사랑 때문에 보석이 필요했던 걸까? 보석 때문에 사랑이 유지되었던 걸까? 심프슨부인의 유명한 발언에 비밀이 숨겨져 있던 듯하다.
“ 부자일수록 좋고, 날씬할수록 좋다. ”
영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타고난 요부였던 심프슨 부인의 변덕스러운 성격을 받아내기도 힘들었던 윈저공의 삶의 비애가 푸른 표범 네크리스의 깊은 심층에서부터 발산되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생젤리제 까르띠에 매장에 걸린 표범 주얼리는 아름답다.
마치 심프슨 부인이 윈저공과의 결혼식 드레스로 입었다는 심프슨블루와 같은 푸른 사파이어 눈빛을 빛내며 오늘도 여전히 매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