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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형 May 18. 2023

출판사 대표가 되어 첫 책을 내어 보니...7

모든 매듭을 단칼에 베어 풀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몬드 한 알을 씹어 물었을 때의 감각이 이토록 선명할 수 있었다는 것에 놀라운 아침이다.

 

<foodstyle의 인문학 수라, King’s Dinner>가 드디어 인쇄기에 올라 테스팅 페이지를 뽑아냈다. 두 개의 인쇄소에서 다양한 종이로 다양한 테스팅을 거치며 사람의 육안으로 꼼꼼하게 직접 인쇄된 종이가 전해주는 feeling으로 선택과 결정의 지혜를 내놓은 뒤에야 최종적인 인쇄 큐사인이 들어간다. 그러나 어제 하루 종일 작업하고도 결국 최종 큐사인을 넣지 못하고 오늘 오전 내내 디자이너들과 수정 작업을 거친 뒤 드디어 인쇄에 들어갔다. 


 

오늘 아침 9시가 넘어서며 인쇄를 맡아준 김대표님에게 원고 최종 확인 전화가 왔다. 문득 아침에 샤워하면서 직관적으로 들어왔던 생각을 나눴다. <foodstyle의 인문학 수라, King’s Dinner> 세트를 구입하지 않는 분들이 그것이 무엇인지를 사진으로 보여주지 않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216페이지에 다시 ‘수라, King’s Dinner 세트‘에 대해 안내하는 페이지를 만들자는 의견이 오고 갔고 바로 디자인과 텍스트 쓰기에 들어갔다. 역시 연륜 있는 전문가들의 일 처리 능력은 참 대단하다. 우리가 어떤 일을 협업할 때 전문성이 뛰어난 전문가들을 찾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내가 디자이너들의 일을 덜어주기 위해 카메라를 쥐고 제품 사진을 찍으려고 동분서주하며 땀을 쏟아내고 있을 즈음 튜나플랜 김보성 대표가 말했다.     


“ 그건 제가 합성하면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는 기술적인 문제입니다. ”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오늘도 표지 디자인부터 내지까지 다시 둘러보니 또다시 수정할 곳이 많이 눈에 띄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어제 인쇄기에 얹지 않았다고 마음에 분별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다시 수정하고 보다 완성도 높은 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들은 그저 감사한 일들뿐이고 그 일이 일어나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음에 점점 더 깨어있게 된다는 것에 감사하다. 

 어차피 오늘 인쇄에 들어가도 잉크가 마르는 시간을 이틀쯤은 기다려서 제본에 들어가야 한단다. 문제라면 텀블벅 예약 고객들이다. 책만 구입한 고객들에게는 오늘 18일 날 발송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나 책 제본이 늦어져서 약속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책은 한번 인쇄되어 나오면 수정이 불가할 뿐만 아니라 대체 불가다. 하지만 고객에 대한 신뢰와 신용은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다시 또 복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그냥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기로 하자.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어젠 테스팅 페이지가 나오는 동안 인쇄 거리 드립 커피 명소에 앉아 인쇄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강의 준비를 했다. 주인장이 내놓은 드립 커피가 3000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 기절할뻔했다. 실내 대부분의 인테리어가 가구도 그림도 당근 마켓에서 15,000원 정도에 사들인 것들이라고 했다. 피아노 4대와 피아노 의자로 인테리어 포인트를 잡은 아이디어가 매우 좋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어려서 잠깐 피아노를 배워서 그냥 비싸지 않아 당근 마켓에서 샀단다. 암튼 듬직한 모습의 젊은 MZ세대 주인장은 마치 육중한 인쇄기처럼 든든하고 설령 전쟁이 난다고 해도 눈도 꿈벅이지 않고 커피를 내릴 듯한 태도로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었다. 


가끔 긴장되고 쫓기는 시간을 살아가다 우연히 마주치는 저런 바위 같은 젊은 사람들은 한마디 말을 나누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위안이 된다. <foodstyle의 인문학 수라, King’s Dinner>도 그런 책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그냥 위로가 되고 그냥 든든함이 되는 그런 책.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도 이제 운명은 신에게 맡기고 맥주 한 캔 마시고 죽은 듯이 실컷 잠이나 한숨 자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고르디우스의 모든 매듭을 단칼에 베어 풀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다시 책 배송업무 알아보러 우체국에 가 봐야 할 시간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 스스로가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 오늘 새벽 세르반테스가 산초 판사의 입을 빌려 나에게 말했다.     


 “ 나는 비가 오면서 동시에 해가 비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요. ”     


해가 쨍 한 날 비가 내리는 호랑이 장가가는 날은 비일비재한 우리의 일상이 아니던가? 삶은 꼭 리듬에 맞춰 일음일양 하지 않고 음양이 동시에 합일하며 해도 뜨고 비도 동시에 내리는 경우도 많다. 그것이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반드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나는 비가 오면서 동시에 좋은 책에 대한 희망이 맘속에 햇살로 비치는 것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요. 지금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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