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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Sep 01. 2019

타이달과 음악 감상의 비극

“타이달Tidal”이라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아시는지? 최저 한 달에 만 원 정도로 고음질 음원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음질 좀 가려듣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유명한데, 나도 유선 음질 좋기로 유명한(혹은 그것 말고 별로 장점이 없다는) LG 스마트폰을 쓰면서 체험하기 시작했다.


서비스는 '내 기준'으로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다시 말해서 가요라곤 전혀 듣지 않고 재즈와 뉴에이지, 클래식 따위를 배경음으로 틀어놓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권할 만한 것 같다. 나는 이 정도로 만족스러운 음원 서비스를 써본 적이 없었다. 메뉴도 직관적이라 쓰면서 헤맨 적이 없고, 음질도 물론 빼어나다. 일본 쪽 음원이 별로 없다는 게 아쉽지만 사실 내가 즐겨 듣는 일본 쪽 음원은 어째 유튜브 말곤 어디에도 없는 듯하니 큰 단점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타이달에서 음질 이상으로 주목할 만한 장점은 추천이 빼어나다는 점이다. 어떤 음악을 듣다가 아래쪽으로 내려가 보면 관련 음반이 쭉 뜨는데, 이것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타율이 높다. 적어도 ‘뭐? 이딴 걸 내가 좋아할 줄 알았어?’ 하고 화가 치미는 경우는 없다. 나름대로 추천을 열심히 해대는 넷플릭스가(음원 서비스는 아니지만) 무슨 사이비 독심술사처럼 말도 안 되는 목록을 그럴싸한 모양으로 들이대는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지 차이다. 그래서 관련 음악 중 뭘 틀어도 흥미롭고, 심지어 내가 선택한 앨범 재생이 끝나고 자동으로 틀어주는 추천곡 역시 원래 듣던 곡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별생각 없이 듣고 있다가 ‘어라? 이 곡은 처음 듣는 것 같은데? 누구냐, 이 곡을 만든 사람은!’ 하고 감탄해서 하트를 찍어대곤 한다. 팝이나 락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간 만족스럽지 않다. 


다만 큰 문제가 있다면 역시 가격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 서비스 저 서비스 구독하느라 줄줄이 돈이 빠져나가는데, 음원 감상에 연간 12만 원 이상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적절한 기기를 갖춰두고 시간을 따로내서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비싼 값도 아니겠으나, 사실 나는 음악만 따로 듣는 시간 같은 게 없고 음원을 '다른 작업이나 독서의 배경음’ 정도로 소모하고 있으니 듣는다기보다는 안 듣는다는 말이 더 어울릴 지경이라 더욱 그렇다.


게다가 CD를 사서 핥듯이 듣던 시기부터 사놓은 음원도 그리 적지 않아서 ‘듣지 않는 용도’로 쓸 곡은 차고 넘치게 많으니, 굳이 한 달에 만 원씩 내면서 소유하지도 못할 음원을 이용하는 것은 별로 합리적이지 않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하여 타이달을 석 달 체험하고(새 계정을 두 번 더 만들었다) 결국은 아무 음원 서비스도 이용하지 않는 몸이 되었는데, 얼마 전에 이변이 일어났다. 타이달에서 무료 체험을 한 달 더 해보라는 이메일이 온 것이다. 당연히 무료면 한 달 더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싶어서 링크를 클릭하고 결제를 진행했는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돈이 차라락 빠져나가고 말았다. 알아보니 무슨 오류가 있었던 모양인데, 아무튼 되지도 않는 영어로 항의해서 환불을 받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다음 달이 되면서 또 돈이 나가고 말았다. 환불은 되었는데 그때 신청한 구독이 취소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타이달은 이제 나와 인연이 없을 거라고 마음먹고 돌아서면서 살피지 않은 게 실수였다. 항의를 하긴 했지만 ‘응? 네가 돈 나간 걸 돌려달라고 했지 구독을 취소해달라곤 안 했잖아?’ 식의 대답이 돌아왔다. 뭔가 속은 기분이지만 논리적으로 공박할 구석이 없어서 결국 타이달을 다시 유료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돈을 낸 만큼 눈에 불을 켜고 이 음반 저 음반 뒤적이며 듣고 있는데, ‘이 더럽고 치사한 놈들 같으니’ 싶었던 마음이 누그러지기까지는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좋긴 좋았던 것이다. 완벽히 돈값 이상을 한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합리적이든 아니든 즐길 게 늘어난다는 건 좋은 일이고, 그런 식으로 삶을 확장해가는 것은 멋진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인생이란 합리적일수록 납작해지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음악은 멋지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고 음악에 몰입할 시간을 확보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타이달에서 떠나 근본적인 음악 감상의 측면에서 들여다보자면, 고음질 음원이 빛을 발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일단 요즘 스마트폰들은 뭐든 간에 성능이 좋아져서 음질 차이가 그리 크지 않고, 고음질 음원 + 고성능 기기의 빼어난 해상력을 즐기려면 연결된 스피커 볼륨을 제법 키워야 하는데, 다른 작업에 방해된다고 소리를 줄여버려 사실상 뭘로 들으나 매한가지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출해서 이어폰으로 듣자면 주변 소음에 방해받거나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귓구멍에 때려 넣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아무래도 그리 유쾌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음악에 몰입하는 시간은 스마트폰으로 리듬 액션 게임을 할 때뿐이 되었으니…… 내게 필요한 것은 사실 고음질 음원이나 고성능 기기가 아니라 따뜻한 오후의 고양이처럼 얌전히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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