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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형 Mar 21. 2023

가족앨범8

2023.3.21.화요일

나는 일상여행자가 아니라 어쩌면 일상방랑자일것이다. 그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상이 늘 방황상태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무엇이든 잘해내는 능력자일까? 아니면 ADHD? 그도 아니면?.....

삶이 너무 분주하다. 


새벽 365북클럽진행

신간준비

교구제작과 펀딩준비

책소풍런칭준비

교육과휴식홈페이지오픈준비

리조트스쿨창업준비

대학강의 준비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굴러가고 있는데다 엄마까지 퇴원 후 집에서 요양중이신지라 형제들이 순번을 정해서 케어하다보니 일요일 오후와 다음날 새벽까지 또한 쉴 틈이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머리 속에 빈 공간이 만들어질때 비로소 언어와 감성이 몰려오는 것인데 요즘 내 생활은 그럴 여지가 없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하나를 마무리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성격의 일들이 아니라, 서로 복합적으로 엮여있어 함께 가야하는 일들이다 보니 격무에 시달린다. 아니 내가 내 욕망의 굴레를 스스로 쓰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제도 금산 엄마집에 감포에서 보내주신 참가자미와 삼치를 들고 엄마를 찾았다. 자고 간다는 말에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그런데 엄마 머리맡에 핑크색 보자기에 단정하게 싸인 뭔가가보였다. 뭘까?


" 니가 만들어온 앨범 누가 가져갈까봐 전화번호부하고 내가 단단히 잘 싸뒀어. "

" 엄마! 요즘 세상에 누가 앨범하고 전화번호책을 가져가요?"

" 그래도 모르는거여 세상은, 니가 얼마나 애써서 만들어온 것인데? 그리고 전화번호책 없으면 니들하고 전화도 못하니까 내가 꼭 옆에 두고 보려고 싸둔거여. 우리 자식들없으면 어떻게 살아? 내가 다리 병신이 되가지고 걷지도 못하는디 "

" 엄마가 어디가 어때서요? 미스코리아처럼 걸으시는대?"

" 그려? 진짜여? 그런데 왜 저 교복입은 사진은 니가 더 크지? 옛날엔 네가 나보다 작고 내가 컸었는데?"



엄마의 치매가 참 사랑스러운 것은 점점 자신의 감정에 더욱 솔직해지고 대담해진다는 것일까? 아니면 자식사랑이 더욱 애절해졌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엄마 삶의 유한성이 더 절실해진 탓일까? 집착이다 싶을 정도로 혈육에 대한 애정이 더 간절하고 깊고 정직하다. 죽어서도 못잊을 가족들을 마음 속에 품어 가기 위해 엄마는 어쩌면 매일매일 가족 앨범을 싸고 풀고를 반복하면서 삶을 연명해가시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시는 것일까? 곧 쓰러질것 같은 위태로운 엄마의 육신만큼이나 엄마의 마음과 정신도 바스락거린다. 늦가을 땅바닥에 뒹구는 낙엽처럼 바스락거린다. 


새벽에 밥도 제대로 못챙겨드리고 집을 나서면서 오히려 나를 걱정하시던 엄마의 표정과 말소리가 눈과 귀에 모두 밟혀 마음이 짠했다. 병과 치매로 오히려 더 귀여워지신 엄마를 더욱 사랑해드리고 공감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 이 새벽에 교회가냐? 절에 가냐? "


반복해서 물으시는 말씀 안에 


"난 은형이 네가 가지 말고 나하고 함께 있으면 좋겠어"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겼다는 것을 알아차린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웃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일하러간다고 차분차분 이해시켜 드린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엄마가 가족이란 사랑스런 기억을 붙들고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행복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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