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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형 Jan 14. 2023

가족앨범 5.

2023.1.11.수요일.

 성지 순례여행을 떠난 것이 아닐지라도 유럽에 가면 저절로 예수님이나 성모마리아가 기적을 행하신 명소들을 찾게 된다. 첫날 여행을 접고 크로아티아 두보르니크에서 바로 한국으로 출국하려고 직항을 끊었으나 엄마의 몸상태가 급하게 나빠지셔서 결국 비행기 티켓은 날리고 여행팀들과 동행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엄마를 여행팀들이 묶게 되는 가까운 호텔로 먼저 모시고 가서 쉬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잠자리 날개보다 더 연약한 것이 어쩌면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자리들은 곧 찢어질 듯 얇은 날개로 저 넓은 허공을 매일매일 차고 오르는데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연약하게 얇아지면 그냥 그대로 상처로 찢기거나 날기를 포기하고 땅에 곤두박질치고 만다. 


엄마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은 물론 나 자신도 엄마의 급격한 변화에 당황하여 상처받고 무섭고 두렵고 불안하기 그지없었지만 다른 그 어떤 대안도 없었다. 그냥 9일 동안 견뎌 나가는 거다. 여행이 마음의 자유와 쉼을 위한 선택이라면 나는 감옥에 들어가 중노동의 벌을 받기 위해 스스로 지옥행 티켓을 샀던 것이다. 


모든 삶의 선택은 자신이 하고 그 과보고 자신이 받는 다는 사실에 깨어있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관념에 불과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내가 어디를 갔다 온지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는 최초의 여행이 엄마와 떠났던 동유럽 여행이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삶은 항상 일음일양의 리듬을 탄다. 


바로 다음날 메주고리예 성지 순례 일정이 이어지며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기적이란 바로 엄마의 호전으로 나에게 찾아든 작은 마음의 ‘평화’였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오랜 전쟁과 공산주의 체제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라였는데 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 남서쪽 지역에 위치한 메주고리예는 가톨릭 신자인 약 4,00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메주고리예는 1981년 어린아이들앞에 발현한 아기를 안은 성모 발현으로 유명한 성지로 13세기 이전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크로아티아인들이 대부분이다.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 셋째날인 1981년 6월 26일 날 성모마리아는 다음과 같은 평화에 대한 말씀을 주셨다고 한다. 


“평화, 평화, 평화, 오직 평화만이 있기를! 하느님과 사람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넘치기를!”


메주고리예에서 성모님의 평화 기도가 엄마에게도 임하셨던 것은 분명하다. 허약한 신체로 식은땀을 흘리고 밤새 잠꼬대 같은 헛소리와 함께 잠을 설치시던 엄마의 건강상태가 메주고리예 예수상의 무릎을 잡고 기도하고 내려오신 후 몰라보게 좋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메주고리예에 도착하기 전 버스에서 여행가이드가 말했다.


“ 이제 까지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죠?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 상 무릎을 잡고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이 꼭 이루어진대요. 구리로 만들어진 예수님 무릎에서 기적의 물이 흘러나온대요. 그래서 그 물에 손을 적시며 기도하면 기도가 이루어진다니까 여러분들도 꼭 한 번 기도해보세요. ”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예수상 앞에 얼른 줄을 서서 예수님 무릎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은 그야말로 성모마리아님처럼 고결해보였다. 마치 성모마리아님이 평화, 평화, 평화, 오직 평화만이 있기를 엄마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기도해주셨던 걸까?



기도를 마친 엄마는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또 다른 존재로 변형되어져 있었다. 눈과 표정에 안정감이 찾아왔음은 물론 기분도 걸음걸이도 모두 가벼워지셨다. 엄마의 모습 자체가 내겐 기도의 증거요 기도였다. 뿐만 아니라 성당에서 만나는 신부님과 수녀님들께 내가 먼저 다가가 우리 엄마가 많이 아파요. 엄마를 좀 안아 주시며 사랑을 나눠주실 수 있나요? 라고 부탁드리자마자 두 팔을 활짝 열어 엄마를 꼭 안아주시며 축복기도를 주셨다. 그냥말로 텅텅 비어있던 엄마 영혼의 창고에 정말 큰 사랑의 강물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메주고리예의 기적의 변화를 시작으로 여행 내내 어디에서 누구와 마주치든 인사를 나누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엄마를 안아달라고 부탁을 드렸고 모두 기꺼이 넘치는 사랑을 담아 엄마를 안아주시니 내 수고롭고 두려웠던 여행이 조금씩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니 길거리에서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디저트들로 도파민을 자극하며 엄마의 기분을 더욱 업 시켜드리는 것쯤은 너무나 당연했다. 평소에 워낙 사람을 좋아하시던 분이신지라 사람들과의 인사와 포옹으로 교류가 다시 시작되자 엄마는 다시 삶을 꽃피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아마도 그런 것일 것이다. 부활이란 말과 예수님은 사랑이란 말도 같은 말이 아닐까? 부처의 너와 나의 경계를 넘어선 자비 또한 그렇지 않을까? 사랑은 힘이 세고 사랑만이 사람을 살린다는 말도 어쩌면 같은 말일 것이다. 치매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신약뿐만 아니라 바로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따듯한 시선과 사랑, 그리고 그가 살던 방식대로 관계를 유지시키며 다독거리며 안아주는 온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엄마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했나? 엄마의 쪼글거리는 손 한번 따뜻하게, 엄마에게 사랑의 온기가 전해질 정도로 오랫동안 잡아드린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사랑해요”라며 엄마를 안아드리고 헤어지기는 하지만 엄마께 내 마음 속 따듯한 사랑이 담긴 온기를 전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나? 난 솔직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엄마의 치매는 한 순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과 경로로 증상을 보이며 치매시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채 어느 순간부터 엄마에게 정떨어져 하는 나와 멀리하는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정을 떼주는 것도 부모님의 사랑이라고 말씀 하신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부모란 자식들에겐 그토록 지극한 것이다. 자신의 사랑을 거둬들이며  그리움을 지우면서 까지 자식들이 온전히 행복한 삶을 살도록 길을 닦아주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모든 자식들은 늘 자기밖에 모른다. 그들 또한 그들의 자녀들에게 부모님과 똑같은 지우개를 사용하겠지만 세상 모든 자식들은 자기밖에 모른다. 


암튼 사랑이 답이다. 엄마의 남은여생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운 삶으로 마무리하실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엄마를 귀여운 여동생처럼 살뜰히 안아주고 예뻐해주고 아끼며 내 마음의 모든 온기를 모아 사랑한다고 말씀드리는 거다. 나 자신을 사랑 그 자체로 만들어 내 품에 엄마를 안아 다독이는 거다. 적어도 엄마의 한 몸 가득 따듯한 사랑을 채워서 그 자리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이곳에서의 기억이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환되도록 그렇게 사랑의 도파민을 흠뻑 드리는 거다. 


아름다운 환각과 환상 속 치매로 더 아름답고 따듯한 것을 볼 수 있도록 더 많이 손잡아 드리는 거다. 끊임없이 칭찬하고 아낌없이 사랑한다고, 감사한다고 말하는 거다. 치매 예방약이란 약물이 아닌 사랑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아이들도 노인들도 모두 사랑이란 예방약으로 성장하고 튼튼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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