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함을 달래주는 보리차 한 잔
어릴 적 우리 집은 허물어져가는 기와집이었다. 흔히 시골집 하면 떠오르는 그런 모양새 말이다. 대문 바로 옆 키 큰 나무 한 그루와 좁고 긴 마당 한편에는 개집과 야외 화장실이 있었다. 어렴풋이 부엌에 존재하던 아궁이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오늘날 집의 전기레인지를 보면 아궁이는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주방기구기에 기억의 정확도가 의심될 지경이다. 그 시절 어머니는 내 또래 정도였을 것이다. 무튼 그 집에서의 모든 살림은 당연하게도 어머니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방랑자의 삶을 살며 가끔 손님처럼 집에 방문하였고 게다가 그는 육 남매의 막내여서 고령의 부모님을 두기도 했다. 고령의 시부모님, 아직 한참 어린 두 아이. 도합 넷의 삼 시 세끼를 챙기는 하루란 어떨까. 그녀의 일과는 고작 식사 준비에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독립한 지 수년이 지난 내가 감히 예상해 보건대 오전에는 시부모님 식사 챙기기, 이후에 아이들 깨워서 밥 먹이고 등원시키기. 개 밥 챙겨주고 산책시키기. 설거지 및 주방 정리하기. 안방, 아이들 방, 시부모님 방 정리하기. 마당과 마루 청소하기. 그러다 보면 점심때가 돌아오고 다시 주방에서 요리를 해야 하는 그런 일상 아니었을까.
마루에 앉아 혼자 놀고 있을 때 어머니는 안방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늦은 끼니를 챙기고 계셨다. 라면에 보리차 한 잔. 아직 어린 나는 라면이 무언지도 몰랐지만 맛있는 냄새는 맡을 줄 알았다. 어머니는 빨간 국물에 담긴 꼬불한 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호, 호 불어 먹고 보리차를 한 입씩 마셨다. 그렇게 그 꼬불한 면이 점점 짧아졌고 입가심을 하듯 보리차를 계속해서 마셨다. 짧게 카하- 하는 소리와 함께.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어머니는 주방 불에 무얼 올려둔 건지, 잠시 자리를 비웠고 마침 호기심이 동한 나는 빨간 국물을 어머니 몰래 마시기로 했다. 시원하고 짭짤한, 그리고 칼칼한 맛이었다. 처음 느껴지던 시원함은 곧바로 화-한 느낌이 되었고 혓바닥을 불태웠다. 다급해진 나는 옆에 있는 보리차를 들이켰는데 구수하면서 쌉쌀한 맛이 났다. 국물맛과 섞여 이상한 맛이 나나? 다시 한번 맛본 보리차의 맛은 여전히 쌉쌀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맛없는 걸 마신 걸까? 의문이 들었으나 몰래 먹은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다시 마루에 가 앉았다. 곧이어 졸음이 왔다.
시간이 흘러야만 깨닫는 것이 있다. 어머니 말씀이 그랬다.
어머니는 종종 너희가 한번 엄마 나이 되어봐라. 나중에 되면 이해할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초등학생의 나도 고등학생의 나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흘러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고 온전히 생활을 꾸려가게 될 때쯤, 어머니가 항상 말하던 공과금의 무서움을 알았다. 시간과 돈을 맞바꾼 근무 시간이 지나고 집에 오면 텅 비었던 집에 왜 이리 먼지가 쌓인 건지. 매일같이 방바닥을 청소하고 저녁 한 끼 요리해 먹는 일상이 버겁기만 했다. 주말 같은 때 약속 없이 집에서 세끼 만들어 먹는 날이면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요리하고 설거지하다 하루가 끝이 났다. 이대로라면 혼자 벌어 나 한 명 챙기기도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직장에서 만난 사수는 나처럼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는 퇴근 후 주로 맥주를 마신다고 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든 현장에서 일하든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건 매한가지라며 샤워하고 마시는 맥주 한 캔이 그렇게 좋단다. 갓 사회에 뛰어든 내겐 출근 전날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매일 맥주를 마셔대는 그가 알코올의존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까. 잠실의 공사 현장을 한 달가량 담당하게 되었다. 사무실을 벗어나 정신은 온전한데 육체적으로 너무 고되었다. 이백 평 가량 되는 현장을 하루종일 뛰어다니니 발바닥이 남아나질 않았고, 땀과 먼지를 뒤집어쓰는 건 당연지사였다. 술, 술 생각이 났다. 그즈음부터 퇴근 후 맥주를 마셨다. 해외 캔 맥주, 국산 캔 맥주, PET병맥주 가리지 않고 죄다. 맥주를 마시면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실제로 몸에 좋은 작용을 할 리는 없겠지만 일단 정신적으로는 피로회복제가 되어주었으니까.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통증을 잊게 하고 낮에 있었던 상사의 꾸지람에 상한 기분을 풀어주는 것으로 맥주는 제 역할을 한 것이다. 잠실 현장이 마무리되던 날, 냉장고에 먹다 남은 PET맥주가 보였다. 플라스틱 병뚜껑을 돌려보니 김 빠지는 소리가 푸슈… 하고 힘 없이 새어 나온다. 투명한 유리잔에 따라보니 거품이 거의 없었다. 탄산이 죄 빠진 게 분명했다. 맛이 없을 걸 알면서도 김 빠진 맥주를 마셨다. 달콤, 쌉쌀한 맛이 입 안을 감돌았다. 술이 어떻게 달콤할까? 다시 한번 김 빠진 맥주를 마셔본다. 혀 끝으로 쌉쌀함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