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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an 16. 2019

이상형 없는 사람

요즘도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예전부터 미혼의 유명인사, 연예인 등의 인터뷰 따위를 보면 ‘이상형’에 대해 묻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가?’ 하고 물으면 ‘다정하고 가정적인 남자’ 혹은 ‘잘 웃는 여자’ 등으로 대답하는 것이다. 마치 적당히 오랜만에 마주친 지인들이 언제 밥이나 먹자고 인사하고 실제로 식사하지는 않는 것처럼 의례적이지만 딱히 내용은 없는 대화처럼 느껴진다. 사실 묻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이상형 따위는 별 관심 없는 게 아닐까? 


아무튼 미디어에서 이런 식으로 의례적인 질문을 인사처럼 주고 받다보니 미디어를 즐겨 보는 주류층, 특히 대학생들은 누군가의 ‘이상형’을 알아내어 기억하는 것을 대단한 재미거리로 여기는데, 한 번은 이런 광경도 본 적이 있다. 학교에 ‘허지웅’ 씨가 강연하러 왔을 때, 학생회에서 고르고 고른 질문이랍시고 던진 질문이 ‘어떤 언어를 하는 여자가 매력적인가요?’ 였던 것이다. 외국어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대학이니까 그 질문의 의도란 아마 ‘외국어중에서는 ??어가 매력적으로 들리네요’ 등의 대답을 듣고 ??어 과 학생들이 ‘와, ??어 만세!’ 하고 왁자하게 즐거워하는 흐름을 만들려는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무슨 언어를 한다고 누굴 특별히 매력적으로 느끼는 경우란 상상하기 힘든 것이고(일단 알아들어야 매력이고 뭐고 느낄 것 아닌가?), 허지웅 씨도 그게 대체 무슨 말뼈다귀 같은 소리냐는 식으로 반응해서 그 질문은 흐지부지 넘어간 것으로 기억한다. 누가 어떤 타입을 좋아하는지 알아내는 것을 무슨 영혼의 진명 알아내듯이 신나고 재미있는 이벤트로 여기는 것도 확실히 좀 문제가 있다 싶다. 


그러고보니 신입생 때는 선배 한 명이 이상형에 대해 물어서 난감했던 적이 있다. 그때까지 이상형같은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이상형이 뭔지 질문해서 은근슬쩍 마음을 떠본다는 전개도 존재하지만, 그 선배는 남자였으니까 그런 전개도 아니었다. 남자가 남자 마음을 떠볼 수도 있지 않느냐고? 그것도 그렇지만 그 선배는 여자친구와 열심히 연애중이었으니 이제 그런 가능성은 접어두자. 여자친구 따위 잊어버릴 정도로 끌린 것은 아니냐고? 다행히 내가 그 정도로 획기적인 매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아무튼 나는 적당히 대강 대답했고, 그 이야기도 허지웅 씨가 받은 질문처럼 적당히 대강 넘어갔다. 


그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이상형이 없고, ‘슬슬 나도 이상형 하나쯤은 설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필요성 같은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되고 싶은 인간상 같은 것이야 있지만,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나 웃을 때 목젖이 보이는 여자, 혹은 김치볶음밥을 잘 만드는 여자가 최고라는 식의 확고한 지론은 없다. 사람이란 참으로 신기해서 그런 식으로 내가 끌리는 매력 포인트를 온통 모아놓아도 넌더리나게 꼴보기 싫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도통 매력적인 점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도 견딜 수 없이 끌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대답하면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이런 상대와 사귀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런 건 있잖아?’ 같은 말을 듣는데, 그러면 나도 적당히 대답해주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성가셔도 ‘그런 식으로 실제 인간을 속성으로 파편화하고 조합하여 연애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행태가 실제 삶과 예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양산하고 나아가 이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라고 쏘아붙일 수는 없다. 보통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나보다 윗사람이라 원하는 만큼 무례해지면서도 자신이 무례하다는 발상조차 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하는 대답의 바리에이션이 대체로 ‘예쁘고 잘 웃고 옷 잘 입는 여자’인데, 사실 하나씩 따져보면 별 의미 없는 이야기다. 일단 외모가 수려한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좀처럼 찾기 힘드니 말하나 마나다. 잘 웃는 것 역시 시도때도 없이 낙엽 굴러가는 것만 보고도 자지러지게 웃어대는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내 말에 잘 웃어주는 사람’을 뜻하니까 ‘나와 성격이 잘 맞는 사람’을 돌려 말한 것에 가깝다. 자신과 성격이 맞지 않아서 도통 농담이 통하지 않거나 밥먹듯이 싸워야 하는 상대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겠지. 남은 것은 ‘옷 잘 입는 여자’인데, 사실 나는 옷만 잘 입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동경과 호감을 품기 때문에 역시 큰 의미는 없는 셈이다. 


요컨대 이상형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다면 내가 들려줄 말은 ‘딱히 할 말이 없군요’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말에 불과한 셈이다. 아마 남자 연예인이 흔히 들려주는 대답 ‘잘 웃는 여자’ 따위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사실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다음중 가장 취향인 사람을 고르라는 문제 몇백 개를 풀어보면 취향 어디 가지 않는 법이라고 나도 분명 일관된 경향성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사람의 외모나 성격들을 쭉 깔아놓고 짜맞추는 것은 선호하는 연예인이나 가상의 캐릭터를 알아보는 정도라 딱히 호구조사하듯이 물어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아마 어느 집단에서 이상형을 묻는 것은 그 집단 내에서 멋대로 짝짓기 게임을 해보고 싶다는 뜻이 아닐까


그나저나 서브컬처, 특히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쪽에서는 ‘최애캐’라고 해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개념이 있는데, 이것은 있어서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변변한 최애캐 하나 가진 적도 없다. 나도 애니메이션을 제법 보는 편이니까 작품별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도 있고, 방영 분기중에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도 있기 마련이지만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 좋은 캐릭터는 없었지’ 싶은 경우는 없다. 작품의 맥락이나 그것을 보는 나의 상황에 따라서 그때그때 받아들이는 게 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체적으로 잘 만든 캐릭터는 작품 속에서 어떤 때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꼴보기 싫고 짜증만 나기도 한다. 요는 명작에 등장하는 잘 만든 캐릭터일수록 무작정 덮어놓고 좋아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물론 최애캐를 정해놓고 사랑하는 이들도 캐릭터의 단점을 몰라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까지 포함해서 좋아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어째 그렇게까지는 열정을 가질 수가 없다. 감정적인 에너지가 모자란 탓일까? 아마 행복감을 쟁취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가장 좋아하는 무엇을 정해놓고 달려갈 수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같은 맥락에서 완벽한 이상형을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사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멋진 짝을 만날 확률이 높은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통계가 있는 게 아니니까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본인이 행복하든 말든 왜 이상형이 없냐고 신기하게 여기진 않았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제 이상형은 남의 이상형을 궁금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해 보고 싶은데, 소심해서 그건 불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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