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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an 10. 2019

분위기 깨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되기의 어려움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뒤적이다 보면 별별 개똥철학을 다 접하게 된다. 다들 ‘흠, 이건 맞는 말이지’ 싶은 것도 리트윗하고,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릴!’하는 것도 리트윗하기 때문에 제법 그럴듯한 얘기든 정반대로 터무니없는 소리든 아무렇게나 뒤섞여 올라오는 것이다. 


아무튼 최근에 그렇게 접한 얘기 중에 제법 인상 깊었던 것은 혈액형 얘기였다.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괴팍하다는 식의 혈액형 성격론 얘기가 아니라, 그런 혈액형 얘기가 나왔을 때 혈액형 성격론은 우생학으로부터 시작되어 비과학적이니 어쩌니 과학적으로 걸고 넘어지는 것은 아싸나 하는 짓이라는 얘기다. 그 글의 요지는 요즘 혈액형 성격론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거의 없으므로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화술의 한 가지인데 굳이 그걸 논리적으로 비판하면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잘난척하는 꼴이 된다, 그러니까 네가 아싸지...... 라고 할 수 있었다. 혈액형 성격론을 비판한다고 꼭 사회성이 낮은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야 없겠지만, 상당히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잠깐 혈액형 성격론에 대해 내 개인적 의견을 다시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겠는데, 나는 개인적 체험 때문에 그것을 믿을래야 믿을 수 없게 된 사람이다. 어릴 때 B형이었다가 나중에 A형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수술을 통해 피를 완전히 갈아버린 것은 아니고, 어릴 때 학교에서 집단으로 한 검사 결과가 무슨 오류가 있었는지 잘못 나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전형적인 B형이라고 믿고 있던 성격이 사실 A형이었음을 알고 이거나 저거나 다 그럴듯한 얘기라는 걸 비교적 어릴 때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있음에도 누가 혈액형 성격론 얘기를 꺼냈을 때 굳이 나서서 정정하진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그렇게 누군가의 믿음 하나를 박살내면 그 사람이 무안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몇가지 유형별로 나눠서 맞아맞아 하는 것은 사실 꽤 재미있는 일이고 시간도 잘 가기 마련이다. 물론 그런 비과학적 고정관념이 굳어지는 풍조에 일조한다고 생각하면 전혀 유해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역이나 인종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과는 맥락이 좀 다르니까 그럭저럭 즐길 만한 화제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분위기를 깨지 않고 화제를 슬쩍 바꾸는 편이 낫지 않나 싶다. 


이 사진을 보고 즐거워보인다, 혹은 개가 귀엽다고 말한다면 무난한 감성의 소유자겠지만, 왜 두 사람 다 컵을 반대로 쥐고 있냐고 묻는다면 대화하기 약간 피곤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혈액형 얘기에서 그렇게 열린 태도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요즘은 어째 나이를 먹으면서 더 괴팍하고 편협해지는 것인지 다른  분야에서는 뭔가 거슬리는 일만 있으면 걸고 넘어지려는 경향이 심해진 것 같다. 특히 내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상급자’가 없을 때  그렇다. 최근에는 여럿이서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실제로 누가 저런 단어를 쓰냐, 저건 어법에 맞지 않는다 등등으로 사사건건  직업병적인 태클을 걸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방송을 함께 시청하는 사람으로서 결코 유쾌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한 지적이 옳았을지는 몰라도 그 옳음이 필요한 때에 적절히 제기된 것은 아니었으리라. 이래서야 혈액형 성격론은 비과학적이라고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나 매한가지다. 


같이 있으면 재미있고 기분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정말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일인데,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가를 떠올려보면 일단 개념적으로는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식사할 때 음식이 좀 짜다고 한국인의 염분 섭취량이 너무 엄청나고 그것 때문에 위암 발병률이 높으니 어쩌니 하는 사람보다는 전에 어디서 뭘 먹었는데 정말 맛있으니 다음에 꼭 가보라는 (혹은 가보자는) 사람이 같이 있기엔 즐거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가 도통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사람이란 나이 먹을 수록 경험이 쌓여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가리리게 되는 데다, 어째서인지 자꾸 지적과 충고를 하고 싶어지는 탓이다. 게다가 긍정적인 얘기를 꺼내려면 긍정적인 체험을 많이 해야 하는데, 보통 긍정적인 체험보다는 부정적인 체험을 더 많이 하거나 더 또렷이 기억하기 마련이라 나처럼 ‘매사에 부정적인’ 인간이 운전대를 틀어 상쾌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란 물구나무 서서 엉덩이로 이름을 쓰는 것처럼 어려운 일로 느껴진다. 


그나저나 요 몇년 동안 이렇게 쓰는 수필도 점점 부정적인 것들만 가득하게 된 것 같아 걱정이다. 집안에만 처박혀서 이렇다할 대화도 하지 않고 매일 똑같은 일상만 반복하니 여차하면 인생에 대한 불평불만만 토해내게 되는 것이다. 벌써 몇 주째 서너 시간씩 수필을 썼다가 차마 올리지 못하고 저장만 해두었다. 일견 새롭고 즐거울 게 없는 일상 속에서도 재미있는 얘기를 찾아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으련만. A형이 아니라 O형으로 전직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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