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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an 23. 2019

치킨을 그저 사랑하기엔

바삭바삭하게 잘 튀겨진 치킨에 쌉쌀하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순간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군침이 도는 음식이지만 슬슬 반갑지만은 않다. 전에도 이런 얘기를 적었던 것 같은데, 전보다 더 반갑지 않게 되었다. 


아니, 맛있는 음식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옛날의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 법하지만 요 몇 년 사이 그런 이유가 분명 존재하고, 심지어 상당히 강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스파이더맨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교훈을 얻었듯이, 나 역시 ‘큰 쾌락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교훈을 얻게 된 것이다. 삼촌은 건강하고 안전하게 잘 계시지만. 


맛있는 음식을 반기지 않을 가장 큰 이유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맛있는 음식에는 막대한 칼로리가 따른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불변의 진리라, 여지껏 엄청나게 맛있는데도 칼로리는 적은 음식을 본 적이 없다. 타협해서 ‘그럭저럭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칼로리는 적은 음식’까지 내려간다면 잘 구운 김이나 두부, 제로 콜라 정도가 한계 아닐까? 하지만 이건 분명 타협된 결과고, 어느날 갑자기 ‘아, 오랜만에 친구 만나서 두부 시켜다 제로 콜라나 한잔 하면 좋겠는데’ 같은 충동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어머니가 ‘미역으로 만든 면'을 사서 먹어봤는데, 아니나다를까 미끄덩거리고 몰캉몰캉한, 어떤 면에서도 즐겁지도 않은 맛이었다. 하기야 칼로리가 극히 낮으니 맛이 있을 턱이 없지.) 


그런 한편으로 치킨을 먹고 싶은 충동은 꽤 부지런하게 찾아온다. 슬슬 치킨은 졸업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치킨을 먹고 싶어진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에 한 번쯤 강렬한 충동을 느껴서 꼬박꼬박 영어 공부 같은 걸 했으면 서울대를 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대체 어째서 이렇게까지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는지는 도통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주기적 충동의 진짜 문제는 자신의 건강 상태나 체중 따위를 고려해서 느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대학 때부터 쌓아온 꾸준한 치킨 섭취 습관은 말미잘이나 산호초처럼 제자리에서 손가락만 움직이는 요즘 생활에 힘입어 뱃살을 꾸준히 적립했고, 결국 얼마전에 인생 최고의 체중을 달성하고 말았다. 대학 시절에는 그렇게 체중 변화에 시달리지 않았는데,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서 비좁은 학교의 강의실과 강의실을 오가는 생활이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칼로리를 제법 소모했던 모양이다. 습관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격 같은 내면만이 아니라 체중과 체형 같은 구체적인 외면도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번성을 증명하는 것은 닭의 개체수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참으로 맞는 말이 아닐수 없다


치킨이 달갑지 않은 이유 두 번째는, 바로 치킨이 내 내면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치킨을 먹다 보니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고, 장기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뜻이다. 저녁으로 기름진 후라이드 치킨을 먹고 나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다음날 아침에 화장실에서 고생을 하게 된다. 20대 때는 거의 느껴보지 않은 증상인데, 내장이 늙은 탓일까? 그래서 몇 달째 매끼니 양배추 환을 챙겨먹고, 증상이 심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정로환까지 먹고 있다. 이게 대단히 힘들고 벅차고 고통스러운 일은 아니긴 하지만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특히 시간이 갈수록 증상과는 무관하게 마음이 무거워진다. 한 1~2년 전만 해도 ‘약 먹으면 되니까 뭐’ 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약을 먹으면 100퍼센트 괜찮다는 보장이 있다고 가정해도 내키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가능하면 약 먹을 일 따위는 만들고 싶지 않다. 아무리 치킨이 맛있고 좋아도 책임질 일 따위 저지르고 싶지 않다. 긍정적인 변화인지 부정적인 변화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무색하게도 어제도 그제도 치킨을 먹고 말았다. 치킨의 욕망에 완전히 무릎꿇은 것은 아니고, 살다 보니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자면 어머니가 드시고 싶다는데 거부할 명분도 대안도 없었기 때문이다. 명분은 둘째치고 대안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치킨이라는 음식은 도통 대안을 찾을 길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맛있고 여러모로 효율적인 음식이 없다. 심지어 시장 옆에 사는데도 대체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검색해보면 치킨 대신 냉면을 먹으라는 칼럼 같은 게 나오긴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식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대신할 수 있는 방식이고, 물론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집채만한 컴퓨터가 손톱만한 칩으로 바뀔 정도로 과학이 발전하는 동안에도 치킨보다 확고히 더 나은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암담할 지경이다. 과학자나 요리사가 들으면 ‘인간의 육체가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요리가 획기적으로 변화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며 어이없어할지도 모르겠지만, 혼자 투덜거리는 것 정도야 괜찮겠지. 어쨌거나 치킨은 여러모로 무서운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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