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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형 Jan 16. 2023

가족앨범 6.

2023.1.16.월요일.


나는 왜 하필 엄마를 선택해서 이 세상에 왔던 것일까? 고등학교 학업성적이 유창하게 좋지 않았던 내가 걱정스러워 대학 입학시험을 앞두고 엄마는 점집에 가셨었단다. 대학에 가기는 가지만 어렵게 간신히 들어갈 것 같다는 사주아저씨의 점괘보다 엄마를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이 아이 사주는 부모가 없는 사주라는 이야기였단다. 


“ 아니, 내가 남편과 낳은 내 딸이 분명한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분명히 내가 열 달을 고생해서 낳은 내 딸이 맞아욧!”

“ 이 딸은 두 분의 딸이 아니라 그냥 왔어요. 본래 부모가 없는 사주인데 부모가 있으면 힘든 사주에요. 그러니 부모랑 일찍 멀리 떨어져 살게 공부를 먼데 가서 하면 좋아요. 부모랑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더 잘사는 사주에요. 그럼 성공도 하고 부자도 될거예요. ”


그 때문일까? 12살에 금산에 계신 부모님을 떨어져 대전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였으니 아마도 지금 나는 성공한 부자가 명확한가? 아니면 금산과 대전이라는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나는 아직도 부자일 수 없는 걸까? 그렇다면 부모랑 멀어질수록 더 행복해지는 사주팔자를 타고 났다는 내가 굳이 엄마를 선택해서 세상에 온 이유는 도대체 뭘까? 

 나의 부모님들은 유독 예술적 조예가 깊은 분들이시다. 유독 그림과 요리와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시는 엄마의 고품격 예술적 취향은 타고난 것이라고 밖엔 달리 말할 도리가 없다. 배워서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그냥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그런 면에서 나는 참 엄마를 많이 닮았다. 아버지 또한 소설가가 꿈이었음은 물론 유별난 책벌레셨고, 그 시대에 화상들을 찾아다니시며 그림을 사서 모으실 정도였으니 예술을 목숨처럼 좋아하는 내가 부모님들과 인연이 박약하면서도 그분들을 부모로 택해 세상에 온 이유는 충분하다. 


 스와질랜드였나? 평소 그림 감상을 정말 좋아하시는 엄마를 모시고 항구 앞 작은 갤러리에 들어갔다. 마침 패키지여행 프로그램이 성지순례 중심이었던지라 미술관 방문은 처음이었다. 엄마는 갤러리에 걸린 그림들을 꼼꼼히 감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갤러리 대표님이 건네준 화집까지 감동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본 갤러리 대표님이 엄마 옷에 작가가 만든 브로치라며 선물로 꽂아주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두 분은 동갑내기였고, 동양인 손님중 가장 깊이 있게 작품을 감상하는 분이라 자신에게 감동을 줘서 선물하는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 정말 기뻐하셨음은 물론 온전히 친구가 된 기분으로 서로를 얼싸안았다. 아름다운 폭포의 절경 앞에 넋을 놓고 감탄을 연발하고 리버사이드 카페에서 난간과 풍경의 고졸함에 눈길을 빼앗겨 따끈한 핫쵸코 드링크가 차갑게 식기도 했다.


엄마는 자신이 타고난 본성의 취향이 만족해질 때 평온을 유지했고, 그와 달리 여행객 단체 활동에 맞춰 자신의 본성을 누르고 하는 일을 못견뎌하셨다. 어쩌면 드디어 엄마는 그동안 타자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던 자신을 잊고 오로지 본성 그대로의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엄마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차라리 동유럽 여행을 모시고 와서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곳에서 엄마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을 과감하고 솔직하게 질러버리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 정말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내 뺨을 치시면서 하던말..


“나는 딸들이 정말 싫어! 딸들이 드세고 잘되서 아들들이 기죽어서 싫어. 철썩!”


한국에선 차마 뱉어내지 못하셨던 그 억눌린 무의식적 분노를 폭발시키며 발산하실 수 있어서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스트레스로 인한 암예방은 되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기 바로 전날! 어떤 나라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리버사이트카페에서 아이처럼 핫쵸코를 마시는 엄마를 바라보며 이젠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순간적인 존재의 실상에 대한 깨달음과 앎이 당황스러웠다. 어쩌면 치매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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