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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Feb 20. 2021

흡연의 대체재,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


요즘 담배 피우지 않는 것이야말로 멋진 삶의 자세라고 주장하는 듯한 광고가 무슨 일이 있나 싶을 정도로 자주 보이는데, 또 바람직한 얘기를 하고 있구나 싶은 한편으로 나름대로 오랫동안 담배를 피워온 입장에선 씁쓸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럼 담배를 피우는 것은 멋지지 않은 삶의 자세란 말인가?


'아니, 잠깐, 그 민폐에 백해무익하고 아무데나 꽁초를 버리면서 침이나 뱉어대는 추잡한 짓거리를 멋있다고 할 작정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물론 그것도 흔들리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한편으로 온갖 미디어가 흡연은 '멋있고 안정을 주는 행위'라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주입해왔기에, 짧고 원론적인 구호의 반복으로 구성된 공익광고 몇 편이 그 이미지를 뒤집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이미지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담배가 나오는 장면마다 블러를 먹이거나 장면 자체를 잘라버리는 정책을 써야 할까? 그건 논의의 여지도 없이 예술 표현의 자유 제약이니, 그보다는 흡연 외에 캐릭터에게 고뇌와 안정을 부여하는 멋진 표현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세금 인상, 캠페인은 물론 계속해야할 테고).


다만 문제는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하느냐 하는 것인데...... 물론 궁리하면 없진 않다. 일단 내가 기억하기로는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콘스탄틴'에서 콘스탄틴이 폐암으로 죽다 살아나 기깔나게 멋진 모습으로 껌을 씹는 장면, 차인표가 분노에 차서 양치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장면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흡연 장면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를 따라 실천하는 사람을 만들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즉, '멋있게 보이며 실제로 스트레스 해소*에도 효과가 있어서 대중적인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껌이나 양치질이 흡연을 대체할 수 있을까? 안 될 것 같다.


(*흡연의 스트레스 해소 기전은 사실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게 아니라 안 느껴도 될 스트레스 상태를 만들고 그것을 흡연으로 해소해주는 것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요전에 트위터에서 지나가는 농담으로 '담배를 피우는 대신 비누방울을 불자'라는 얘기도 있었다. 비누방울은 민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예쁘고 모두가 좋아하니 흡연을 대체할 만큼 훌륭한 문화라는 것이다. 꽤 그럴듯한 생각이다. 회사일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이 옥상에 모여 햇살 아래 영롱한 비누방울을 불어대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럭저럭 아름답고 희망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애들이 따라한다고 걱정스러워할 것도 없다. 문제가 있다면 비누방울 놀이 키트가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없으며 '애들이나 갖고 노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아주 강하게 박혀 있다는 것 정도인데, 이를 극복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닐 것 같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비누방울 한 번만 불게 해달라는 장면이 멋있게 성립하고 보편화 되려면 대체 어느 정도의 자본이 투입되어야 할지 어림잡을 수도 없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방법은 '반려동물', 정확히는 '반려동물을 아끼는 것'이다. 이거라면 당장 미소를 머금게 되는 효과도 있고 이미지도 나쁘지 않다. 반려동물을 아끼는 모습이 나오면 주인공도 더 좋은 사람같고, 악당도 어쩐지 더 무서운 악당같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우리 개 한 번만 보자는 대사도 심금을 울린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스트레스 해소 효과도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있다. 고양이 쓰다듬기 VS 담배 피우기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라도 망설임 없이 고양이를 택하겠다.


고양이에게 캣닢이 있다면 인간에게는 고양이가 있다는 말이 있다.


다만 이 방법에는 인간이 스트레스 해소하자고 반려동물을 키우는게 옳은가 하는 윤리적 문제와,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없다는 비용적 문제가 있다. 그러니 절충안을 궁리해보면 로봇 반려동물이나 디지털 반려동물을 도입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회사 옥상에서 사람들이 앞다투어 로봇 반려동물을 쓰다듬고 가상의 먹이를 주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게 정말 멋진 미래인가 싶기도 하다. 아마 복지에 쓸 돈이 충분하지 않은 중소기업 옥상에는 '가상현실 반려동물 체험존'을 놓거나 반려동물 유튜브 채널 따위를 대형 스크린으로 틀어놓겠지. 그러면 그것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고.......


인간이 얼마나 빠르게 로봇 반려동물에 친숙해질 것인가? 사무실에 반입 가능한 날이 올 것인가? 로봇 반려동물에게 어떤 권리가 보장될 것인가? 여러가지 의문을 안고 있다.


어쨌든 흡연을 대체하려면 효과로도 이미지로도 대체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다각적, 총체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몇 번이고 금연해 본 내 생각인데, 아무래도...... 잘 될 것 같진 않다. 오랜 세월에 걸쳐 흡연과 금연과 애견인과 미래 사회의 아이콘이 된 키아누 리브스가 분발하면 효과가 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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