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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an 12. 2022

엘리베이터에서 광고를 봐야하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세로로 긴 모니터가 설치된지 대충 1년쯤 되지 않았나 싶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별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딱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신경 끄고 넘겼는데, 연말에 예민해진 상태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모니터에 대해 ‘신경을 끄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의식하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마음먹지 않으면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멍하니 모니터에 표시되는 광고를 보는 지경이었다. 의식하지 않으면 어떤 행동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건 거의 마인드컨트롤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원래는 엘리베이터에서 뭘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자. 일단 엘리베이터에 탄다. 중요 공고문이 붙어있지만 이것들은 좀 이상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버튼을 누른다. (맞다,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은 곧장 뒤돌아서 버튼을 누르니까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면에 공고가 붙어있어도 눈여겨 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 뒤에 손소독제로 손을 닦고, 스마트폰으로 팟캐스트를 재생하고, 거울을 잠깐 보고, 다시 스마트폰을 보기도 하지만, 나는 데이터가 적은 편이라 다시 정면을 보며 기다린다. 그러다 문이 열리면 나간다.


아마도 전 국민이 비슷할 이 과정에서 거울을 보는 대신 광고를 보게 되었으니,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진 이후로 에너지 소모 없이 사람들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던 유구한 전통이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게 된 셈이다. 여간 아쉽지 않은데, 사람 시선이 거울이 아니라 모니터로 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특히 집을 나설 때라면 모를까 집에 들어올 때라면 내 꼬락서니를 다시 점검할 필요도 없는데 뭐한다고 굳이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겠는가? 심지어 광고 화면은 계속 현란하게 움직이고, 유달리 춤추는 장면이 많아서(주관적인 느낌이다) 눈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이건 아마 동물의 본성에 가까우리라. 시야에서 움직이는 것에 무신경한 동물들은 대체로 유전자를 남기지 못했을 테니.


엘리베이터 중에선 역시 바깥을 볼 수 있는 게 좋다. 무슨 거물급 인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광고 화면을 보는 게 아무리 자연스러운 일이라 해도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요즘 들어 문득 하게 되었다. 일단 ‘광고 시청시키기’가 인간의 행동 패턴을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구조라는 점이 싫다. 달리 볼 게 거울밖에 없는 공간의 정면에 움직이는 화면을 놓는 방법이란 본질적으로 선정적인 광고와 크게 다를 것도 없는 것 같다. 양쪽 다 내 의지를 따로 작동시키지 않으면 육체 수준에서 당연스럽게 반응하니 아무래도 치사스럽게 느껴진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무심결에 홍보 정보를 주입받으면서 그 대가로 얻는 것이 너무 하찮다. 아파트 운영비에 나름대로 보탬이 된다곤 하나, 확인해 보니 가구 수로 나눠 보면 정말 하찮기 짝이 없는 금액이다. 고작 그런 이득을 위해서 하루에 두 번씩 시답잖은 광고를 보거나,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귀중한 시간과 의지력과 전력을 낭비해야 하다니……. 만약 광고를 내는 업체들이 엘리베이터 광고를 한 덕분에 광고지 인쇄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면 환경적으로는 긍정적인 면이 있겠으나, 엘리베이터 화면에 나오는 것은 대체로 인근에 광고지를 돌릴 만한 영세 업체 광고가 아니라 이미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대기업 광고다. 탄소 배출 절감 효과가 있을 만한 구조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그 화면에 폐기물 배출 요령 등 정말 유용한 정보가 간신히 나오긴 하지만, 거의 다 텍스트에, 하단의 5분의 2나 차지할까말까라 솔직히 눈이 가지 않는다. 유용한 정보도 나오긴 나온다고 구색만 맞춘 느낌이다. 정말로 억지로 구색을 맞추고 변명을 하느라 끼워넣었을리는 없겠으나, ‘이렇게밖에 할 수 없나?’ 싶은 인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광고가 생활 공간에서 사회 공간으로 이어지는 통로의 일부를 점유한 이 상황이 가끔 생각하기에 따라선 두렵기도 하다. 거실 TV도 스마트폰도 광고에 이미 잠식되었다곤 하나, 이것들은 전원을 끄면 피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엘리베이터 광고는 자연스럽게 피하기가 너무 힘든데, 이런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증명되면 광고가 망설임 없이 현관 안까지 들어올 것 같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 시리즈의 ‘핫 샷’에는 무슨 수용소 같은 곳에 갇힌 사람들이 밤낮 실내 자전거로 발전을 하며 광고만 보는 디스토피아 세계가 나오는데, 이곳은 개인실에서도 안구를 추적해서 모든 면의 디스플레이에 광고 화면이 따라다니고, 눈을 가리면 벌점까지 부여한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 과장이지, 하고 웃어넘기자니 검색어와 인터넷 사용 패턴 따위를 집요하게 추적해서 볼 법한 광고를 틀어주는 요즘 세상과 그리 큰 차이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더 무서운 것은, 기업이 집안 곳곳을 실시간 광고로 도배하는 대신에 집세를 깎아주는 등의 실리적 제안을 하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것 같다는 점이다. 광고야 뭐 맨날 나오는 건데 틀어놓고 돈 받으면 그게 어디야, 하고 대부업체 광고 따위를 수백만 번 보고, 냉장고에서 나오는 식품 광고를 보고 곧바로 터치해서 주문하고, 애들은 친구 집에는 광고가 안 나온다고 신기해하고…….


흔히 광고는 가난한 자의 세금이라고 하는데, 그야 그렇지 하고 넘기다가도 이런 디스토피아를 생각해보면 절실히 와닿는 구석이 있다. 고요하게, 방해받지 않고 영위하는 일상은 어느 정도로 중요한 인권인가, 내가 돈이 궁해서 그 인권에 값을 매겨 판다면 얼마에 어느 정도를 떼어다 팔게 될까…….  피할 수 없는 곳에서 무심결에 광고를 보다 보면 새삼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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