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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밀 Feb 26. 2024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주연도 조연도 아닌

서른 쯤 되면 무언가가 돼도 될 줄 알았다. 모두가 말하길 세상 살기가 그렇게 어렵다는데 마냥 어리기만 했던 과거의 나는 이것도 저것도 다 쉽게 느껴졌었다. 또래보다 앞서갔던 열아홉. 지지부진한 성장을 이룬 스물다섯. 어느새 뒤처져버린 서른. 서른다섯, 마흔, 그렇게 모두처럼 늙어가는 거구나 하고 깨달은 지금의 나는 한탄이나 비애의 감정보다 허전함과 쓸쓸함을 크게 느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었구나. 게임 속 흔한 NPC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람 중 하나이자 수많은 구성원 중 일부일 뿐이라는 진실이 판결처럼 내려졌다. 누군가 나를 심판대에 올린 것도 아닌데 발가벗겨진 채 내면 샅샅이 핥음 당한 수치심이 지워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을까? 아니면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온 건 나뿐인 걸까.


어릴 적 친구 중 한 명은 전에 없던 겸손함으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그녀의 사회생활 십 년 차였다. 한 회사에서 지독하게 오래 버텨왔다며 혀를 내두르고, 세 치 혀로 칭찬을 입이 마르게 했던 그때가 생생하다. 그녀는 무슨 시간을 보냈던 걸까. 2절까지 이어지지 않았던 생각을 이제야 이어가 본다.


주인공이 아닌 것과 겸손함의 연결고리에 대해 생각에 본다. 주인공은 겸손하지 않는가? 대체적으로 그렇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주인공인가? 그것은 아니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그저 겸손하지 않은 자일뿐이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음을 비애 하다 보면,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슬픔은 스스로를 세상의 유일한 자리로 몰아넣는 도구일 뿐이다.

수용하는 자세에 머물어야 한다, 고 생각한다. 내게 아직 그런 게 남아있음에 감사한다. 어제는 어린 왕자는 어른들에게 읽혀야 한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다. 서른 즈음에 다시 읽는 어린 왕자와 마흔 즈음에 읽을 어린 왕자가 어떻게 다를지 기대가 된다.


그래서 사랑을 해야 한다는 어떤 작가의 문장이 떠오른다. 그때도 맞는 말이라고 느꼈지만 다시 한번 느낀다. 사랑은 모든 밝은 빛들이 비춰주는 무대 한가운데로 데려가주는 강력한 장치다.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세상의 중심에 서게 하고,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앎과 모름은 하루 차이로 나를 다른 세계에 데려다준다. 중심이 아님을 깨달은 나는 어떤 세계를 살아가게 될까? 수용할지 부정할지 선택은 자유다.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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