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모든 술들에게

술 에세이

by 메밀

설 연휴에도 대형 서점은 운영을 한다. 나 같이 할 짓 없는데 책 좋아하는 인간에게 참 다행인 사실이다. 서점 운영이 마치는 9시 30분까지 약 1시간이 남은 시간, 따뜻한 겉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며칠 만에 나가본 바깥세상은 온통 하얬다. 집 앞에 세워진 자동차 보닛 위로 한 뼘만 한 눈이 쌓여있다. 서점의 영업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직원만 있으면 어쩌지, 마음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걱정도 했는데 그게 무색할 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8명이 앉을 수 있는 유일한 좌석에는 한 자리만 비어있을 뿐이었다. 국내소설 코너를 서성거리다가 SF장르의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큰 크기로 적힌 로맨스단편선이란 문구에 이끌린 건지 깔끔하게 디자인된 표지에 홀린 건지 모르겠지만. 가슴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로맨스 소설을 읽다 보면 과거의 어떤 날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지나간 옛사랑에서 시작한 회상은 설레던 날, 좋았던 날, 아팠던 날을 거쳐 술 생각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몇 년 전, 나란 감성적인 인간의 북받치는 감정을 감당하지 못할 때면 술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울컥 올라오는 감정들이 술에 희석되어 승화되곤 하니까. 소설을 읽다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힐 때면 한 문장에서 10분 20분을 머물게 된다. 작가가 쓴 이 문장이 과거를 회상하라는 의도를 담은 게 맞는 걸까. 겨우 집중력을 되찾아 한 편의 글을 다 읽었지만 과거 향수병에 걸려 현재에 존재하진 못했다. 술, 술 생각이 난다. 조금만 더 건강했더라면 집에 먹다 남은 위스키나 편의점의 캔맥주, 아니면 초록초록한 이슬이라도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술, 술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예닐곱 시절의 맥주는 엄마가 가족들 몰래 마시는 보리차였다. 스무 살이 되어 처음 마신 소주는 동기들과의 소통을 위한 즐거움의 수단이었으나, 직장인이 되었을 땐 회식의 싸구려 도파민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혼자서도 소주를 즐길 때가 되었을 때는 유난히 적적한 날 공허함을 달래주는 유일한 밤친구가 되었으며, 좋아하는 사람과 알아가는 과정에서 즐기던 커피가 되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사 오는 시원한 캔맥주는 고된 육체노동 끝에 욱신거리는 발바닥의 통증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였다. 한강에서 지인들과 돗자리 펴고 소주, 맥주 대신 고급지게 즐기던 위스키는 이제는 찬장 속에 보관하며 손님들에게 내어주는 웰컴드링크가 되었다.

나, 오늘은 술 못 마셔..

어느 날은 친구와 약속이 있었는데, 조제약을 먹어야 해서 술을 못 마신다는 말에 친구가 하이네켄 무알콜 맥주를 추천해 준다. 이거 진짜 맥주 맛이랑 비슷해. 무알콜 맥주 6캔을 두고 막역한 친구와 밤을 새 토론했다. 한창 취기를 빌려 삶을 꾸려가던 그 시절을 지나 우리는 술의 힘 없이도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서점에서 마감시간 15분을 앞두고 안내 방송이 나온다. 쩌렁하게 울리는 기계소리에 마무리하지 못한 단편선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 잘 마시고, 잘 취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너 참 건강하다고 말해준다. 체력 짱짱하고 간 튼튼하니 아직까지 그렇게 마시는 거라고. 그런 친구들을 볼 때면 부러우면서도, 이제는 술 없이도 밤의 공허함을 달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어느새부턴가 나는 술을 멀리하게 되었는데 가끔 컨디션이 완벽한 날에 속 울렁거림 없이 기분 좋게 취하는 술은 마셔도 좋지만 대게 컨디션이 별로거나, 조금만 마셔도 체기가 올라와 불쾌함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작년 하반기부터 여기, 저기 조금씩 아팠던 탓에 술을 입에 댈 수가 없다. 그러나 오늘같이 감정에 지배당하는 날이면 술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래서 글을 쓰게 되었다. 술 생각하면 설레었고 즐거웠고 또 가슴 아팠으며 그러나 행복했던 장면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니까. 다들 그럴 테니까. 모두의 추억 속 술잔에 담긴 게 단순 도파민 액체가 아니라 삶을 굴러가게 하는 동력원일 테니까. 이제는 술을 즐기는 대신에 술 속에 배어 있는 추억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우리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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