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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Apr 05. 2023

영양제의 무저갱

2022년 연말에 나는 연말답게 불안과 우울감과 공포에 시달렸다. 매년 있는 일이긴 한데, 거기에 더해 이번에는 혈압까지 올라서, 영양제 관리 앱에서 추천하는 영양제를 추가로 먹어 봤다. 그러면서도 의심을 거두지 못해서 신체 변화를 꾸준히 기록했는데, 그 결과 해당 영양제에 효능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영양제만은 다시 사지 않게 되었다. 대신 운동 시간을 늘렸다. 이건 또렷한 효과가 있었다. 의사들이 괜히 운동하라고 뻔한 얘기를 하고 또 하는 게 아니다.


그런 연유로 영양제를 정말 필요한 것만 남기고 끊을 방도를 찾아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봤다. 그 결과, 믿을 정보가 도통 없다는 결론만을 얻게 되었다. 약사가 자기 얼굴과 이름을 걸고 자기는 딱 무엇만 먹는다고 선언한 정보라면 믿을만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식으로 필수 영양제로 선언하는 것들이 각각 다른 탓이었다. 영양제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엉망인가 하면, 어느 노벨상 수상자도 비타민 C를 엄청나게 많이 복용하면 건강에 아주 좋다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이것도 의학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다. 노벨상 수상자라면 세계가 인정한 석학이라 생각하기 마련인데, 정확히 그 사람이 연구한 분야에서 벗어나면 아무 신빙성이 없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잘 팔린 책을 믿는 건 더욱 어리석은 짓이고, TV도 믿을 수 없다. 종편 채널은 말할 것도 없고, 지상파에서 오래도록 방송해서 권위가 있을 듯한 프로그램도 일고의 가치도 없는 소리를 마구잡이로 해대니 볼 게 못 된다. 이래서야 비싼 돈을 내고 보는 이유가 있나 싶다.


그래서 언젠가는 영양제고 뭐고 다 끊어버려야겠다는 마음을 항상 품고 있는데, 잘 생각해보니 그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건강에 조금이라도 좋긴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쇼핑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아서 선물로 주고받는 경우도 아주 흔하기 때문이다. 결혼식에서도 홍삼 제품을 답례품으로 주는 게 일반적이고, 이런 글을 쓰는 나조차도 홍삼 어쩌고를 받는 기분이 나쁘진 않다. 건강에 좋은 것을 받으면 어쨌든 대접받은 느낌이 있고, 홍삼이 건강에 좋다는 말은 평생에 걸쳐 주입받은 탓이리라. 실제로는 홍삼의 특별한 성분을 받아들일 수 없는 한국인이 적지 않은 편이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먹으며 기뻐하고 있을 확률이 있다는데, 그 기쁨과 사소한 효능감을 버리지 못하는 애처로운 심정이 바로 영양제와 건강 기능 식품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지 싶다.


우리집에서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오래도록 음용되는 것 중에는 ‘알칼리수’도 있다. 정수기에 달린 기능으로 수돗물을 거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알칼리성으로 만들기까지 하는 것인데, 집에 비싼 물건을 설치해서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면 건강에 아주 이롭다는 물 중에 제대로 된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우리집에도 많은 탓이다. 아무튼 나는 이 물건이 일단 정상작동을 하긴 하는 것인지 의문이라 리트머스지를 사서 검증해봤다. 그 결과 산성도를 조절하긴 한다는 사실은 알아냈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건강에 좋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검색해봐도 의학적으로 검증된바는 없고, 오히려 신장에 해로울 수 있으니 의사와 상담을 해보라는 뉴스만 한 번 나왔을 따름이다. 알칼리수의 가시적인 효과라곤 오로지 ‘물통에 흰 결정 같은 게 잘 낀다’는 것뿐이다. 덤으로 전기도 많이 먹고 필터도 더 소모하겠지? 우리집에 설치한 모델만 특별히 좋지 않아서 효과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종류의 상품과 믿음에 맞선다는 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이런 나 역시 일반 의약품에 속하는 항우울제를 3년 가량 복용하다 슬슬 끊으려는 것을 도저히 못 끊고 있다. 이건 의약품이긴 하니까 효과가 있긴 할 테지만, 내 기분이란 대체로 엉망진창이니까 체감이 쉽지 않다. 약을 먹으려면 의사와 상담해서 먹는 게 옳다는 게 상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사 보기는 무섭고, 큰 부담 없는 선에서 어떻게든 효과를 보거나 효과를 보는 듯한 기분이라도 누리고 싶은 탓에 계속 여기 머물러 있는 것이다. 삶에서 건강보다 중요한 게 없는데, 정작 건강을 지키는 데에 필요한 갖가지 자원인 돈과 시간과 정신적 여유와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갖춘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결과적으로 이 세상을 허구적인 건강으로 채우는구나 싶다.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영양제를 아주 다양하게 챙겨먹고 있다. 그 사실 자체는 최소한 한국에서는 보편적인 일이라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식탁 한쪽에 수북이 쌓인 것을 남에게 보인다고 생각하면 제법 부끄럽다. 방금 확인하니 우리집에서 지금 이용되는 영양제는 무려 12종에 달한다. 이런저런 치료를 받느라 대량의 약을 먹는 사람들이 흔히 ‘약만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 약들을 챙겨 물과 함께 연거푸 삼키자면 확실히 위장 용량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게 된다는 실감이 난다. 자연히 그때마다 좀 줄이는 게 좋지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몇달 전부터는 영양제 복용 관리 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먹는 영양제와 건강 상황을 등록하면 앱이 필요 용량을 계산해서 어떤 약을 하루에 몇 알씩 먹어야 하는지, 어떤 약은 건강 상황과 맞지 않으니 주의해야 하는지, 어떤 성분은 부족하니 더 먹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앱이다. 영양제마다 유저가 적은 후기도 볼 수 있어서 제법 유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전문 앱의 추천대로 계획을 다시 짜서 영양제를 적당히 나눠 먹기 시작하니, 일단 영양제 소비량이 줄어든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그밖의 효과가 있었나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다. 앱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영양제라는 게 근본적으로 그렇게 되어먹은 물건인 탓이리라.


여기서 강력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 영양제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효능을 알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정말 또렷한 효과가 바로 발휘되면 그건 영양제가 아니라 의약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랜 기간 복용하면 효과가 보이지 않을까? 그것도 모를 일이다. 건강의 어떤 부분이 염려되어 영양제를 먹는 사람이라면 영양제 복용 말고도 어떤 식으로든 건강을 챙기는 활동을 하기 마련이라, 긍정적인 변화가 있어도 그게 영양제 덕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다. 영양제의 효능을 굳이 확인하고 싶다면 완벽히 똑같은 활동을 반복하면서 영양제를 먹는 기간과 먹지 않는 기간의 상태를 비교해야 하는데, 사람이 정확한 규칙대로 정해진 식단만 먹는 것도 아니고, 날씨도 감정도 시기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라 이런 확인은 불가능하다. 일란성 쌍둥이나 클론을 방에 가둬놓고 통제된 실험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리하여 영양제란 결국 어디에 좋다고 해서 먹어봤더니 확실히 좀 나은 것 같더라는 안도감만 제공하기 마련인데, 정신적 안도감을 얻고 싶다는 이유로 각양각색의 영양제를 매일 복용한다는 게 합리적인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이 하루하루 강해지고 있다. 솔직히 챙겨먹기도 이만저만 귀찮은 일이 아니고, 비용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영양제가 효과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에 매료되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 것을 찾게 된다. 영양제 분석 앱에서도 쇼핑몰에서도 이런저런 제품을 특가로 팔고 있어서 홀랑 넘어가기도 너무 쉽다. 스트레스, 불안, 우울, 피로감, 눈떨림 등등, 그 누구라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할 증상을 개선해준다고, 지금 바로 주문하면 싸다고 홍보하는 꼴을 보면 흔들리지 않을 길이 없다.



(영양제 한 알이 무엇을 바꿀 수 있냐고? 그건 아무도 모른다)

2022년 연말에 나는 연말답게 불안과 우울감과 공포에 시달렸다. 매년 있는 일이긴 한데, 거기에 더해 이번에는 혈압까지 올라서, 영양제 관리 앱에서 추천하는 영양제를 추가로 먹어 봤다. 그러면서도 의심을 거두지 못해서 신체 변화를 꾸준히 기록했는데, 그 결과 해당 영양제에 효능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영양제만은 다시 사지 않게 되었다. 대신 운동 시간을 늘렸다. 이건 또렷한 효과가 있었다. 의사들이 괜히 운동하라고 뻔한 얘기를 하고 또 하는 게 아니다.


그런 연유로 영양제를 정말 필요한 것만 남기고 끊을 방도를 찾아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봤다. 그 결과, 믿을 정보가 도통 없다는 결론만을 얻게 되었다. 약사가 자기 얼굴과 이름을 걸고 자기는 딱 무엇만 먹는다고 선언한 정보라면 믿을만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식으로 필수 영양제로 선언하는 것들이 각각 다른 탓이었다. 영양제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엉망인가 하면, 어느 노벨상 수상자도 비타민 C를 엄청나게 많이 복용하면 건강에 아주 좋다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이것도 의학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다. 노벨상 수상자라면 세계가 인정한 석학이라 생각하기 마련인데, 정확히 그 사람이 연구한 분야에서 벗어나면 아무 신빙성이 없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잘 팔린 책을 믿는 건 더욱 어리석은 짓이고, TV도 믿을 수 없다. 종편 채널은 말할 것도 없고, 지상파에서 오래도록 방송해서 권위가 있을 듯한 프로그램도 일고의 가치도 없는 소리를 마구잡이로 해대니 볼 게 못 된다. 이래서야 비싼 돈을 내고 보는 이유가 있나 싶다.


그래서 언젠가는 영양제고 뭐고 다 끊어버려야겠다는 마음을 항상 품고 있는데, 잘 생각해보니 그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건강에 조금이라도 좋긴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쇼핑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아서 선물로 주고받는 경우도 아주 흔하기 때문이다. 결혼식에서도 홍삼 제품을 답례품으로 주는 게 일반적이고, 이런 글을 쓰는 나조차도 홍삼 어쩌고를 받는 기분이 나쁘진 않다. 건강에 좋은 것을 받으면 어쨌든 대접받은 느낌이 있고, 홍삼이 건강에 좋다는 말은 평생에 걸쳐 주입받은 탓이리라. 실제로는 홍삼의 특별한 성분을 받아들일 수 없는 한국인이 적지 않은 편이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먹으며 기뻐하고 있을 확률이 있다는데, 그 기쁨과 사소한 효능감을 버리지 못하는 애처로운 심정이 바로 영양제와 건강 기능 식품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지 싶다.


우리집에서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오래도록 음용되는 것 중에는 ‘알칼리수’도 있다. 정수기에 달린 기능으로 수돗물을 거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알칼리성으로 만들기까지 하는 것인데, 집에 비싼 물건을 설치해서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면 건강에 아주 이롭다는 물 중에 제대로 된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우리집에도 많은 탓이다. 아무튼 나는 이 물건이 일단 정상작동을 하긴 하는 것인지 의문이라 리트머스지를 사서 검증해봤다. 그 결과 산성도를 조절하긴 한다는 사실은 알아냈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건강에 좋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검색해봐도 의학적으로 검증된바는 없고, 오히려 신장에 해로울 수 있으니 의사와 상담을 해보라는 뉴스만 한 번 나왔을 따름이다. 알칼리수의 가시적인 효과라곤 오로지 ‘물통에 흰 결정 같은 게 잘 낀다’는 것뿐이다. 덤으로 전기도 많이 먹고 필터도 더 소모하겠지? 우리집에 설치한 모델만 특별히 좋지 않아서 효과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종류의 상품과 믿음에 맞선다는 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이런 나 역시 일반 의약품에 속하는 항우울제를 3년 가량 복용하다 슬슬 끊으려는 것을 도저히 못 끊고 있다. 이건 의약품이긴 하니까 효과가 있긴 할 테지만, 내 기분이란 대체로 엉망진창이니까 체감이 쉽지 않다. 약을 먹으려면 의사와 상담해서 먹는 게 옳다는 게 상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사 보기는 무섭고, 큰 부담 없는 선에서 어떻게든 효과를 보거나 효과를 보는 듯한 기분이라도 누리고 싶은 탓에 계속 여기 머물러 있는 것이다. 삶에서 건강보다 중요한 게 없는데, 정작 건강을 지키는 데에 필요한 갖가지 자원인 돈과 시간과 정신적 여유와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갖춘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결과적으로 이 세상을 허구적인 건강으로 채우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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