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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Sep 22. 2021

타로 카드와 부여되는 의미들

유튜브로 타로 점을 보다 보니...

시작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타로 카드를 조금이나마 갖고 놀아본 사람으로서, 사람을 마주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점을 쳐준다는 게 언어도단으로 느껴진 탓에 ‘그게 말이 돼?’하고 어디 한번 얼마나 잘 보나 찾아본 것이다.


처음에는 일단 헛웃음이 나왔다. 신비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배치한 소품과 엄선한 어휘들…… 타로 점을 봐주던 고등학교 축제 생각이 났다. 나도 저런 식으로 나름대로 분위기에 신경을 썼지.  어휴, 민망해라. 공감성 수치에 가까운 감정이 밀려왔다.


그러나 잠시후, 나는 다른 영상도 열심히 뒤져가며 점을 보고 있었다. 기절초풍할 정도로 엄청난 감동이나 영감을 얻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게임을 200시간 해봤는데 중독성은 없었습니다’ 하듯이 끊지를 못했다. 급기야 몇몇 점술가 채널을 구독하기까지 했다. 이쯤 되고도 인정하지 않으면 큰 실례겠지. 유튜브로 점을 보는 것은 제법 흥미진진한 취미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대중을 상대로 한 유튜브 타로 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정리하자. 방법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1.  점술가가 주제를 설명하고 카드를 섞어 네다섯 장을 늘어놓는다.  

2.  시청자가 그중 한 장을 선택하면 점술가는 해당 카드에 무작위로 식별 번호 따위를 부여한다.  

3.   시청자는 자기가 선택한 번호를 설명하는 시간대를 클릭하여 점괘를 듣는다. 점술가는 각 시간대별로 시청자가 선택한 카드에 카드 몇 장을 추가해서, 혹은 임의대로 새 카드들을 뽑아 점괘를 해설한다.  


이런 식이다. 시간대를 링크로 따로 뽑아놓는 기능을 이용해서 선택지를 구현한, 선택지가 다섯 딸린 인터랙티브 영상인 셈이다.


나는 처음에 신문지 띠별 운세도 최소 12종에 나이대별로 해설이 다른데, 모든 시청자의 점괘를 딱 다섯으로 나누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혈액형 운세보다 좀 나은 것 아니냐는 식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직접 시청해보니 내가 능동적으로 고른 카드가 점괘를 좌우하는 구조라 정말 실감나는 운명을 엿본 느낌이 든다. 오프라인에서 점술가가 카드를 다 골라줄 때보다 더 그럴 듯하다. 상상 이상으로 영리한 구조다. 게다가 점술 앱과 달리 한 번 본 영상은 소모된 것이나 다름없어 똑같은 주제라도 나중에 새로 올라오는 영상을 기다렸다가 봐야 한다는 구조는 더 영리한 것 같다.


이런 특이 사항을 빼고 나면 유튜브 타로도 근본적으로 일반 타로 점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데, 보고 있자면 확실히 볼 만한 콘텐츠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잘 맞는다. 정확히는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게끔 잘 해설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고등학교 축제에서 유료로 점을 쳤을 때, 상당히 험악한 친구의 연애 운이 아주 안 좋게 나와서 완곡하게 돌려 말하고도 ‘그래서 헤어진다 이거야?’라는 항의를 들어 진땀을 뺀 적이 있는데, 유튜브 점술가는 어떤 사안이든 참으로 무난하면서도 절묘하게 말한다. ‘에이, 그건 아니지’ 싶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이건 아마도 누구나 자기 얘기라고 느낄 만한 얘기에 특히 집중하는 기술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열심히 해 온 일이 곧 결실을 맺을 것 같으니, 흔들리지 말고 밀고 나가세요’ 같은 말을 주로 강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매일 작정하고 놀기만 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 사안 하나쯤은 있는 법이고, 어떤 일이든 잘 밀고 나가면 대체로 중간은 가는 결과를 얻는 법이니, 분명 괜찮은 점괘라고 할 수 있다. '집착을 버리고, 자신을 옭아매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세요'도 구체적이고 용한 느낌이 들면서 무난한 말이다.


물론 ‘상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처럼 무겁고 듣고 싶지 않은 말도 나오긴 하지만, 사람이란 어쩐지 그렇게 괴로운 점괘나 아주 틀렸다 싶은 점괘는 금방 잊어버리게 되어 있는 것 같다. 확증편향으로 자기에게 맞는 것만 기억에 남는 탓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당신이 집착을 버리라고 해서 비트코인을 처분했는데 두 배로 뛰었어!’이런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아무리 점이 용하다 해도 사람이란 결국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로 움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든 저러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거라면 점괘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전문 점술가라면 점술에는 정말 특별한 힘이 있어 어려운 결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할 수도 있을 테지만, 나는 점술의 효용은 ‘듣고 싶은 말을 듣는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카드 점의 경우, 다양한 뜻과 해석의 여지를 가진 카드를 무작위로 뽑아서 ‘정말 내 얘기처럼 느껴지는 좋은 말’을 듣는 것이다. 가령 소설을 쓰는 중인 나는 ‘요즘 하는 일이 지금은 인정도 못 받고 벅차고 힘들지만 그래도 금방 빛을 볼 것’ 이라는 식의 점괘를 여러 번 들었는데, 들을 때마다 은근한 위안이 되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설령 에디슨이나 스티브 잡스라도 ‘그래, 그 일은 내가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것 같아’라고 생각할 만한 뻔한 덕담이지만, 그래도 분명 위안은 된다. 사람이란 내가 쉽사리 털어놓지 못한 고통을 누군가 알아차려 준 (듯한) 느낌을 받으면 그것이 논리적으로 사실이 아닐지언정 혼자 고통받고 있다는 외로움을 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초자연적 신비’가 열심히 하면 분명 된다는 격려도 해주니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가 없다. 요컨대 내 마음속에서 짜맞춰지는 카운셀러에 가깝다는 말이다. ‘위대한 존재가 날 응원해주고 계셔’라며 아무렇게나 마음의 동력을 얻어 전재산으로 도박을 한다면 누구도 책임져주지 못하겠지만, 마음의 위안을 얻는 정도라면 분명 취미로 즐길 만은 한 것 같다.


자기 점을 쳐보면 상황에 맞는 해설을 스스로 찾아가는 걸 알기에 묘한 기분이 든다



여담으로, 나는 신이나 운명을 별로 믿지 않는 듯하면서도, 인생의 중요 국면에서 벌어지는 일들 앞에서 거대한 의미를 찾으려 하곤 했다. 눈앞에 닥친 것이 단순히 우연한 역경이나 슬픔이 아니라 더 큰 줄기로 향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종교적 사고 방식이라고 할 만한데, 확실히 그런 믿음을 가지면 마음이 편해지는 구석은 있다. ‘내가 한심해서 공모전에 떨어졌구나’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이 고난은 나를 더 갈고닦도록 준비된 흐름이다’라고 생각하는 편이 사람을 덜 무너지게 하는 법이다.


그런데 요즘 타로 점을 여러 번 보면서 ‘결국, 세상 일은 무작위로 일어나고 거기에 준비된 의미는 없다’는 생각이 강해지게 되었다. 점을 보면서 오히려 과학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다는 게 우습지만, 내가 잠시나마 돈을 받고 점을 쳐본 사람이라 더 그런 것 같다. 점술이 역시나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고, 무작위로 나오는 카드를 보고 큰 의미를 맞춰가는 작업에서 위안과 안정을 얻는 게 점술의 핵심이며, 동시에 삶을 바라보는 방식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살자면 온갖 사건과 문제가 숨통을 조이고 절망을 향한 급행 노선을 만들거나 피할 수 없는 파멸의 신호를 띄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을 떠올려 볼 만하다.

이건 무작위로 섞어서 뽑은 카드의 나열에 불과한 것 아닌가? 

점괘를 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건 내 의지가 아닌가?

라고.


요컨대 병에 걸려 아프고, 회사에서 잘리고, 애인에게 차이고,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투자에 실패하고, 인공지능의 습격을 당한다 해도 이런 사건과 상황들이 파멸의 운명을 암시하는 자리에 정렬했다고 볼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그 정도로 내몰리면 당연히 좋은 생각이야 들지 않겠으나, 여기서 의미를 찾는 것보다는 욕 좀 하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편이 낫다. 기왕 의미를 찾을 거라면  ‘죽음 카드는 죽음 뒤의 재생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라는 식으로 좋은 의미를 '부여'하는 쪽을 택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 테고.


아마 그런 생각이야말로 위대한 존재에 기대거나 신비한 흐름에 경도되지 않고도 내 정신을 붙들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타로 카드 점술 영상에 좋아요를 누를 때마다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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