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관람을 좋아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한참을 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간지 2년이 지난 2021년 6월에야 겨우 가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19 상황이 거의 다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이 백신을 맞아서 뭔가 좀 안정권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게다가 정례적으로 모이던 모임이 연기되어 다른 약속을 잡아야 했는데, 마침 라이프 사진전이 열려서 이건 사람들을 몇 명 모아서 구경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사진전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는데, 지하철 출입구를 잘못 골라서 회관 후면쪽으로 접근하면 도저히 어디로 가야할지 찾을 길이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만족스러웠다. 다만 이 문제가 웃고 넘어갈 정도로 사소하지는 않게 느껴졌다. 아무리 열심히 걸어다녀도 미술관은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된다는 표지 하나 발견할 수 없었고, 건물 뒤쪽 계단을 통해 매표소까지 올라가니 문앞에 ‘미술관은 올라온 계단으로 내려가서 우측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면 됩니다’라고 적혀 있길래 무릎을 치고 계단을 다시 내려갔으나 에스컬레이터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한참 더 헤맨 뒤에야 알게 된 진상은 단순했다. 미술관은 회관 정면에서 좌측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야 했던 것이다. 즉, 매표소의 안내문은 관객이 회관 정면으로 올라왔을 때만을 가정한 것이었다. 회관 전체가 회관 후면으로 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를 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문제는 고객의 소리에 말해서 개선하겠다는 답변을 듣긴 했는데 확인하진 못했다. 지금쯤은 개선되었기를 바랄 따름이다.
아무튼 많은 전시회가 도슨트라고 해설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기기를 빌려주곤 하는데 이 전시회에서는 아예 방송을 팟캐스트 서비스에 업로드해서 각자 스마트폰으로 듣게 해놓았다(기기도 빌려주는지는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다).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했다. 다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렵고, 그날의 나처럼 통신사 제공 데이터량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사람은 요금 걱정을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한 친구는 이어폰이 없어서 포기해야 했다. ‘요즘 시대에 다들 이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겠지’ 하고 편리하고 발전된 기술을 채용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시 같은 상황이었다. 낡은 기술이 이상할 정도로 오래도록 갈아치워지지 않는 분야가 있다면 이런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도슨트를 거의 듣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류의 해설 방송 듣기를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였다면 심심하지 않도록 방송을 들으면서 관람에 참고했을 테지만, 일행이 있으니 속닥속닥 잡담을 나누기 바빴다. 뭔가를 감상할 때 해설을 듣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부분도 있는 한편, 일행과 의견을 주고 받아야만 보이는 부분도 있다. 나는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후자를 택한다. 그게 압도적으로 재미있고, 같은 것에 대한 다른 생각을 나누는 게 공동 감상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날 우리 일행은 어느 작가가 찍은 사진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마릴린 먼로의 평상복 차림이 멋지고 편해보인다, 레이싱에서 나란히 찍힌 아빠와 아들처럼 보이는 사진인데 부자 관계라는 설명은 없다, 괴벨스가 사진으로도 악독해 보인다, 2차 대전 종전이 정확히 언제였냐 등등 오만 잡담을 속삭이며 관람했고, 나는 오랜만에 퍽 즐거웠다. 좀 과장하면 사람처럼 사는 듯한 기분을 새삼 느꼈고, 앞으로 종종 이렇게 볼거리를 구경하러 다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느적느적 감상하다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혔다. 일단 30분 늦게 도착해서 도슨트를 들으며 관람하던 친구가 우리를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그만큼 관람 속도가 느렸다. 그 증거로 관람 시간 1시간이라 적혀 있는 이 전시를 다 보는 데에 두 시간 이상이 걸렸다. 짧은 전시를 오래도록 열심히 봤으니 나쁠 거야 있나 싶을 수도 있겠는데, 코로나 시국이라 이동하면서부터 물 한 방울, 콩 한 쪽도 안 먹고 도합 세 시간쯤을 걸으니 죽을 맛이었다.
관람을 마친 우리는 무료 전시회를 하나 더 보려던 원래의 계획을 집어치우고 외로운 경기를 마친 운동 선수처럼 주저앉아서 식당을 검색하고 이른 저녁식사부터 게걸스럽게 먹어치워야 했다. 분명 재작년에는 몇 시간씩 거리를 방황하고 전시도 보고 가게도 보고 사진도 찍고 끊임없이 열심히 놀았는데, 전시 좀 봤다고 당장 집에 돌아가 쓰러지고 싶어지다니……. 이것은 보급이 끊겼기 때문일까, 산소가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오랜 실내 생활로 체력이 너절해진 탓일까. 정확한 원인은 규명할 순 없지만, 어쨌든 영화 속의 슈퍼 히어로들이 일상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다시 놀러 다니려면 운동부터 해야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라이프 사진전’을 보고 얻은 깨달음으로 적절하다면 적절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