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스쿨혁명 3-2
코로나로 재택수업과 재택업무가 많아진 사회변화에 대응하여 부모가 가족의 일상인 의식주 를 통해 아이들을 융합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프랑스 디자이너 필립스탁은 탁자 하나를 구입하는 과정으로 어떻게 지구환경보호와 소통과 협력을 주제로 가족대상의 프로젝트 융합교육을 구조화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옹프 탁자를 구입하는 과정자체가 환경교육과 커뮤니케이션 교육이 된다.
프랑스 디자이너 필립 스탁은 ’스탁 라이프스타일(starck lifestyle)‘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담아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디자인을 해오고 있다. 그가 디자인한 ’옹프 탁자 프로그램‘은 라이프스타일 교육의 핵심 가치 중 첫 번째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담긴 융합프로젝트 학습의 예라고 할 수 있다.
필립스탁의 옹프탁자는 단순히 탁자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에게 교육체험을 함께 끼워 판다. 옹프탁자를 테이블로 사용하려면 네 다리 사이에 긴 나무토막을 끼워 넣어야만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프랑스 산림청에서 지정한 숲에 가서 직원의 안내에 따라 벌목이 가능한 나무 중 하나를 직접 골라 잘라 와야 완성될 수 있다. 이 과정은 숲을 직접 거닐고 느끼며 숲을 가꾸는 마음을 갖도록 함은 물론 가족들과의 대화와 협력을 이끌어낸다. 가족들이 직접 고른 나무로 완성한 옹프 탁자에 담긴 이야기만으로도 집안은 따듯함으로 넘쳐날 뿐만 아니라 선택한 나무에 따라 색다른 디자인의 테이블이 삶의 멋을 담아낸다. 그야말로 사랑과 협력의 공생구조의 가치가 모두 포함된 프로젝트 학습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옹프탁자로 디자인교육과 노작교육, 공동체와의 협력을 배운다.
필립스탁의 디자인 철학처럼 상대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되는 품격을 갖춘 사랑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전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전인교육의 핵심은? 사랑이다. 르네상스적인 인간인 폴리매스들은 세계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중 하나인 자신도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된 존재임을 알았다. 전인이란 그래서 연기론 적이다. 나를 사랑하자면 세상의 아주 하찮은 그 무엇이라도 존중하고 사랑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랑도 배워야 잘한다. 어려서 부모로부터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면 감성이 아닌 관념적인 사랑을 하게 되고 상대를 종속시키거나 자유를 구속하는 집착을 사랑으로 오해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연인과의 관계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관계 전체에 소외, 왕따 등등의 부작용을 낳는다. 그리고 미래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교육의 지향점이 될 공동체적 가치관에 부적응하는 결과를 낳게 될 수 있기에 코로나 이후 교육에 있어서 매우 핵심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필립 스탁은 옹프 탁자를 구입하는 과정까지 디자인에 포함하여 가족이 숲에서 나무를 골라오는 과정에서 가족이 모두 산림보호와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공감함은 물론 숲이 주는 힐링과 치유의 효과까지 체험하도록 치밀하게 교육을 디자인 했다. 그래서 필립스탁의 옹프 탁자는 디자인 자체가 융합적 프로젝트 학습인 것이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은 미래 사회에서 직면하게 될 핵, 환경, AI, 식량문제 등 위험에 대처하는 예방주사와 같다. 영화 <her>에서 AI 사만다를 사랑하다 실연의 아픔을 겪는 테오도르의 슬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고 말하면 너무 결연한가? 필립스탁의 옹프 탁자야말로 디자인교육과 노작교육, 공동체와의 협력 등 교육의 핵심 가치가 모두 포함된 융합 프로젝트 홈스쿨링으로 교육의 방향을 선도하고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사랑과 품격, 협력과 소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교육의 핵심가치이자 삶의 핵심 가치다. 가정의 홈스쿨링으로부터 이러한 가치를 배우고 자란 아이들은 든든하게 자란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실제 생활 속에서 홈스쿨링의 코드가 될 수 있는 일상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리들의 라이프스타일에 홈스쿨링의 중요한 아이디어가 산재해있다. 일상 생활의 모든 코드를 섞어 필립스탁의 옹프 탁자처럼 융합적이고 창의적인 프로젝트 학습으로 교과지식, 창의인성, 사고력 향상의 전인적인 학습이 가능하다. 바로폴리매스의 다재다능함이다.
모든 것을 교육할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을 교육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강박이다. 그냥 살면 된다. 부모가 아이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모든 것을 교육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욕심이고 불안을 낳는다. 교육은 우연한 맞닥뜨림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욱 많다. 부모는 그저 가치롭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위해 꾸준하고 성실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아이는 부모를 보고 깨우치며 배운다. 부모는 다만 아이들 스스로 각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만 하면 된다. 교육과 배움은 스스로의 ’각‘ 자각이 기본이다.
어릴 적 엄마가 음식 냄새를 맡아보시더니 상했다며 버리시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상한 음식은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우쳤다. 다음날 엿장수가 왔고, 빈병과 엿을 바꿔먹기 위해 냄새나는 상한 소주를 버리고 소주병으로 엿을 바꿔 먹고 껄껄껄 웃으시는 아버지께 꾸중을 들었다. 그 때 또 깨우쳤다. 소주는 고유의 냄새가 특이한 것이지 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바로 우리 집 마당에 파묻은 뱀술의 원리를 스스로 깨우쳤던 기억이 난다.
부모의 언행은 그 자체로 텍스트다. 굳이 국영수사과 과목을 분절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자. 그리고 교과중심의 지식교육의 시대는 저물었다. 우리 삶은 모든 것이 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기후변화에 의해 중국의 메뚜기 때와 멀리 떨어져 있는 호주의 산불이 상호 연관되어 작동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코로나 이후 부모의 역할은 한마디로 앞장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폴리매스적 총체성과 교육관이다.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영역을 일상생활 속에서 교육적 코드로 엮어 아이와 일상을 놀이처럼 즐겁게 보낸다면 창의적인 사고의 진취적 인재 양성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홈스쿨링에서 주의할 점
’코로나 STOP‘ 이후 자녀를 둔 사람이 두 사람만 모여도 대화의 핵심은 “애들 때문에 힘들어 죽을 것 같다. 재미있고 즐거운 홈스쿨링 아이디어는 무엇이 있을까?”로 귀결된다.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할까? 집에서 부모가 아이를 가르쳐야한다는 생각을 한 순간, 가정은 홈이 아닌 하우스가 된다. 부모들이 온라인 개학에 지쳐있는 것도 너무 많은 일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고 모든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성실하게 또는 불성실하게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이가 낙오자가 될까봐 노심초사 불안해하며 교과수업까지 부모가 나서서 감당하려고 한다. 학교교사들이 그동안 얼마나 바빴는지, 왜 학원강사가 학교 교사에 비해 교과 지도에 더 유능할 수 있는지를 절감했을 것이다. 학습과 돌봄과 행정 업무를 동시에 수십 명의 아이를 대상으로 해가는 교사의 업무량과 교과지도만 하는 학원 강사의 업무량은 비교불급이다. 교사들의 합리화라고 치부할 수만 없는 현실임을 코로나 로 학부모들은 절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온라인 수업에 대한 불만이 교사들에게 쏠리며 교사들이 무능하다고 탓했다.
그렇다면 이제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이를 돌보고 공부까지 시키는 나의 업무량은 어떤가? 죽을 맛이라는 정답들이 쏟아져 나왔다. 홈스쿨링은 사실 그냥 자연스러운 일상의 연속이다. 숙제와 같은 지식수업과 교양으로서의 독서교육도 진행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과정은 가족들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총체적 삶의 배움이다. 부모들은 단순히 스스로 책을 읽으며 아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주고, 스스로 요리하고 집안을 가꿔나가면서 아이에게 시각적 자극을 준다. 그리고 아이들과 협력해서 집안일을 하면서 삶의 지혜를 나눠주면 된다. 그것이 바로 홈스쿨링의 핵심이다. 왜? 앞장에서도 논했지만, 학교의 교과 내용이란 삶을 살아가는 상식 수준의 교양을 지식으로 만들어 미리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통합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고 판단된다면 눈을 감고 잘 생각해보라. 어려서 어떤 순간들이 강렬하게 떠오르는지를 말이다. 나는 아버지가 집에서 키운 닭의 배를 가른 순간 줄줄이 이어져나오던 달걀노른자의 연결성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큰 것은 내일 낳을 달걀이고 작은 것은 크기의 순서에 따라 차례차례 낳게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연결성과 자연의 순리 등에 대한 어떤 감각을 깨달았던 것 같다. 차면 비워진다?(커지면 낳는다?) 그리곤 생물시간이 좋아졌다. 적어도 나는 닭의 해부과정을 꼼꼼히 지켜봤고, 닭의 내장기관에 대해 똑똑하게 말할 자신이 있었다.
홈스쿨링에서 가장 주의할 점은 그것이 학습이거나 교육으로 표면에 드러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아이에게 사랑과 품격을 배우도록 하고 싶은 부모의 욕망이 있다면 스스로 먼저 아이를 사랑하고 품격 있는 언행을 하면 된다. 그것을 굳이 공부라고 호명한다면 아이들은 집까지 잃게 된다. 아이들에게 집은 스위트 홈이어야한다. 아이들은 카피 쟁이다. 부모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바로 따라한다. 홈스쿨링은 그래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탐구하는 평생교육의 개념을 접목하여 삶의 기술을 익혀 나갈 때 더욱 빛나는 교육의 성취를 이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