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3. 브뤼셀의 일상여행자 11
쵸콜렛 공장을 다녀오는 길에 브뤼셀 자유 의과대를 지나오다 바삐 걸어가는 의사의 뒷모습에 반한다.
잠깐 비친 햇살에 반짝이는 그의 귀에 달린 피어싱들....
아마도 한 쪽 귀에 다섯 개는 족히 될 듯한 피어싱들이 촘촘히 줄을 서있는 모습이 너무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내가 만난 의사들 중 그 누구도 저런 자유의 상징을 휘날린 사람을 본 일은 없었다.
자신의 색깔대로 자신의 멋대로 자신을 표현하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의 일에 열중해있는 멋진 사람으로 비춰진 것이었을까?
나는 아주 명확하게 벨기에 의사의 뒷모습에 반해버렸다.
한국 사회에선 파격일 피어싱 의사의 뒷모습은 슈만 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탈 때까지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지하철에 올라 나의 맞은 편 대각선 자리에 앉은 남자를 볼 때까지는....
지하철의 남자는 검정색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고, 눈은 회색빛 스카이블루로 매우 크고 동그란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었다. 거기에 약간 돌출된 눈동자를 끊임없이 이리 저리 살피며 돌리고 있어서 매우 불안정해 보였다.
나는 순간 나는 대체로 그런 불안정한 눈빛이나 고개 숙인 어두운 분위기의 사람에게 눈이 꽂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떡공 학생부장 시절 정신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을 살피는데 너무 집중하여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한 번 꽂힌 눈은, 그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특히 그의 입술 끝에서 귀까지 남겨진 상처! 일자로 쭉 찢어진 후 외과 수술로 꿰맨듯한.... 영화 베트맨 조커의 찢어진 입은 비교가 되지 않을 강렬함이었다. 불안한 회색빛 스카이블루 눈동자의 빠른 움직임과 찢어져 꿰맨 입가의 커다란 흉터는 설명하기 불가한 강렬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있었고, 나의 머릿속은 이미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한 꼭지 쓰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가방에서 바나나를 꺼내 먹기 시작하면서 더욱 그림은 강렬해졌다. 그와 몇 번 인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그러나 슈만 역에서 내릴 때까지 나는 그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에 쓰여 있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내게 읽기를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브뤼셀을 떠나기 전날 그랑플라스의 맥주 집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그 맥주 집엔 꼭두각시 인형들을 수집하여 실내 곳곳을 장식해놓았는데, 하필이면 내 시선 대각선 위쪽에 걸린 인형이 그 남자와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
웨이터를 불러서 그 인형 이름을 물어보니 ‘death’였다.
소설은 이미 내 머릿속에 반쯤 완성되었다.
그는 주인공인 예쁘거나 늘씬하거나 사랑스럽고 깜찍하거나 할지도 모를 나를 사랑하나,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death’로 등장할 것이다.
그가 쓴 가면은 반짝이는 피어싱들을 귀에 잔뜩 끼운 브뤼셀 자유대학 의대의 멋진 의사? 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