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8. 브뤼셀의 일상여행자 6
신경숙의 < 엄마를 부탁해 > 불어판을 사겠다는 주연샘을 따라 서점에 갔다. 패션 잡지들을 빠른 속도로 펼쳐보며 올 시즌 루비통 쟈켓에 마음이 꽂힌다. 한국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 주인공 오스칼이 주로 입었던 프랑스 군복 스타일의 쟈켓을 바로크 시대 패브릭을 소재로 하여 더 과감한 금박 장식을 곁들여 만든 완벽한 쟈켓. 당장 루비통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 아니, 잡지책의 그림이라도 오려서 입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고 하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보그지에도 많은 새로운 패션 트랜드들이 가득했고, 유럽의 메종 잡지들도 너무 매력적이다. 출국 전에 다시 서점에 들려서 잡지책을 구입 해야겠다 생각하며 서점을 나서는데 한 멋쟁이 신사가 서점 앞 벤취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다.
아마도 그의 나이는 90세 정도 되는 듯? 할아버지 위의 흑백 사진 작품, 붉은 벽, 흰색 의자에 짙은 골드 코드류이 정장과 빨강색 머플러에 중절모와 파이프 까지 완벽한 패션코디였다. 할아버지 곁에 있는 커피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듯 가득 담겨있는 채 식어있고, 할아버지가 읽는 신문 또한 어디까지 읽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는 그저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이 목표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살아있는 조형물이랄까? 사진을 함께 찍자고 다가가니 내 손을 먼저 덥썩 잡으신다. 서로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 무뚝뚝한 벨기에 인들의 정서와 달리 마주 잡은 손은 따듯하고 눈길 또한 정답다. 두 번째 컷은 연인처럼 연출해보자는 내 의견에 할아버지의 눈빛은 찬란했던 젊은 시절의 반짝임으로 달라진다. 서로 어깨를 안아주려 했지만,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강이 되어버린 커피 잔 때문에 엉성한 포옹으로 따듯한 한순간이 된다. 나는 순간 그의 고독에 대해 이해한다.
그가 태풍이 부는 겨울 거리에서 식은 커피한잔을 곁에 두고 끝끝내 신문을 읽어 내리는 그 시간의 견딤은, 차가운 방안에서 화석화되어가는 자신을 직면하는 것보다는 훨씬 아름답고 생기 있는 시간이라는 것, 자신의 생과 삶을 이해하고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일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브뤼셀 사람들의 어둡고 차가운 느낌의 패션과 표정과 달리 멋쟁이 할아버지는 이곳도 잡지 속 화보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존재하고 다양한 색이 존재한다는 것을 한 번에 확인시켜주셨다. 참 보기 드문, 무뚝뚝하고 무거운 브뤼셀에서 발견한 최고의 패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