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8. 벨기에의 일상여행자 8
마그리트 미술관에서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정작 그의 작품이 아니라 마그리트의 생애와 스타일, 작품을 체험할 수 있는 간단한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마그리트처럼 모자를 쓰고 검정 쟈켓을 입고 파이프를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이었다.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현실의 우리 모습이 금방 마그리트로 전복되는? 하하하.
벨기에 사람들이 마그리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미술관에 가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벨기에 왕립 미술관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도슨트의 도움을 받아가며 관람하는 곳이 마그리트 미술관이었다. 물론 미술관 전체에 보안 시스템도 무척 잘되어져 있어서 혼자서 처음 가는 나같은 사람들은 길을 열 번쯤 묻고 나서야 찾을 정도다.
초현실주의라면 살바도르 달리 정도만 각인되어있던 내게 브뤼셀에서 만난 마그리트는 또 다른 영감을 주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공상과학소설에 흠뻑 빠져있었는데, 그때 본 4차원의 그림이 (말을 탄 사람이 숲속에 있는 그림으로 말의 모습이 시간이라는 4차원과 나무라는 3차원에 토막토막 가려진?) 바로 마그리트의 그림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마그리트의 파이프 그림도 단순히 파이프를 그린 것이 아니라, 일종의 기호학적 관점의 철학적 그림이었다는 것. 이를테면 강아지 사진을 놓고 한국어로 개, 미국어로 dog 라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대상을 지칭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 개와 dog라는 단어 자체가 대상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처럼 파이프 그림도 마찬가지의 철학적 이슈를 담고 있다. 파이프를 아무리 사실적으로 재현했다손 치더라도 파이프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양재를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신사복을 항상 말끔하게 차려입고, 모자를 만들던 엄마의 영향인지 항상 모자를 쓰던 마그리트. 우리가 체험한 마그리트는 바로 그런 외양적인 것이었으나 마그리트의 작품세계, 특히 철학자라고 불리기를 좋아했다는 마그리트의 작품성향에 따르면, 우리는 마그리트로 재현되었으나 결코 마크리트일 수 없는. 마그리트의 옷 입기가 코드화되어져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으로 마그리트가 될 수 없는? 어쩌면 초현실주의자인 달리나 마그리트의 그림들은 초현실이 아닌. 진짜 우리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돌려 생각하면 얼굴에 휘장이 가려진채 키스하는 연인의 모습도 현실세계 연인들의 누드한 모습일 수 있고, 담뱃대 또한 다른 용도로도 쓰는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
마그리트의 작품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겠지만, 내게 초현실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고 직면한 사람들이 한번쯤 처해보았을 현실의 극단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느끼는 초현실은, 현실의 데칼코마니가 아닐까? 어쨌든 브뤼셀에서 뜻밖에 만난 아주 멋진 전시였다. 벨기에는 정말 부자 나라다. 이렇게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멋진 작품들을 왕립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