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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형 Jan 21. 2023

가족앨범 7.

2023.1.21.토요일.

   

엄마는 아버지가 그토록 좋은 거다. 

가족앨범 인쇄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나는 투병으로 지쳐계신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실까?를 생각하며 냉큼 갖다 드렸고 몇 달 만에 활짝 웃으시며 하시는 엄마 말씀이 참 곱다. 


“니들 아버지 참 환하다. 사진 참 잘됐다.”


가족 앨범 속엔 살뜰히 사랑하는 손주들도 있고 자식들도 있고 아름다운 풍경과 꽃도 있지만 엄마 눈에 곱고 아름다운 것은 오직 아버지뿐임을 알겠다. 어쩌면 엄마를 가장 많이 사랑하고 아껴준 사람이 아버지였다는 반증일까?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이 유독 깊었던 엄마에게 그리움은 당연하고 비록 사진일지라도 환하게 미소 짓는 반가움 또한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4년여 동안을 거의 침묵 속에 사셨다. 오빠의 급작스런 교통사고 사망 이후 좋아하시던 독서도 멈추고 흰 담배 연기와 함께 깊은 사색의 시간들을 보내며  급작스럽게 체중이 줄다 급기야 음식을 목으로 넘기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자식 잃은 슬픔으로 죽기를 작정하고 식음을 전패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병원에서 위암으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급하게 수술 날짜를 받고 나오면서 수술 전에 아버지와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 후 상황이 어찌 변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일당장 경주로 여행을 가자는 나의 제안을 감사하게도 부모님은 쉽게 받아주셨다. 


 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경주여행은 사실 부모님에 대한 나의 속죄의 여행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아버지 병의 절반은 나 때문이라는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빠를 잃은 아픔도 크신데 일 년 후에 또 내가 혼자만의 삶을 선언하며 딸아이와 독립하자 엄마는 통곡하셨고 아버지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아버지의 담배연기에서 흘러나오던 하얀 침묵의 소리를 나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나는 훨씬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말씀드려도  단란하고 행복한 부부관계를 지속해 오셨던 부모님에겐 부모님을 위로하기 위한 합리화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곤 했다.


“ 해봐! 가봐! 뭐든 네가 원하는 일이면 과감하게 선택하고 끝까지 책임지면 되는 거다.”


내가 어려서부터 새로운 일 앞에서 잠시 두려움에 주저할때마다 들려주시던 아버지의 말씀을 내면화하며 용기 내어 당차게 독립 가정을 만들어서 살아왔다. 하지만 과감하게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이란 사실 경우에 따라 힘겹게 견디는 삶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나도 간신히 간신히 견뎌나가는 삶의 한복판에서 아버지의 말기 암 판정과 다시 마주했으니 어쩌면 나 또한 아버지 병의 근원이구나 싶은 생각이 아버지에게 임박한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 더 깊게 다가왔다. 어떤 방법으로든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건강하실 때 부모님께 속죄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딸아이와 부모님을 모시고 바로 다음날 경주로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경주 힐튼 호텔이 내게 특별한 것은 아버지와 마지막 여행지이기도 하고 오빠의 부재이후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가 침묵으로터 빠져나와 노래를 부르셨던 곳이기 때문이다. 쪼그라들어 굽었던 아버지의 몸을 호텔 세신사가 맛사지로 풀어드리자 아버지는 곧 번듯한 몸으로 환한 얼굴이 되어 춤추듯 걸어오시며 내게 말씀하셨다. 


“ 김선생! 소주 딱 반병만 마시면 좋겠는데?”


위암 말기인 아버지께 소주 반병이란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지만 난 기꺼이 소주를 사왔고 아버지는 달게 세 잔을 드시더니 곧 취기가 돌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취기가 돌았다는 표현보다 술의 기운이 아버지를 덮쳤다는 표현이 더 맞을듯하다. 한 잔의 소주가 아버지의 몸  안에서 풀려진 감성의 커다란 파도가 되어 출렁거리고 있었다고 할까?)


“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 ” 


아름다움이란 아마 그런 것일 것이다. 그냥 어제와 다를 것 없이 그렇고 그런 날 초저녁에 오랜만에 찾아든 취기로 가슴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애수(哀愁)’를 노래하는 아버지, 또는 자식 잃은 슬픔을 감내하며 고행의 길을 걷고 있는 저 고귀한 존재의 현존! 지구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이 지극한 슬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임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부모님과 함께 한 경주 힐튼 호텔의 그 아름다운 밤을 어쩌면 나는 죽는 순간까지도 행복한 마음으로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 처음 안 사실이었는데, 아버지는 오빠가 그리울 때마다 남인수 선생님의 ‘애수의 소야곡’을 엄마와 함께 부르며 눈물로 그리움을 달래었다 하셨다. 가족 앨범 속 아버지를 반갑게 바라보며 환하게 웃음 짓는 엄마를 보니 갑자기 애수의 소야곡이 내 마음속으로 훅 들어왔다. 


“운다고 내 사랑이 오리요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어주나 휘파람 소리“


아~~~ 아버지가 엄마를 위해서 내게 가족 앨범을 만들어드리라고 휘파람을 부셨구나..... 휘파람을 불며 커텐으로 격리된 감옥 같은 엄마의 병실에서 마음의 창을 열고 밤마다 별빛을 보여주고 계셨구나..... 병원에 갇힌 구슬픈 아내의 그 수많은 밤들을 함께 노래하며 버텨주고 계셨었구나...... 

 

엄마의 가족앨범에는 귀여운 손주도 없고, 끔찍이 아끼던 자식도 없고 다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존경했음은 물론 엄마를 지극히 사랑하고 아껴주던 남편의 얼굴만 있을 뿐이었다. 삶을 공감하고 공유한다는 것의 의미는 어쩌면 그런 것 같다. 사랑이란 그런 것 같다. 엄마의 삶의 여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하며 나눌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 바로 아버지가 그런 분이셨다. 그래서 엄마의 지워진 머릿속에 단 하나의 사랑의 이름으로 빛나는 별이 된 아버지!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가 오늘 또 엄마를 깊은 사랑으로 웃게 한다. 

즐거운 추억으로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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