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8. 브뤼셀의 일상여행자 2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브뤼셀 대학에 왔다. 주연샘은 8시부터 시험이 있고, 나는 주연샘을 기다리며 브뤼셀 대학교 구내 식당에서 카푸치노를 마신다. 맛없는 커피.....다만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과 어둠이 걷히는 대학 캠퍼스, 그리고 심한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프랑스에서 벨기에 까지 오는데 1시간 30분인 것도 놀랍지만, 대전에서 ktx를 타고 부산에 가는 것처럼 가벼운 여행이라 더 놀랐다. 우리가 북한과 통일을 반드시 꼭 빨리 해야 하는 이유를 유럽여행을 통해 경험하는 아이러니라니...... 만약 북한과 통일이 된다면, 유럽까지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얼마든지 쉽게 여행할 수 있다. 생각만 해도 참 짜릿한 이야기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도 타고, 중국 운남성에 가서 커피도 사오고, 몽골 초원과 바이칼 호수의 알싸한 공기 속에 게르의 아늑함도 느껴보고, 뭐든 어디든 섬이 아니면 유라시아대륙 어디든 달려갈 수 있다.
벨기에 사람들의 아침도 참 부지런하다. 한 밤 중처럼 어두운 시간에도 사무실에 불이 들어와 있고, 학생들도 정말 많이 등교한다. 해가 일찍 뜨는 한국에서 산다는 것의 행복을 새삼 느낀다. 낯선 곳에 여행을 왔고, 또 낯선 대학생들의 공간에서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나는 이미 처음부터 유럽에서 살았던 사람처럼 이 공간에 너무나 익숙하다.
에피톤프로젝트의 <나는 네가 아프다> 음악을 핸드폰에서 플레이시켜 이어폰을 꽂고 듣는다. 창밖의 대학 풍경들이 훨씬 아름답게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여행과 음악과 미술과 독서와 글쓰기는 내 삶에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들일까? 어쩌면 내 삶 자체인지도 모른다. 난 다시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어떤 남자가 나의 영혼을 이렇듯 단 한순간에 송두리째 빼앗을 수 있을까?
음악에 휘둘리고 음악에 의해 고조되며 음악에 의해 승화되는 나의 영혼은 흔들리는 나뭇가지 꼭대기에 올라 여지없이 흔들리며 겨울 태풍을 정면으로 맞는다. 브뤼셀의 음산한 겨울 기류의 흔들림에 따라 여지없이 나를 잊고 나를 버리고 미친 듯이 흔들리고 날아오르고 승화된다.
이 모든 세상의 아름다움을 음악에 실어 날아오른다는 것은 또 하나의 경지다. 나는 음악과 공간과 이 땅의 공기와 바람이 주는 뉘앙스에 온통 휘둘린다. 내가 나를 잊고 청정한 나의 영혼 그대로 더 민감한 필링으로 나는 새로운 이 세계를 느낀다.
음악 한 토막으로 이렇듯 가벼운 영혼으로 날아올라 이 공간과 시간을 영유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완벽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지극한, 너무도 지극한 경지일거다. 한 곡의 음악이 흐르는 동안 난 완벽하게 영 깊은 심연의 영혼으로 전율하며 춤 춘다.
이 지극한 영혼의 필링을 이 감각을 무엇이라 말해야할까? 이 호흡, 이 멈춰지는 숨결, 지금 이 순간 그대로 멈춰진 한 호흡만으로도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그 어떤 장애도 문제가 될 수 없는 이 경지의 절정을 무엇이라 표현해야할까? 완벽하게 행복하다.
나는 무아지경이 되어 내면으로 흐르는 정화의 물길을 본다. 무아의 지경과 무아의 경지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순간 멈춘 호흡 속에 절정감으로 확연하게 경험한다.
예술과 여행이 인간들의 삶을 고양시키고 위안을 주며 구원이 되는 이유를 이제 나는 명확하게 깨닫는다. 겨울 태풍에 몸살하는 저 나뭇가지가 늘 내게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를 나는 이 춥고 음산한 이국의 브뤼셀 대학 학생 식당에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처럼 그저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송두리째 맡기고 흔들릴 수 있는 것, 이게 바로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