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때
병아리가 그려진 야끼토리 전문점이 있다. 목조로 된 외관에 노란색 병아리 간판. 잠실에서도 한 번 본 것 같은데? 하고 지나친 게 몇 개월이었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병아리 가게를 지나치고 있을 때였다. “나 야끼토리 좋아해.“ 그날에서야 알았다. 항상 지나치던 병아리 가게가 야끼토리 전문점이고, 그가 야끼토리를 좋아하며, 나 또한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는 다양한 메뉴를 하나씩 주문했다. 이것도 맛있어. 아, 이 부위 좋더라. 그에 반해 나는 뭘 먹을지 몰라 추천한 음식을 죄다 주문했다. 네기마, 츠쿠네, 시샤모, 이름도 생소한 메뉴들을 종이에 적어 점원에게 건네었고 꼬치통에는 나무 꼬챙이가 쌓여갔다. 술을 마시다 보면 이상하게도 술은 조금 남고 안주는 똑 떨어진다. 도쿠리 속에 사케가 절반 정도 남아 안주를 딱 하나만 더 주문하기로 했다. 메뉴판에는 고기가 아닌 부위도 정말 많았는데 은행구이가 눈에 띄어 기본맛으로 주문했다. 별도의 체크표시가 없는 한 타래소스, 즉 간장맛으로 구워준다고 한다. 은행구이는 주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다. 한 꼬치에 일곱 알. 나눠 먹으니 금방 빈 꼬챙이가 되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가을이 되면 은행나무 아래서 주워온 열매를 거실에서 구워주셨다. “네 알만 먹어야 해.“ 노릇하게 구운 은행이 맛있어서 왜 네 알만 먹어야 하냐 물었는데,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플거거든.“라는 말에 조금 겁을 먹었다. 그도 그럴게 어릴 적부터 뭐만 먹어도 탈이 자주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빠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먹고 있었다. “아빠는 배탈 안나?“ 그 말을 듣고 아빠는 은행을 한 알 더 주었다. “아빠는 어른이라 더 많이 먹어도 돼.“ 고작 다섯 알과 비교되게 아빠는 족히 이십 알도 되어 보이는 은행을 먹었기에 어른이 되면 왕창 먹을 수 있는 줄만 알았다. 커서 보니 그렇지만도 않았지만. 은행 하루 섭취량이야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어린아이는 3알, 성인은 10알 정도를 권장한다. 그 이상을 섭취하는 건 냉장고 속 소비기한이 임박한 음식을 먹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괜찮을지 말지 확신은 없지만 먹고는 싶은.
“괜찮지 않을까?”
그날이 그랬다. 은행 꼬치를 두 개나 더 시켜서 먹었는데 그가 먹지 않아 죄다 내 몫이었다. 설마 큰일이야 나겠어, 생각하며 입으로 탈탈 털어 넣었고 다행히 별 탈은 나지 않았다.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주말이 다가오는 금요일마다 우리는 야끼토리집을 방문했다. 금요일 밤 9시, 항상 비슷한 메뉴. 냉도쿠리와 은행구이는 빠질 수 없었다. 달달한 타래 소스가 잘 발려 노릇하게 구워진 꼬치는 냉사케와 잘 어우러져 혀를 행복하게 해 준다. 안주가 남으면 술이 떨어지고, 안주를 다 먹으면 술이 모잘랐다. 취기가 오른 우리는 너무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어댔는데 일본 여행도, 음식도 좋아하는 그는 당분간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되겠다며 여길 일본으로 생각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일본 여행을 했던 여름의 끝자락에 그는 떠났다. 명쾌한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고 홀로 남은 사람은 그럴듯한 이유를 추측할 수밖에 없듯이 우리가 너무 자주 만났나. 내가 싫은 걸까. 다른 사람이 생긴 걸까 하는 별의별 생각에 사로잡힌 채 여름이 지나갔다.
은행나무를 옮겨심기 가장 좋은 시기는 여름 끝자락부터 가을 중순까지다. 겨울이 오기 전 옮겨 심은 나무의 뿌리가 튼튼히 자랄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러면 가을 중순에 옮겨 심는 것보다 여름 끝자락에 곧바로 옮겨 심은 나무의 뿌리가 더 튼튼한 것일까? 늦게 뿌리를 내리는 나무는 겨울을 견디지 못하는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고 관계의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내가, 다음에는 그가. 처음에는 괜찮은 듯 보였으나 간극은 잘 좁혀지지 않았다. 양쪽에서 타이밍 맞춰 밀어야 겨우 좁아질 것 같은데 엇박자로 힘내니 뭐가 되려야 될 수가 있나. 가을 내 희로애락이 냉탕과 온탕을 순식간에 오갔고 지쳐버린 우리는 그간 추억을 쌓은 몇 년이 무색하게 남이 되어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보도블록 위에 자연 낙과한 은행 열매가 가득했다. 노릇하게 구운 은행구이에서 나던 향과 다르게 고약한 냄새가 났다. 밟혀 터진 열매 사이로 멀쩡한 열매들이 보였다. 하나…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