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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Dec 18. 2019

영화 챙겨보기의 고단함

한때는 영화에 꽤 관심이 많아서 비주류 영화를 찾아서 보는가 하면 영화 감상글도 쓰곤 했는데, 이래저래 먹고사는 일에 쫓기다 보니 영화관에 가는 것도, 심지어 진득히 앉아서 영화를 보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일주일에 영화    시간이 없다고 한다면 그건 물론 과장이다. 하지만 영화 앞뒤로 이런저런 문제거리가 세트로 딸려오기 마련이다. 일단 집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때는 영화 선정부터 문제다. , 오늘은 영화라도 볼까? 하고 자리에 아도 평생 봐도    만큼 영화가 넘쳐나니 오히려  봐야할지 정하기가 쉽지 않다. 수많은 영화가 표시되긴 하지만 영화의 이미지도  작품을 대표할 만한 것이 아닌 경우가 많고, 소개글 역시 심심한 요약이 대부분이라 '? 그럼 다음엔 어떻게 되는데?' 하는 호기심이 일지 않는다. 왓챠플레이라면 이용자의 리뷰라도   있지만, 넷플릭스는 그야말로 정말이지 작품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서 옛날 비디오방에서 비디오 빌릴 때만큼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기분이다. 나름대로 운영 기조가 있는 것이겠지만 이건 정말 너무한다.


그렇다고 서비스의 추천을 받아보자니 어째 영 신뢰가 가지 않는다. 빅데이터가 발전했다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골라주진 못하는 것이다. 재미있을 것 같다가도 너무나 꼴보기 싫은 장면이 나와서 꺼버리기도 하고, 흥미로웠던 시놉시스와 달리 재미있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 지쳐버리기도 한다. 이러다 보면 30분쯤은 금방 날아가버린다. 차라리 사람이 모아놓은 목록 따위를 보는 것이 낫다. 넷플릭스도 인간이 직접 골라서 추천하는 방식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하니, '이 작품을 좋아하면 이것도 좋아하겠지' 하는 짐작은 프로그램으로 규정하기 힘든 모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히 정리한 시놉시스와 감독, 배우 목록 따위를 데이터로 삼고, 그것을 '이 감독은 싫어' '이 배우는 좋아' '인체 훼손은 싫어'처럼 체크해서 걸러내는 방식을 쓰면 훨씬 낫지 않을까? 전문가들도 충분히 똑똑하니 이런 라벨링을 열심히 하고 있겠지만.


한편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는 대체로 '영화나 볼까'해서 찾아가는 게 아니라 애초에 '그 영화는 봐야겠군' 하고 찾아가는 것이라 영화 선정의 고통이 없다. 그러나 개인공간이 아닌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오랜 시간 얌전히 앉아서 화면만 본다는 건, 잘 생각해보면 일종의 집단 명상이나 구도와도 같은 행위라 쉬운 일만은 아니다. 수십 수백 명이 아주 조용히,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감상하는 게 오히려 기적에 가깝다. 결국 누군가는 뭔가 거슬리는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도 늘고 행동도 더 과격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단순히 내 참을성이 고갈된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애니메이션 여주인공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왔다고 박수를 치는 사람이나, 혹은 여자 친구에게 영화 내용을 계속 설명해주는 사람 등등이 있다는 사실은 심각하게 영화 관람 욕구를 떨어뜨린다.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광고가 아니라 기본적인 매너 교육을 넣어야 하는 게 아닐까? 친숙한 연예인이 나와서 어떠한 행위가 민폐가 되는지 실감나게 재연해주면 효과가 조금은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관람 환경도 말짱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데 굳이 앞뒤 한 시간 이상의 이동 시간과 수고까지 들여서 영화관에 찾아가야 하나 싶을 때가 많다. 저명한 영화 감독들은 영화란 반드시 영화관에서 상영되어야 하는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나도 전문 상영관이 갖춘 환경에 갇혀야만 느낄 수 있는 뭔가가 분명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것도 필요에 따라선 편리함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책을 한 자리에 앉아서 종이책으로 집중해 읽어야 좋긴 하겠지만, 수십 수백 조각으로 잘린 전자책을 지하철에서 대충 후루룩 넘겨볼 수도 있는 것처럼.


요즘 볼 생각은 있지만 영화관에 선뜻 찾아가서 보지 못하는 작품은 겨울왕국 2다. 몇 번이고 노래가 들어가는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겨울왕국 1는 놀라운 전개에 감탄한 나머지 영어판과 더빙판으로 두 번 봤다. 그래서 2를 볼 생각은 있는데, 어쩐지 보러 갈 의욕은 생기지 않는다. 일단 영화관 가기가 귀찮고, 게다가 경험상 애니메이션을 완벽한 환경에서 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영화관은 상영 환경에 아무 관심도 없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쪽 팔걸이가 내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에 겨울왕국 2의 '노키즈관'을 만들면 좋겠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얘기가 나왔는데 그 취지에는 일단 공감한다. 돈을 냈으니 영화를 조용한 환경에서 감상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권리를 주장하는 방식이 '노키즈관'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다. 아동이 아니면 관람 태도가  정숙하단 말인가? 이번에도 내 경험에 불과하긴 하지만, 지금껏 나를 피곤하게 만든 관객들은 십중팔구 청소년과 성인이었다. 어느 연령대건 매너를 몰라서든 어떤 이유에서든 시끄러운 사람은 있다. 그런데 그쪽에 대한 대안은 생각지도 않고 가장 간편하게 손댈 수 있는 층(본인이 항의할 확률도 낮고 본인이 항의하든 말든 무시할 수 있는 층)만 어떻게 해보자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치사스러운 짓으로 느껴진다. 심지어 민폐 행위를 제재할 방법이 보이지 않으니 행위와 무관하게 특정층 자체를 매도하는 것인데, 이건 죄를 짓지도 않은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게 아닌가?


노키즈관이 아니라 성인 전용관을 만들자는 얘기도 있다. 이것도 얼핏 듣기에는 조용하고 교양있는 사람끼리 모여서 소박하게 즐기자는 것 같지만, 물론 여기에도 시끄러운 성인에 대한 대안 같은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영화관들이 그간 해온 짓을 생각하면 앞날이 뻔하다. '특별관'이니 더 비싼 값을 매기고, 돈이 되니까 상영관을 점차 늘려나갈 것이다. 소자고령화 시대이니 더 심해지겠지. 그걸 막으려면 일반 상영관 비율 의무화 법안 같은 것도 만들어야 할 텐데, 시끄러운 어른은 막지 못하는 대안에 그 정도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은 대단히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다면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영화를 볼 방법은 전혀 없단 말인가? 나는 역시 VOD를 빨리 풀어서 집에서 보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은 TV도 모니터도 없는 가정이 상당히 많고, 있더라도 극장의 대화면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 있을 테니 영화관을 걱정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방법도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서 개별적으로 소음을 낼 수도 있지만 감상은 문제없이 하는 방법이라니, 귀를 틀어막고 봐야 하나?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는 공간이 있다. 비행기다. 비행기에선 많은 사람이 벗어날 수 없는 한 공간에 모여서 각자 소음을 내면서도 볼 것을 보고 있지않은가? 여기서 화면만 큰 것으로 바꾸면 된다. 즉, 상영관 의자에 이어폰 단자를 추가해서 소리를 그쪽으로도 송출하는 것이다. 이러면 적어도 소음에선 벗어날 수 있고, 음성 채널을 추가하면 한 상영관에서 원어와 더빙을 모두 감상할 수도 있다. 이 정도면 모두가 그럭저럭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런 방법도 관객 모두가 드넓은 포용력을 갖고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서로를 보듬는 사회를 이룩하는 것에 비하면 하찮다. 말 그대로 사회 문제로부터 귀를 막는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의 선의에 기대어 사회가 나아질 거라고 마냥 믿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러니 제발 영화관이 판매자로서 할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 냄새가 나든 소리가 나든 아무 음식이나 되는대로 팔고 앉아있을 게 아니라.



추신

이 글을 쓰고 오래지 않아서 겨울왕국 2를 봤습니다. 주말에 더빙판으로. 아주 조용하진 않더군요. 장면이 전환이 심한 부분이나 상징적인 부분에서 아이들이 당장 부모에게 질문하고, 부모들은 대답 대신 조용히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하는데, 짜증이 난다기보다는 평범한 상영관 문화 자체가 아이들에게 친화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네다섯 자리가 들어가는 투명한 방음 뚜껑을 만들어서 자동차 영화관을 축소한 듯한 구조의 상영관을 만들면…… 좋겠지만 비용 때문에 2200년이 온대도 구현되지 않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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