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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Oct 05. 2022

플스와 헤어질 결심

게임, 특히 전자 오락을 악의 축으로 생각하는 집에서 자랐기에(지금도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게임을 원없이 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간편히 켜서 즐기고 숨기기도 편한 휴대용 게임기를 구입한 시기가 상당히 늦었던지라 게임은 대체로 집이 비었을 때, 혹은 오밤중에 가슴 졸이며 하는 행위였고, 덕분에 들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즐거움의 한구석에 끼어있을 때가 많았다. 몰래 깨는 금기가 더 재미있는 구석이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스릴도 가끔 즐겨야 스릴이지 항상 깔려 있으면 고통일 따름이다.


아무튼 그런 환경 덕분에 집이 비는 날은 거실에서 게임을 하는 게임 데이처럼 되곤 했는데, 그런 날 중에서도 특히 감탄했던 날이 플레이스테이션 2로 ‘검호’라는 게임을 즐긴 어느 날이었다. 이 게임은 에도 시대 즈음의 사무라이가 되어 검술도 익히고 각지의 도장을 찾아다니며 도장 깨기를 하거나 명성 높은 검호와 결투를 벌이기도 하는 시리즈로, 서로 수십 대는 두드려대야 겨우 끝나는 여타 격투 게임과 달리 여차하면 한 방에 죽어버린다는 현실감이 기막힌 장점이었다. 신선조고 신선조 할아버지고 균형만 깨지면 한 방에 삼도천 너머로 보내버릴 수 있다는 게 여간 시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꽤 오래도록 재미나게 했는데, 집이 빈 그날에는 거실에서 게임을 좀 하다 ‘크, 재미있네’ 하고 정신을 차렸더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흔히 ‘문명’등의 게임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을 잊게 된다는 ‘타임머신’ 현상을 체험했던 것이다. 밥 먹는 것조차 잊었으니 이쯤되면 확실히 시간 여행을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 날 전후로도 엇비슷한 경험이 있긴 했을 텐데 이렇게까지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진 않다. 이전에는 검호만큼 재미있는 게임을 찾지 못했고, 이후에는 몰입력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마 몰입도가 떨어진 데에는 스마트폰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여차하면 무슨 알림이 와서 시선을 끌어대니 도무지 스마트폰을 잊을 때가 없는 탓이다. 때문에 요즘은 두 시간짜리 영화를 가만히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게임도 충분히 느긋하게 즐기지 못한다. 게임을 하면서 다른 게임의 퀘스트 수행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니 혼자 뭔가에 몰입해서 세상 만사를 잊고 즐기는 일은 앞으로 점점 더 줄어들 게 분명하다.


다만 그런 타임머신 같은 게임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 만사에 지친 탓도 대단히 크다는 것을 요 근래에 절실히 느꼈다. 나는 돈도 시간도 적당히 부족하진 않던 시기에 플레이스테이션 4를 사놓고 종종 즐기다 2021년쯤부터는 사실상 컨트롤러 충전만 주기적으로 하는 지경이 되고 말았는데, 얼마 전 존경하는 작가가 ‘호라이즌 제로 던’이라는 게임을 재미있게 했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과감히 다시 게임기를 켜보았다. 예전에 무료로 풀렸을 때 부지런히 받아둔 게임이었기 때문에 비용 없이 도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얼마나 재미있으려나 기대하며 게임을 실행했는데……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무슨 부족의 건장한 남자가 기구한 사연으로 여자아이를 혼자 키우게 되었는데 몇 살이 되어 신성한 곳에서 이름을 짓자니 못된 점술사 같은 사람이 와서 재수없는 아이니까 그러면 안된다는 둥 어쨌다는 둥 꾸짖는 부분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몇 년 후 그 소녀가 또래 아이들에게 냉대를 당하다 구덩이에 떨어져 신비한 장치를 손에 넣고 고대의 첨단 문명을 쬐끔씩 맛보게 된다는 파트에 들어서자 진이 빠져버렸다. 그 부분이 바로 게임을 진행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려면 방향키를 누르세요’ ‘목표를 겨냥하려면 동그라미 버튼을 누르세요’ 하는 식의 튜토리얼 파트였기 때문이다.


바로 시작해서 바로 재미있지 않으면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물론 게임을 진행하려면 튜토리얼을 거쳐야 할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한참 동안 조작법을 익혀야한다는 상황이 넌더리났다. 모름지기 게임은 일단 게임 세계에 던져진 다음 막힐 때 설명서나 조작 버튼 확인 메뉴를 보고 익히는 게 가장 덜 갑갑한 법이다. 게임 속에서 부드럽고 매끈하게 예시 과제를 수행하며 익히는 게 숙지도는 높겠지만, 그냥 동봉된 설명서를 보고 익히던 때에 비하면 이건 텍스트로 5분이면 찾을 정보를 15분짜리 동영상으로 보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약 봉투가 일반 쓰레기인지만 확인하면 되는데 “어휴, 이건 대체 어떻게 버리라는 거야? 대충 다 쓰레기통에 버리자! 야, 받아라, 등짝 스매싱! 안녕하세요, 뫄뫄입니다! 요즘 기후 위기가 심해지면서 분리수거의 중요성도 더 강조되고 있는데요, 오늘은 저 뫄뫄와 함께 어떻게 버리면 되는지 헷갈리는 품목들 알아볼 테니까, 일단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부터(하략)”따위를 다 듣고 앉아 있는 식이다.


그리고 게임을 더 진행하지 않아서 실제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튜토리얼이 끝나고 나면 주인공이 고대의 신비한 문명에 감탄하고 나서 누군가 길게 설명을 늘어놓거나 놀라운 사건의 발단이 한참동안 영상으로 흘러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는 것도 게임을 포기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장대한 스토리를 가진 게임이면 그런 부분이 안 들어갈 수 없다는 건 나도 잘 안다. 게임을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단지 내가 더 시급하게 도파민을 갈구하는 상황이었을 따름이다. 당장 뭘 쏴죽이고 싶은데 총기의 역사와 발달 과정부터 잘 들어보라는 곳에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게임을 끄고 나니 만사가 허망해졌다. 호라이즌 제로 던은 분명 훌륭한 게임일 것이다. 평점이 좋았던 것을 어디서 본 기억도 있고, 이 시대 최고의 작가가 좋았다고 한 데다, 나도 액션 롤플레잉을 좋아하니 좀 참고 계속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위장이 상해서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 게임이 아무리 훌륭한 천하의 대걸작이라 해도 나는 이제 할 수 없게 되었구나 싶었다. 보상을 받을 때까지의 과정을 견딜 인내력도 없고 오랜 기간 짬을 내서 게임을 즐길 자신도 전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쯤부터는 좀 여유가 생길 테니 그때 다시 하자는 막연한 기약조차 생길 것 같지 않았다. 예전에 십 년, 이십 년 전 작품의 리메이크가 쏟아지는 세태를 두고 ‘한때 오타쿠였던 사람들이 노쇠해서 새 콘텐츠를 씹어 삼킬 기력을 잃게 된 탓에 그들에게 먹일 유동식으로서 리메이크가 쏟아지게 된 것’이라는 말을 보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상당히 정확한 분석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하여 이제 내가 플스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임은 1인칭 슈팅 게임인 콜 오브 듀티 따위 정도만 남았는데, 할 만한 난이도는 이미 몇 번 한 데다, 그렇다고 극한의 난이도로 올리면 세 걸음 걸을 때마다 총에 맞아 죽기 때문에 의욕이 싹 달아나는 것을 이미 확인한 차였다. 그렇다면 이제 적절한 게임을 찾아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는 콘솔 게임에 투자할 자금도 시간도 의욕도 기력도 없었다. 대작 게임을 함으로써 대단한 창작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게임 얘기를 하는 집단에 소속되어 이야기꽃을 피울 일도 없으니 더 이상 이점이 남지 않은 셈이다. 나는 며칠 후 플스를 팔아버렸다. 1년은 일찍 팔아야 했는데 너무 오래 갖고 있었구나 싶었다. 분명 언젠가는 다시 재미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이제 나의 생활과 별로 맞지 않는다는 현실을 잘 고려할 것을 실수했다.


그러고나니 일단은 우울하고 허탈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저걸 꼭 잘 써먹어야 할 텐데’ 하는 압박감이 사라진 덕이다. 사용 기한이 정해진 고급 호텔 숙박권 따위를 처분해 버리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한때는 중세풍 판타지 게임 ‘위처’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플스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환상의 나라에 가는 문을 가진 것과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환상의 나라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딱히 대단히 불행해지는 것도 아니다. 이를 악물고 반드시 악착같이 재미나고 보람찬 활동을 해야만 즐거운 생활도 아니고. 시기와 상황에 맞는 즐거움과 취미가 있는데 지금은 다른 시기와 상황이 왔을 따름이리라.


그리하여 요즘은 유튜브로 교양 방송을 틀어놓고 위시리스트에 잡다한 물건을 집어넣는 것을 여가로 삼고 있다. 지적 허영심과 물적 허영심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참으로 현대 사회에 적합한 여가 생활이다. 하지만 한참을 그러자면 또 하다못해 게임처럼 뭔가 좀 발전하거나 남는 게 있는 여가를 즐겨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압박감을 살살 느낄 수밖에 없으니, 진정한 여가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만사 제쳐놓을 수 있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지 어떤 행위에서 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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