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스쿨 혁명 16.
6백만 명이 넘는 유태인들을 히틀러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을 단순히 물질적인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필요 없는 물건을 폐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할까? 아름다운 꽃 앞에서도 별다른 감흥이 없고 타인에 대해서도 무감각한 삶에서 파괴는 너무나 쉽게 이루어진다.
타인과 사물에 무감각한 사람들의 파괴는 단순히 물건만이 아닌 관계의 파괴까지 이어진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우선 타켓이 되는 것은 물론 어리고 약한 아이들이 먼저 볼모가 된다는 사실은 소름끼치게 무서운 일이다. 요즘 부모들로부터 학대 받는 아이들에 대한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단순히 흥미를 위한 기사거리일까? 아님 그동안 봉쇄되었던 가정이란 신화의 모순과 문제점의 봉인이 풀리기 시작한 것일까?
차라리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남자 중학생을 만났다. 아이는 코로나와 자유학기제가 너무 싫다고 했다. 이유는 아빠로부터 벗어날 핑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눈빛은 분노와 의심과 무기력은 물론 풀린 동공의 매우 복합적인 모습이었고, 마스크는 그에게 자신을 숨길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필수품이 되어있었다. 코로나 이전부터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고 한다. 평소 주말부부인 아빠와 살면서 아이는 아빠의 사랑을 필요이상으로 과하게 받고 있었다. 그러나 거부할 수도 없는 처지. 아빠의 과도한 사랑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두 가지 강력한 제재가 따른다. 용돈이 없거나 맞거나. 가족도 아이를 돕지 못하던 차에 도움 요청이 온 것이다.
나는 아이의 기계적인 리액션에서 타자의 말과 행동에 휘둘리며 말 잘 듣고 공손한 아이로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 기재를 선택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눈치 챘다.
아이의 아빠에게 있어 아들은 단순히 자신의 소유물이었고, 아빠 자신의 결핍과 욕구를 사랑이란 말로 포장하며 해소하는 대상에 불과했다.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애정결핍이란 과거 상처에 집착하며 해소하기 위해 자녀를 파괴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명확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명확한 사실이 단순히 이 아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더 많은 아이들이 부모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얽혀 가장 안전한 집과 가정에서 학대 받는다.
세상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안전한 존재인가? 아이들이 코로나를 피해 집에서 온라인 학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아이들을 보호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가족은 아름답고 가족은 소중하다는 말 또한 하나의 사회적 신화일 뿐이라는 것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식을 같이 할 수 있을까?
집이 더 괴로운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부모로부터 벗어나야 살 수 있는 아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진실을 혹시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단순히 자녀를 먹이고 재우고 입힌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며 자신들의 욕망을 자녀에게 투사하는 부모들은 매우 위험한 존재들이다. 마치 반려동물을 사육하며 자신의 감정대로 학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모들이 균형 잡힌 사고와 지혜와 지성을 기반으로 충만하고 헌신적 사랑으로 자녀를 대하지 않을 때 아이들은 아무리 최첨단의 교육을 주입한다 해도 성장할 수 없다. 부모들이 살았던 농경산업 사회의 가치와 성공 조건들은 모두 구시대적인 것이고 급변하는 디지털기반 현대사회의 아이들에게는 유용하지 않다.
부모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앎을 확고한 정답으로 고집하지 않고 급변하는 사회와 세계의 새로운 지식을 융통성 있게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앎을 아이들로부터 배우고 받아들일 때야 비로소 집은 안전한 곳이 된다. 부모 자신들의 자녀에 대한 지원과 후원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부모로서의 의무로 겸손히 받아들이고 아이의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삶의 선택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부모는 부모의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유전이라는 것도 어쩌면 생체적인 데이터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태어나서 학습하는 가정의 환경과 부모의 생활습관의 데이터가 전부일 수도 있다. 부모의 라이프스타일과 역할이 아이들 교육에서 진짜 중요한 이유임은 물론 코로나 시대의 학부모 교육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조속히 진행되어야할 이유다.
모든 미래는 불확실하다. 아이들의 미래 또한 불확실성이 특징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성장한 부모들과는 달리 아이들의 삶의 토양은 온라인 테이터다. 그들에게 이미 확정된 농경지란 없다. 그들은 우주적 스케일로 커져있는 온라인 농경지에 자신들의 상상력과 자신들의 비전과 아이디어로 어디든 자신만의 곡괭이로 영토를 일궈나갈 수 있다. 부모들이 할 일은 그런 아이들에게 농경사회의 스케일을 대입시켜 막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의 욕망을 투사하여 심리적 불안감을 키워주지 않는 것이다.
코로나를 피해 온라인 학습을 하며 부모와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성장하거나 상처받는다. 집은 온갖 물건으로 가득 찼지만 진정한 주인은 없다. 오히려 물건의 노예로 살아가도록 교육받는다. 코로나는 이런 상품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노예적 삶에 대한 성찰을 촉발시킨다. 코로나 이전의 시스템과 인식과 의식구조로는 코로나 이후 세계에 적응할 수 없다. 바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계다. 그러니 제발 부모들의 말에 따르라고 순종하라고 강요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존중하자. 아이와 기성세대인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신뢰해야한다. 아이의 인격을 존중함이란 바로 아이가 나와는 다르는 것을, 전혀 새로운 인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인간, 새로운 세대,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가치의 사회시스템의 혁명적 출현은 역사적 소명에 가깝다. 그러나 이 혁명의 도래를 가로막는 요소 중 가장 큰 요인은 여전히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임은 물론 그들 대부분이 권력을 쥐고 있는 부모라는 점이다.
상품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인 부모들의 권력은 사실 더욱 막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 또한 학부모 교육이 코로나 스쿨혁명에서 매우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과거는 인류를 변화시키는데 실패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부모들의 인식은 과거의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 개학 후 학교는 그 기능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학교와 교사의 역할을 성토한다.
온라인 개학 후 학교를 면밀히 투명하게 바라 본 적이 있는가? 코로나 이후 하드웨어 공간 중심의 공교육의 무력화를 피부에 닿게 느껴본 적이 있는가? 과거의 가치와 이슈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능력이 없다는 것이 학교의 무기력만으로도 증명되었다. 이제 전체적인 변화의 씨앗을 뿌릴 때이다.
의식이 변하면 사회구조는 자연히 그 변화를 따라온다. 그러나 어떠한 집단적이고 외적 혁명도 인간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인간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회와 정부, 관료제도와 법률, 정치제도의 변화를 혁명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혁명은 인간들 개인의 내적인 혁명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교육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눈과 가치관을 지니고 과거의 가치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인간의 시대를 열어야한다. 이것이 바로 사랑과 충만함에 기반한 이 시대의 혁명정신이다.
과거의 이념과 상식, 인간상 등 모든 것과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리고 새로운 생각으로 새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절대적인 자유와 사랑, 무한한 창조성을 상징한다. 그는 인간들이 바라는 희망과 꿈을 실천에 옳기는 사람이다. 오쇼 라즈니쉬는 혁명적인 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혁명적인 사람은 종교적이다. 아름다움과 우아함, 깨어있는 의식과 신뢰, 사랑과 나눔과 친밀함으로 모든 경계를 허물고 충만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길이 바로 종교성이며 이는 신앙이 아닌 삶의 품격과 질을 의미한다.’
사회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개인 하나하나가 종교적 삶의 변화에 눈을 떠야한다.
지뢰복! 새로운 땅에 뿌린 씨앗은 전혀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킨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사고를 지닌 새로운 인간의 탄생은 여유 있는 자세로 삶을 운용한다. 바로 이런 자세의 사람들이 부모가 되어 자녀를 양육할 때 가정과 집은 비로소 안전한 곳이 되고 부모의 존재는 아이들을 위한 최고의 안식처가 된다.
새로운 코로나 시대의 변화에도 동요하지 않고 강한 정신력과 용기를 갖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용기를 기꺼이 보여주며 자녀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함께 손잡고 춤추며 노래하는 부모들이야 말로 미래사회의 주역을 키우는 일등 부모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