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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r 30. 2021

젊어지지 못하는 아이패드를 달래보기도 하고


아이패드 에어 2를 쓰고 있습니다. 2014년에 출시된 모델이죠. 훌륭한 태블릿이지만 분명 낡았고, 조만간 업데이트 지원이 끊길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이제는 켜 놓으면 배터리가 닳는 게 눈에 보일 지경입니다. 가끔 게임을 돌리고 웹서핑을 하면 세 시간 만에 배터리는 모두 고갈됩니다. 어차피 충전이 자유로운 집에서만 사용하니 못 쓸 것도 없지만, 아무래도 갖고 나가긴 불안합니다. 게다가 슬슬 이것으론 돌아가지 않는 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했죠.


슬슬 새 아이패드를 사야 할 때가 온 것 같군요.  하지만 아이패드는 비싼 물건입니다. 어지간한 아이패드는 적당히 쓸만한 노트북보다 비쌉니다. 다이소에서 정리함 사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들일 수 없어요. 좋은 아이패드를 들이면 삶이 분명 한 눈금 편해지고 즐거워지겠지만, 그 '한 눈금'을 위해 70만원쯤 들이는 게 옳은가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아이패드가 없는 상태에서 아이패드를 들이는 건 굉장히 멋진 일이지만, 중고가가 떨어진 아이패드를 새 것으로 바꾸는 건 비용에 대한 효용성이 그만큼 크지 않죠.


그래서 저는 배터리 교체부터 알아봤습니다. 배터리 노후의 경우 12만원 정도를 지불하고 아이패드 전체를 리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 온라인으로 진단한 결과, 리퍼 받기에 노후 상태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쓰러질 판인데 건강하다는 판정이 나온 것이죠. 어처구니가 없어서 시간을 두고 온라인 진단을 한 번 더 받아보고, 근처의 대행 업체도 찾아가 봤습니다. 모두가 입을 모아 건강하다고 해주더군요. 재건축해야 하는데 건물이 튼튼하다는 판정만 연달아 받은 건물주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요.


이런 이유로 애플의 공식 루트로 아이패드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계획은 완전히 폐기처분했습니다. 심지어 이후로 애플 서비스센터와 얽힌 논란(영어 할 줄 아세요? 등)이 터져나와서 배터리를 직접 교체하는 방법을 검토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것은 상당히 위험부담이 큰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아이폰 6S, 아이폰  SE. 넥서스7의 배터리를 직접 교체한 경험이 있지만 아이패드는 경우가 다릅니다. 대화면이라 접착면이 넓고(이 정도로 큰 기기에서도 나사 대신 접착식을 쓰는 애플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만큼 분해가 난해하며, 힘을 잘못 가해서 화면이 파손되거나 배터리를 찍어버렸을 때  뒷감당이 어렵죠. 특히 배터리를 잘못 다뤄서 뾰족한 것으로 찍어버리면 맹렬한 기세로 불이 붙을 확률이 높습니다. 심각한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죠.


어떻게든 배터리를 노후화시켜서 검사를 통과하고 12만원에 리퍼받느냐, 아니면 4만원에 과감히 직접 손을 대느냐. 여기서 제가 선택한 것은 후자였습니다. 12만원을 들이기엔 중고가가 24만원 내외로 너무 낮아졌고, 8만원이 매우 아까웠으며, 애플보다는 그래도 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컸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배터리를 주문했고, 교체에 성공했습니다. 헤어드라이어로 접착제를 살살 녹이고 스마트폰 분해용 빨판 집게로 당기며 틈을 미용실 포인트 카드로 가르는 작업, 여차하면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배터리 밑을 가열하면서 포인트 카드로 뜯어내는 과정은 영화 속의 폭탄 해체 작업처럼 느껴졌지만 아무튼 성공했습니다. 기쁜 것과 별개로 다신 하고 싶지 않군요.

그렇게 아이패드 에어2는 새 생명을 얻었고, 기변의 필요성은 4만원으로 방어되었습니다.


보통 보면 안 되는 사과의 뒷면


.....라고 하고 싶은데, 그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용 시간이 세 시간에서 늘어나지 않은 것이죠. 수리 후에는 배터리의 용량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법이라 완방 완충으로 조정을 몇 번 시도했지만 달라진 바는 없습니다. 맥북의 진단 앱에서는 정상 용량이 나오는데 실사용 상황은 달라진 게 없는 것이죠.


그렇게 4만원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저는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사제품을 써서 이제 리퍼도 불가능하게 되었으니 오히려 후퇴했다고도 볼 수 있겠군요.  배터리가 문제인 것일까요? 훌륭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노혼의 배터리를 직구해야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배터리를 다시 사면 결국 8만원이 드는 셈이고, 리퍼와 고작 4만원 차이밖에 안 나게 됩니다. 심지어 새 배터리라고 문제를 깔끔히 해결해 줄 거라는 보장도 없죠.


이제 만사 지긋지긋합니다. 적당히 팔아치우고 새 기기로 바꾸는 게 속시원할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다시 아이패드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휴대하지 않는 만큼 12.9인치가 여러모로 좋을 것 같더군요. 화면이 크고 최신 게임이 돌아가는(솔직히 말합시다. 원신 얘깁니다.) 마지노선인 아이패드 프로 2세대가 적당하겠죠?


하지만 찾아보니 아이패드 프로 초기 모델들은 터치가 튕기는 현상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이 문제를 겪게 된다면 애플과 싸워 해결하는 것도, 스스로 해결하는 것도 지독하게 어려울 게 분명하죠. 그렇다면 별 문제가 보고되지 않은 최신 제품으로 바꾸는 게...... 좋겠지만 그러자니 그건 너무 비쌉니다. 그렇게까지 거창한, 유튜브 크리에이터처럼 육중한 일을 하려는 게 아닌데, 그냥 게임 좀 하고 책 양면으로 보기 좋은 태블릿을 쓰려는 것 뿐인데 거기에 백만 원에 가까운 돈을 쓰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 이 느낌은 백만 원이 뚝 떨어져도, 아이패드를 선물로 받는다 해도 지울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렇다면 이 기회에 대화면 안드로이드 태블릿으로 넘어가는 것을 어떨까? 사실 이제 iOS보다 안드로이드를 튜닝해서 사용하는 데에  더 익숙해져서  그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매일 사용하는 카카오페이지와 시리즈는 아이패드에서만 가로보기를 지원합니다. 조만간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기에는 그대로 개선되지 않은 시간이 너무나도 깁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겠죠. 안드로이드는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떡하면 좋을까요? 이렇다할 결론은 없습니다.  내일은 다른 대안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젊어지지 못하는 아이패드 에어2를 유선 기기처럼 사용할 수 밖에요. '중년이란 한두 주일 뒤면 기분이 전처럼 좋아지겠지 하는 생각을 언제나 하면서 지내는 때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중년을 지나 노년에 접어드는 아이패드와 지내는 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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