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혹은 실패의 이분법적 사고
다 쓴 다이어리가 열댓 권이 있다. 일 년에 한 권씩, 십몇 년을 쓴 게 아니라 3개월짜리 다이어리라서 그렇다. 모임을 한창 나가던 20대 중반 시절에 쓰던 것인데, 단기 목표를 설정하고 하루 일과를 세세히 기록하기에 효율적이란 생각에 마음에 쏙 들었다. 다이어리를 처음 펼친 날에는 3개월 후에 이룰 목표, 매 달 이룰 목표, 읽을 책을 설정하고 매일 to-do list와 하루 일과를 기록한다. 다이어리를 시작할 때 목표는 ‘꾸준히 쓰는 것’이어서 단 한 줄이라도 매일 작성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건너뛰는 날도 있었지만 오전에 할 일을 기록하고 밤시간에 할 일을 마쳤는지만 체크하자며 간결하게 생각하니 안 되던 게 또 됐다. 동그라미, 동그라미, 엑스, 세모. 이렇게 펜을 긋다 보면 펜 쥔 김에 여백 공간에 일기를 적게 되니까.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술자리가 잦았다는 점이다. 한창 모임에 나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던 때라 일주일 중 5일은 술자리가 있어 ‘꾸준히 쓰는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귀가해서 다이어리를 작성하니 개발새발 글씨로 한, 두 줄 적기 일쑤였고 그마저도 못 쓰는 날이 있었다. 약속에 나가기 전에 쓰면 어떨까? 오후 3,4시쯤 다이어리를 작성하자니 아직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지 않아 to-do list에 체크할 수 없는 목록이 있고 무엇보다 하루 동안 보고 느낀 점이 없어 일기를 적기가 무척이나 난감했다. 어… 오전에 빵과 커피를 먹었는데 빵이 고소했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고… 오던 길에 네잎클로버를 찾으려고 길가에 쭈그리고 앉았지만 찾지 못했다. 이렇게 적을 순 없지 않은가. 사실 그런 식으로 적다가 신물이 났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다가 저녁에 사람 만나는 게 주요 일과인 내겐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느끼는 게 많았기에 그것을 담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래서 술자리에 다이어리를 들고 갔다.
거리까지 소리가 튀어나가는 대형 스피커. 노란색 펜던트 조명. 테이블엔 피자 두 판과 레드 와인 그리고 노란색 다이어리가 있다. 지인들과 만나 왁자지껄 떠들고 와인잔을 부딪히고 하하 호호 웃는다. 지난주 토요일에도 본 것 같은데 대화가 왜 이리 즐거운지.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원보틀이 투보틀 될 때까지 마신다. 취기가 정수리부터 발가락까지 한 바퀴 싸악 감돌고 나면 웃음이 헤퍼지는 것 같다. 이때가 마지노선이다. 정신을 붙잡고 일기를 쓸 수 있는. 노란색 다이어리와 0.3mm 굵기의 검은색 펜을 가방에서 꺼내 테이블에 놓자 앞에 앉은 지인이 그게 뭐냐며 묻는다. 저, 일기 써요. 남은 셋끼리 대화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 뒤 오늘 날짜의 페이지를 펼친다.
운동 1시간 O
데미안 읽기 O
엄마에게 안부 전화하기 O
저녁 7시, 을지로 약속 O
to-do list를 먼저 체크해 준 후 하단 빈 공간에 일기를 적는다. 낮에 읽은 데미안의 문장 일부를 필사한 후 술자리 대화 소재로 나온 인연에 관련된 내 생각, 남들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적는다. 분량이 짧아 소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집중력이 짧을 땐 10분 정도, 쓰다가 몰입이 될 때는 15분 좀 넘는 시간이다. 노란색 패브릭 커버를 닫고 지인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렇게 지켜낸 루틴은 약 일 년에 걸쳐 습관이 되는 듯했으나 예상치 못한 다이어리 판매 중단으로 멈추고야 말았다.
3년을 머문 경기도를 떠나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먼지가 소복이 내려앉은 책장, 켜켜이 정리된 책들을 플라스틱 박스에 집어넣다가 알록달록한 책 뭉터기를 발견했다. 노란색, 빨간색, 보라색, 초록색, 파란색, 흰색과 검은색까지. 여느 책하고 다를 바 없는 두께여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몇 년 전 열심히 쓴 다이어리들이었다. 거실에 널브러진 옷가지들과 생필품들을 뒤로한 채 자리에 앉아 다이어리를 펼쳐보았다. 첫 페이지엔 그 당시 꿈꾸었던 소박한 3개월 목표가 적혀 있었다. 인문 고전 소설들을 몇 권 읽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버린 가을. 일주일에 5번 헬스장 가기에 성공한 겨울. 주 1회 술 마시기에 실패한 봄과 이직하기에 성공한 여름까지. 그때 당시 목표로 한 특정 숫자를 100% 달성하지 못하면 실패라고 생각했다. 세 달 동안 인문 고전을 6권 읽기로 하였으나 2권만 완독 했으므로 실패. 주 1회로 술자리를 줄여보고자 하였으나 평균 주 2.5회가 되었으므로 실패. 그러나 그 시절 완독 하지 못한 4권의 책들은 현재로선 완독 한 상태였고 술은 분기에 한 번, 이벤트처럼 경험하는 수준이 되었다. 목표로 한 3개월도, 33개월도 더 지난 시간이지만 결국 해낸 것이다. 먼지 투성이 집에서 발견한 ‘결국 해냄’은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박살 냈다. 나는 그동안 목표의 0과 100 사이의 어딘가에서 매 순간 성취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과정임을. 이제야, 비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