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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밀 Apr 14. 2019

첫사랑의 기억

건축학 개론



#1 첫사랑

건축학개론은 대표적인 첫사랑 영화이다. 내게도 그렇다. 첫사랑의 추억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는 그런 영화이다. 영화는 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리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개봉 당시 과거 승민 역의 이제훈, 과거 서연 역의 수지가 더 화제가 되었었다. 물론 납득이 역의 조정석과 재욱 역의 유연석도 반가운 얼굴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왜 그렇게 ‘첫사랑’ 영화로 회자되는지 알아보자.



#2 건축학개론(과거 승민과 과거 서연의 이야기)

갓 스무 살이 된 승민은 건축학과이다. 건축학개론  첫 수업 중에 뒷문으로 늦게 들어온 여학생 서연을 처음 봤다. 교수는 각자 살고 있는 동네를 강단에 나와 지도에 표기하라고 한다. 건축학과 선배인 재욱이 강단에 서서 서초동에 스티커를 붙였다. 보광동이 어디냐는 교수의 질문에 재욱은 보광동이 서울에 있는 거냐고 되묻는다.


재욱 : 강북은 잘 몰라서요


지도에 보이는 강과 그 아래 위로 나뉘는 강남과 강북, 기껏해야 강 하나로 나뉠 뿐인데 그 차이는 선명하다.


서연이 지도에서 정릉에 스티커를 붙이자, 교수는 정릉이 누구의 능이냐고 질문한다. “정종...? 정조? 정약용....?”이라고 대답하며 모두의 웃음을 사지만, 승민만은 웃지 않는다. 그저 같은 동네에 사는 서연에게 관심이 갈 뿐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시작하는 것, 이게 바로 건축학개론의 시작입니다.



첫 과제를 받은 승민은 11년간 살고 있는 동네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한참 사진을 찍던 도중, 수업 때 보았던 서연과 마주한다. 서연이 먼저 승민에게 말을 걸고 어쩌다 보니 둘은 같이 정릉을 걷게 된다. 걷다 보니 어느 한옥집 대문 앞에 멈춰 서게 된 둘.


승민 : 여기 빈집이에요. 아무도 안 살아요
서연 : 왜요?
승민 : 그러게요. 왜 아무도 안 살지...


서연은 대담하게 빈집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빈집에 들어가 마루에 앉는 순간, 승민에게 반말한다.


첫사랑을 다룬 영화이니만큼 장면 하나하나에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있단 생각이 들었다. 빈 집은 두 사람의 ‘비어있는 마음의 방’이고, 그 빈집에 함께 들어간 승민과 서연은 서로의 빈 방에 서로를 들이게 된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 숙제를 같이 하는 거 어때?


정릉 토박이인 승민에게 서연은 자신이 이제 막 이사를 와서 잘 모르니 함께 과제를 하자고 제안한다. 먼저 알아본 것도, 말을 건 것도, 과제를 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서연이다. 두 번째 수업 날,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먼 곳까지 가보기’라는 과제가 주어진다. 승민과 서연은 정릉에서 42 정거장 떨어진 개포동에 가기로 한다.


서연: 서울은 진짜 넓구나. 건물들도 대따 크고
승민 : 너 고향이 어디야?
서연 : 제주도. 제주도 사람  처음 봐?
승민 : 제주도가 그렇게 살기 좋다며.
서연 : 살아봐. 살기 좋긴. 내가 서울 오려고 얼마나 난리 쳤는데.
승민 : 에이, 서울이라고 뭐 다 좋나
서연 : 난 좋던데. 서울은 다 좋던데. 압구정동도 진짜 멋있더라


제주도가 고향인 서연이 서울에 오면서 품었을 기대감, 동경이 드러난 장면이다. 스무 살 서연에게 서울은 ‘높은 건물’, ‘강남’, ‘화려한’등의 수식어로 정의되지 않았을까.


승민과 서연은 가정사를 이야기하며 가까워진다.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가까워지는 건 흔한 일이다.


기억의 습작 - 전람회


들을래?


이젠.. 버틸 수 없다고...


서연이 건네준 이어폰 한쪽에서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흘러나온다. 승민은 처음 듣는 노래지만 왠지 마음에 들었다. 이 장면에서 승민의 눈빛을 보면 서연에게 반한 걸로 보인다. 가사마저 ‘이젠 너를 향한 마음을 숨기는 걸 버틸 순 없다...’라고 들리는 건 착각일까.


카메라는 음악을 듣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줌 아웃하며 현재의 승민(엄태웅)을 보여준다. 현재 승민의 눈길이 닿는 끝에는 현재 서연(한가인)이 서 있다. 10년 만에 만난 서연을 보며 옛 추억이 떠오르는 승민이다.



#3 서연의 집(현재 승민과 현재 서연의 이야기)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는 현재 승민(엄태웅)에게 옛 친구가 찾아온다. 찾아온 이는 바로 현재 서연(한가인)이다. 서연은 자신을 한눈에 알아보지 못한 승민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오랜만에 근황을 물으며 알게 된 건 서연이 돈 많은 의사 남편을 두고 제주도에 별장을 지으려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괜스레 배알이 꼴린 승민이 서연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시비를 걸더니, 결국 참다못한 서연이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어찌 저찌하다 결국 승민은 서연의 의뢰를 수락하게 되고, ‘첫 작품’으로 제주도에

위치한 서연의 집 설계를 맡는다.


건축가에게 첫 작품이란 첫사랑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여러 안을 설계하지만, 그때마다 서연은 새로운 집을 낯설어한다. 그 와중에 은채가 증축을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한다. 파격적인 제안이지만 서연의 마음에 들었던 걸까? 셋은 새로 집을 짓는 게 아닌, 일부를 남기고 일부를 살리는 리노베이션을 하기로 결정한다.


옛것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추억을 보존하고 싶은 건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서연은 옛 승민과의 소중한 추억을 잊지 못해 승민을 찾아온 것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은채가 ‘증축’을 제안하는 순간, 서연과 승민 둘이 아닌, 서연과 승민과 은채 셋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서연은 승민을 위해 넥타이를 고른다. 여자 친구가 있는 줄은, 그것도 결혼을 앞둔 여자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승민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함께 온 은채를 본다.


그게 저예요. 이쁘고 착한 애.
그래도 언니는 아셔야 될 것 같아서요.


은채는 서연에게 승민의 첫사랑을 아냐고 묻는다. 그렇게 영화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4 11월 11일(과거 승민과 과거 서연의 이야기)


서연과 승민은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다시 한번 빈 집을 찾는다. 서연이 주말 동안 빈집을 깨끗하게 정리했다며 승민에게 “이제 여기 내 집이야.”라고 말한다.


동경하던 서울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던 재욱. 서연은 재욱을 보며 동경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이 끌리는 쪽은 승민이다. 빈 집을 청소하며 복잡했던 자신의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것이다.


승민 : 그럼 혹시 너도 재욱이 형 좋아해?
서연 : 왜... 그럼 안돼?
뭐 그래 봤자, 재욱 오빠 나한테 관심도 없고...


서연은 재욱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승민에게 말한다. 처음에는 서연이 재욱에 호감을 가지고 있단 확신이 들었지만 영화를 거듭 반복해 보다 보니 다른 해석의 여지도 떠올랐다. 서연의 말은 그저 재욱을 향했던 호감의 잔재일 뿐, 승민의 반응을 보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세 번째 과제, 그곳에 살고 싶다


서연 : 나 오늘 생일이다
승민 : 생일이면 친구들하고 파티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야?
서연 : 넌 내 친구 아니야? 우리끼리 파티할까?


생일을 같이 보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 10년 뒤에 뭐 하고 있을까?


서연은 아나운서로 유명해져서 돈도 많이 벌겠다며, 나중에 승민에게 집을 지어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계약금으로 건네는 CD 한 장,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담겨있다.



#5 자이가르닉 효과

10년 후 11월 11일. 현재 승민과 현재 서연은 제주도에서 함께 미역국을 먹는다. 아직까지 11월 11일을 기억하고 있는(오해하고 있는) 승민을 보며 옛 감정을 느끼는 서연이다.


은채는 모르는 둘 만의 추억. 은채는 모르는 승민의 모습이 아닐까? 사랑하는 남자의 낯선 모습을 다른 여자가 알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준공을 앞둔 상황에서 서연은 설계를 바꾸고 싶다는 말을 꺼낸다. 결혼을 앞둔 상황이라 은채는 극구 반대하지만, 승민은 본인이 끝내고 싶다는 의지를 비친다.


서연에 대한 사랑일까? 미련일까? 본인의 첫사랑에 대한 애착일까?


결국 승민은 다시 설계에 들어가고, 영화는 과거로 돌아간다. 어느새 건축학개론 수업의 종강 날이다. 과거 승민은 과거 서연에게 고백하기 위해 수업까지 빠지고 서연의 집 앞을 서성이만, 서연은 수업에 오지 않은 승민을 애타게 찾는다.


재욱 : 너 인마 이사했다며?
서연 : 얼마 안 됐어요.
재욱 : 그래? 그럼 종강 파티나 같이 들렀다 갈까?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서연이 이사 후 재욱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연은 재욱과 종강파티에 가게 되고, 만취한다. 그리고 서연의 집 앞에서 셋이 모이게 된다. 서연에게 찝쩍대는 재욱을 보고 피하는 승민. 언제나 그렇듯 선배인 재욱에게 패배감을 느낀다. 결국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승민의 첫사랑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그날 이후 서연은 승민에게 수차례 연락해보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다. 결국 승민의 단대 앞까지 찾아간 서연이지만, “꺼져줄래”라는 말까지 듣는다. 이렇게 서연의 첫사랑도 마무리된다.


자이가르닉 효과란 마치지 못한 일을 마음속에서 쉽게 지우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첫사랑이 잊히지 않는 이유도 자이가르닉 효과와 연관이 있다. 과거 서연은 어른스러운 재욱과 마음이 끌리는 승민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이다. 결국 승민과는 찝찝한 결말을 맞게 되고, 훗날 재욱과 비슷한 남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게 된다. 10년 전의 선택과 지금의 선택이 틀렸음을 느끼고 이제와 승민을 찾아왔지만, 승민은 결혼을 앞두고 있기에 이미 늦은 일이다.


그러나 사랑을 함에 있어 틀린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연이 과거에 승민과 잘 되었다면 둘은 영원할 수 있었을까? 두 사람은 헤어졌을 확률이 더 크다. 그렇다면 그건 틀린 선택일까? 서연이 돈 많은 의사와 결혼한 것은 틀린 걸까? 이혼한 것이 틀린 선택일까? 이미 지난 일을 두고 선택을 후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둘은 10년이 지난 후, 서로가 서로의 첫사랑이었음을 깨닫고 감정의 폭풍에 휩싸여 키스하게 된다. 그 후 승민은 예정대로 은채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고, 서연의  집에 택배 하나 가 도착한다. 그 안에는 서연의 CD플레이어와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담겨있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당신은 누군가를 첫사랑에 품어보기도, 누군가의 첫사랑이 되어보기도 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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