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우리는 라이프스타일 교육을 해야 하는가?
모란꽃이 피어나는 5월의 기다림은 아버지를 닮았고, 연산홍을 기다리는 5월의 간절함은 엄마를 닯았다.
내 이야기다.
모란꽃을 유독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그 귀한 붉은 꽃송이를 성큼 잘라 화기에 꽂고, 신록 가득한 마당 한가운데 들마루를 펴고 앉아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하고 노래를 부르시며 뽀얀 막걸리 한잔으로 신록을 예찬하셨다. 친정집 화단에 피는 울긋불긋 연산홍도 아버지가 위암이 재발하여 2차 수술에 들어가시기 전에 엄마를 위해서 화단에 심어놓으신 꽃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연산홍이 피는 5월은 아버지의 사랑 고백을 다시 듣는 그리움 가득한 사랑의 계절이다. 이처럼 부모님이 꽃으로 나눈 삶과 사랑의 찬가는 나에게도 카피되어 나 또한 소중하고 귀한 분들에게는 꽃으로 마음을 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갖게 되었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햇볕만 짱해도 피크닉 바구니와 돗자리를 챙겨 보온병 뚜껑에 커피를 마시는 심플한 피크닉에서부터 캠핑과 여행 등 여가를 즐기는 삶의 여유도 어린 시절 부모님의 라이프스타일에서부터 초래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정갈하고 조화롭게 밥상을 차려내시던 엄마의 살림솜씨는 물론 반듯하게 정돈된 빨래들, 돼지고기 한 근으로 들통 가득 김치찌개를 끓여 동네 모든 집에 돌리시던 온정과 인심들, 마루와 샘가에서 어른들이 나누시던 다양한 대화들, 지루한 문학전집들을 읽고 또 읽으시던 아버지의 나른한 휴일, 풀 먹인 홑이불을 토닥거리던 다듬이 소리와 아버지 신문 넘기시는 소리 등...이 모든 부모님의 일상들은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현재 내 삶의 지향점이나 취향들은 대부분 부모님과 살았던 어린 시절에 키워졌고, 성장 기간을 거치면서 조금씩 더해지거나 삭제되며 수정되었을 뿐이다. 오쇼 라즈니쉬(Rajneesh Chandra Mohan Jain)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대는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어떤 프로그램이 머릿속에 주입되면, 그대는 그 프로그램을 따르는 것이다. 잠에서 눈을 뜬 상태는 기계적인 습관들로 가득 차 있다. 그대는 단순히 그 습관을 반복할 뿐이며, 각 세대는 계속해서 그 기계적인 습관을 다음 세대에 전수해왔다. 이것이 진보가 그토록 불가능해 보이는 이유다. 왜냐하면 부모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프로그래밍을 아이들에게 각인시키며, 그 프로그래밍은 수세기 동안 계속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깨어있는 상태는 전혀 프로그램화되어 있지 않고 조건화되어 있지 않을 때만 일어나는 것이다.”
오쇼 라즈니쉬가 말하는 세대를 이은 습관적인 프로그램이 바로 각 가정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상들로부터 습관적으로 학습된 프로그램, 라이프스타일을 우리집 가풍이니까 전통이라 좋은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쩌면 오쇼는 그래서 프로그램화되어 있지 않은 깨어있는 상태에서 진정으로 각성이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가 아니면 어디에 밥을 먹어요?”
28년 전 쯤 무단결석하는 철이네 집에 가정 방문해서 받은 충격은 아직도 지워지지가 않는다. 벽지는 반쯤 뜯어져 나가고, 주황색 플라스틱 양푼에 가득 비벼있는 밥과 그것을 덜어 먹은 조그만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들이 널 부러져 있는 양철 밥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는 천렵에 나가 어죽 먹을 때나 쓰는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천렵에 나가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에 어죽을 먹는 다는 사실에도 쇼크를 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먹어도 되니?” 라고 묻는 내게 학생이 되물었다. “그럼 밥을 어디에 먹어요?” 학생의 일상에서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는 의심의 여지없는 밥그릇일 뿐 이었던 것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나는 밥그릇에 대한 상식에서 벗어나 있는 몰상식한 사람이었다.
아들러는 ‘고도의 능력은 특별한 유전이 아닌 오랫동안의 관심과 훈련으로 비롯된다’고 했다. 만약 철이가 푸드스타일리스트의 아들로 태어나서 다양한 식기류에 대한 관심과 훈련 속에서 자랐다면,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를 밥그릇이 될 가능태로 이해는 했을지언정 밥그릇의 상식처럼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뿐인가? 철이는 학교도 꼬박꼬박 잘나왔을 것이다. 철이는 다른 친구들과 일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답답하거나 엉뚱한 친구로 치부되었기에 학교도 편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남루하고 거친 집안이 그를 쉬게 하지도 않았기에 끊임없이 학교와 집을 겉돌며 방황했다. 손을 잡아주면 손을 빼고, 등을 토닥이면 몸을 비틀어 피하던 아이를 나는 이제 비로소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아이가 거부하는 것이 바로 그 아이가 요구하는 것이다.”
뛰어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문제가 발견되면 자발적으로 각성 한 후 새로운 삶의 스타일을 스스로 훈련한다. 그들은 아들러의 말처럼 계속해서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며 자신의 인생스타일을 만든 사람들이다. 그러나 스스로 각성도 어렵고, 부모에 의해 프로그래밍 된 라이프스타일 그대로 살아가며 불행의 악순환을 겪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이제 우리가 함께 그를 각성시켜야한다. 이미 우리는 하나로 연결된 존재들이다. 나만 잘산다고 잘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단 번에 그걸 증명했다.
학교란 가정의 기능을 좀 더 넓게 확장한 것이다. 만일 부모가 자녀의 훈련을 전담하고 인생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자녀들을 충분히 적응시킬 수 만 있다면, 학교 교육은 필요 없을 것이다. 다른 문화권을 보면, 종종 자녀는 홈스쿨링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가정에서 교육받고 훈련 받는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유태인들의 교육은, 무엇보다 가정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역할을 분담하여 진행한다. 그러나 근대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산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맞춤 교육으로 효율적인 교육시스템인 학교가 생기게 되었다.
학교에 맡겨진 아이들을 위해 우리는 더 큰 비전을 갖도록 안내함은 물론이고, 더 아름답고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도록 다양한 문화체험을 프로그램화하고, 손을 빼면 다시 잡고, 몸을 피하면 다시 안아 등을 두들기며 사랑과 협력의 메시지로 소통해야한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카피된 라이프스타일을 비평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새로운 지향점을 가진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하고 나와 타자의 지향점의 차이를 알아채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 라이프스타일 교육에서 인문학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같은 가족이라도 서로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부모는 부모 세대만의 차별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자녀세대는 그들대로의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살아갈 때 인류의 사회는 더욱 진보한다.
독자적인 부모와 자녀의 라이프스타일이 사회의 다양성을 만든다.
사회학자 노명우는 ‘가족은 훌륭한 관계를 서로 맺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힘을 발휘하는 제도이다.’라고 말한다. 표피적이고 슬로건적인 건강하고 건전한 ‘가족’이나 ‘가정’이 우리에게 최선을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새롭게 각성해야한다. 자기와 타자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자신을 잃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지향점과 니즈를 반영한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살아가지도 못할 것이다. 진정한 사랑과 협력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공통된 행복을 우선시하여 이루어가는 관계를 말한다. 협동하는 것을 배우지 않았던 아이들은 성장한 후에 신경질적인 사람이나 알코올 중독자, 범죄자, 자살자 등이 된다는 아들러의 연구결과에 우리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프랑스 디자이너 필립스탁(Philippe Patrick Starck)이 디자인한 알레시(Alessi)사의 쥬서기 ‘주시 살리프 (Juicy Salif)’가 탄생한 디자인 스토리는 이런 가정에서의 소소한 협력과 사랑이 주는 의미를 우리에게 잠시 들려준다.
‘어느 날 요리를 하던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레몬즙이 튀는 문제로 큰 싸움이 벌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이너인 필립 스탁은 남편이자 아들의 자격으로 ‘주시 살리프(Juicy Salif)’라는 레몬 착즙기를 디자인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싸움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어떻게? 오징어를 닮은 레몬 착즙기를 보면서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그 용도가 궁금해서 ‘뭐하는 물건이지? 하고 서로 묻고 대화하기 시작했던 것. 이렇듯 주시 살리프는 단순히 레몬즙을 짜는 용도뿐만이 아니라 가족 간의 대화를 이어주고 주방을 아름답게 꾸며 주는 하나의 오브제로서 각광받기 시작하여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엉뚱한 모양의 쥬서기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동질성이 고부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드라마는 참 극적이다. ‘집합체 내에서 동질성을 공유하는 사람은 칭찬의 대상이 된다’는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사례다. 그러나 이 보다 더 극적인 것은 주시 살리프가 관계는 물론 레몬즙을 짜는 방식과 리빙스타일까지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이처럼 라이프스타일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감각의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은 가정에서부터 부모와 자녀의 일상을 통해 대대로 내려오는 프로그램이 세습되기도 하고 단절과 창조를 거듭하며 새로운 가풍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특히 그런 감각과 인상은 직관적인 부분도 있으나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받는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에 의해 좌우된다. 요즘은 ICT기반 미디어 매체들이 주는 강력한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미래사회에서는 AI가 우리 삶의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놓을 확률이 매우 높다. 우리가 가정에서부터 아이들을 자립심이 강하고 용기에 가득 찬 협력적인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하도록 훈련시켜 나가야하는 이유도 공동체 공통의 행복을 향해 기여하고 협력할 때 행복은 더 커져가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카피되는 라이프스타일은, 사실 더 큰 범주에서 보면 그 사회와 세계가 던져주는 감각과 환경의 해석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면, 우리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은 곧 개인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세계의 것이 된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인류 공통의 적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인류 존속의 열쇠는 바로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