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낭만, 그 사이
얘들아
겨울이 되면 올 거야
그 사람은 겨울이 되면 항상 오거든
엄마가 있는 곳으로 오게 돼 있어
하얀 안경을 쓴 사람이야
엄마는 그 하얀 안경을 무척 좋아한단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기를 기다리지
왜 이렇게 세상이 하얗지 ...?
그럼 얼른
손가락으로 동그란 창문을 그려주는 거야
그 하얀 안경 위에 말이야
오늘 밤에 그 사람이 올 거야
하얀 안경을 쓰고 우리 집으로 올 거야
그 사람은 너희가 있는 곳으로 오게 돼 있거든
왜 이렇게 세상이 하얗지 ...?
하고 그 사람이 물으면
그 하얀 안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렴
그리고 그 위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는거야
고마워 얘들아
오늘은 정말 추웠단다
하고 그 사람이 겨울의 인사를 할 거야
동그란 창문 너머로
아빠가 얼굴을 내밀 거야
아빠는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올 거야
아빠는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돼 있어
집 안이 한껏 아늑해지는 계절, 겨울.
기다리던 그 사람이 돌아왔습니다.
어깨 위에 쌓인 차가운 냉기들이
후드득 쏟아져 내리지요.
어서 와~ 많이 추웠지?
집 안을 느긋하게 떠다니던 따뜻한 공기들이
순식간에 그를 향해 내달립니다.
휘리릭! 차가운 몸을 감싸면
그 하얀 안경을 쓴 사람을 만나게 되지요.
왜 이렇게 세상이 하얗지?
뿌옇게 서리가 낀 안경을 쓰고는
더듬더듬 걸어들어오는 남편의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이리 와 봐.
안경 위에 작은 동그라미를 콕! 찍어 주고
이제 보이지?
그제야 '허허'하고 웃습니다.
끝까지 느긋한 이 사람.
그 순하고 느긋한 남편을 좋아할 수밖에요.
그 순하고 느긋한 시간을 사랑할 수밖에요.
우리 결혼하고 처음 함께한 겨울.
우리 둘 만의 작은 낭만.
이제 하얀 안경에 창문을 내는 일은 아이들에게 넘겨주려고요. 신혼이라는 아름다운 시절을 지나, 엄마 아빠가 된 우리는 빠르고 민첩해야 하니까요. 낭만은 잠시 접어두기로 합니다.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서인지, 올 겨울에는 그 사람을 몇 번 못 봤네요. 남편도 안경에 낀 서리를 후다닥 닦아내고, 아이들 따라다니느라 바빴겠지요? 아이들 키우면서 많이 빨라졌습니다. 하하...
얘들아.
겨울에는
그 사람과 함께
작은 낭만을 즐기렴.
참고로, 동그라미는 작을수록 좋단다.
작을수록 웃기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