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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Oct 23. 2021

어떻게 잘 것인가?

수면의 실패는 하루의 실패다.


종종 마음속으로 이렇게 단호한 주장을 해보고 마음 상해서 반론을 찾곤 한다. 수면의 질이 낮아지면 하루 내내 능률이 떨어지는 법이니까 말이 되긴 되지만 실패라고 단정지을 것은 없지 않나…… 잠을 잘 못 잤어도 커피로 버티면서 새로운 발견도 하고, 내 영역도 넓히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제라늄 화분처럼 하루의 보석 같은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로를 호소하는 두뇌를 약물로 강제 각성시켜서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정상적이거나 바람직한 행태는 아닐 테고, 커피를 마신다 해도 능률이 정상 이상이 되진 않는 데다, 갚지 못한 수면 빚은 결국 몰려온다고 하니 수면의 실패가 하루의 실패라는 극단적 주장은 가혹하게 들리더라도 대체로 사실인 것 같다. ‘아, 잠을 설쳤으니 오늘 나는 완전히 쓰레기, 패배자야……’ 하고 실의에 젖을 것까지는 없겠지만.


아무튼 부족한 숙면이 여러 지점에서 삶을 위협한다는 것을 매우 절실히 느낀지는 제법 오래 되었다. 잠을 잘 못 자면 일단 피곤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우울해진다. ‘피곤해서 그런가, 의욕이 좀 없네…….’ 정도가 아니라, 심연으로 통하는 소용돌이 또는 블랙홀 같은 게 생성되어 그 흡인력, 중력권에서 벗어나기가 아주 힘들어지는 것이다. 뇌과학적으로도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고 하는데, 이럴 때 잡고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갈 디딤돌 같은 행복이 충분하지 않으면 폭풍우 속에서 몸을 돛대에 묶고 세이렌의 노래를 듣는 오딧세우스 같은 꼴이 되고 만다. 만사 정상적으로 풀릴 턱이 없다.


그냥 비유적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은 명백히 모든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 쉽게 풀릴 만한 소설의 단서 같은 것들도 잘 떠오르지 않아 헤매게 되고,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도 어려워진다. 단순 타이핑도 오타가 늘고, 짬을 내서 하는 게임 따위도 쉽지 않다.


최근에 쓴 단편 소설은 누워서 플롯을 궁리하다 반쯤 잠들었다가 눈을 뜨고 아이디어 한두 개를 적었다가 다시 조는 식으로 반쯤은 꿈결에 플롯을 만들었는데, 만족한 부분도 제법 있는 한편으로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다. 잠을 잘 자고 맨정신으로 작업했다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실제 결과를 비교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그런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점에선 역시 뭐든 잘 자고 깨끗이 일어나서 하는 게 제일이다.


하지만 잠을 잘 자야겠다고 마음 먹는 것만으로 숙면을 취할 수 있으면 누가 고생을 할까? 그냥 마음먹는 수준이면 사흘은 커녕 이틀도 연속으로 잘 잘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습성, 습관은 단순한 마음먹기로 고쳐지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내가 시도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스마트워치로 수면 측정: 그저 시간을 잰다고 뭐가 나아질 수는 없다. 하지만 ‘수치화 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잠도 수치로 정리하지 않으면 얼마나 잘 잤는지 어떤지  잘 알 수 없다. 자기 몸인데 그걸 왜 모르나 싶기도 하지만, 카페인으로 뇌를 속이는 게 일상화되면 자신이 죽은줄도 모르고 돌아다니는 원귀처럼 피곤한줄도 모르고 이상 상태에 시달리기 쉽다. 홈화면에 몇 시간 잤다고 떠 있으면 생활의 완급을 조절하기도 쉽고, 하지 않는 것보단 훨씬 이득이다.


-잠자리에 스마트폰 반입 금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장 효과가 빼어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스마트폰이 이제 외장형 두뇌나 마찬가지니까 별수 있나. 사실 스마트폰 자체야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무슨 게임에서 소모해야 다시 차는 스태미너 따위 자원을 소모하려 하거나, SNS, 커뮤니티에서 좀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뒤적이는 버릇을 끊지 않으면 숙면은 물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적어도 내 경험상 그랬다. 특히 새벽에 잠깐 깨어났을 때 이런 짓을 하는 게 몸에 익으면 끝장이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 한동안 침대에는 음악 재생만 가능한 기기만 놔뒀는데, 요즈음에는 숙면 유도 목적으로 쓸 앱도 많아서 포기하게 되었다. 대신 수면시간에는 특정 앱들이 실행되지 않게 설정해서 자다 말고 재미를 누리려는 나 자신을 방해하고 있다. 자다 말고 재미있어지려는 생각은 꼭 버려야 한다.  


-라이트 테라피: 강렬한 빛을 쬐어서 세로토닌 등등에 균형을 찾아주는 필립스 조명을 중고로 사서 잘 쓰고는 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효능은 확신하지 못하겠다. 이걸 썼더니 평소보다  1시간 더 숙면했네, 뭐 이런 유의미한 식의 데이터가  나오지 않는 탓이다. 다만 우중충해서 아침이 오긴 했는지 의심스러운 날에 강렬한 빛을 쬐고 있으면 정신이 또렷해지는 느낌이 든다. 의식 한켠에 드리운 커튼을 걷어치우는 느낌이다.  


-안대와 롤스크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깊이 자려면 당연히 빛을 차단해야겠지. 이건 너무 당연한데, 효과는 롤스크린이 더 좋은 것 같다. 안대처럼 중간에 벗겨지지 않으니까. 물론 창문을 열고 자야하는 여름에는 무용지물이라는 단점이 치명적이다. 다만 안대도 반드시 자다가 벗겨져서 아침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되기 일쑤다. 나는 아무리 잠이 모자라도 7시쯤에 깨어나는 습성과 싸우느라 안대에 귀에 거는 고리도 만들고 악전고투한 적이 있는데(버리는 책과 노트의 가름끈을 달았다), 그 결과 안대가 벗겨지지 않을 확률은 높였으나 안대를 쓴 채로 7시에 깨어나는 상황을 겪으며 신체에 각인된 시간 관념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로는 7시에 깨어나서 다시 잘 자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다.   


-Klar: 무료 명상 앱으로, 명상 종류나 코스가 아주 다채롭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다. 나레이션이 느릿하고 좋은 데다 배경에 모닥불 소리 같은 화이트노이즈도 추가할 수 있어서 잘 때마다 듣고 있다.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수면을 취할 때마다 들어서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이 형성된 덕인지, 낮잠을 잘 때나 여행지에서 잘 때도 이걸 들으면 잠에 들기는 빠르게 든다. 이렇게 각인한 습관은 확실히 유용하다. 사실이든 아니든 ‘난 이걸 들으면 대체로 잘 자’라는 인식이 있으면 육체도 그걸 실현하려 하는 듯하다.


-라벤더 아로마: 라벤더향이 수면에 좋다는 소문이 많아서 속는 셈치고 사본 물건인데, 향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싫은 건 또 아니라, 향긋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독하고 날카로운 느낌이 없는 것도 아닌 게 오묘하달까…… 그런 향이다. 그래서 이걸 안대에 뿌리고 자면 잠이 더 잘 오느냐……? 이것도 잘 모르겠다. 다만 잘 때마다 같은 향을 맡는다는 조건 형성이  효과가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때가 아니면 딱히 라벤더향을 맡을 일도 없으니.  


-멜라토닌: 먹자마자 졸린 듯한 기운이 쏟아진다는 점에서 효과는 최고다. 하지만 어째 나는 용량을 줄여도 그 졸린 기운이 아침까지 이어져서 악착같이 커피에 의지해야 했다. 전혀 효과가 없다는 어머니와 반대다. 아무튼 잠을 부르고 쫓는 일을 이런 식으로 약물로 강제 조절하다간 어딘가 망가질 것같아 포기하고 말았다.


-수면 음악: 유튜브나 각종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잠 잘 때 들으면 좋다는 음악 리스트를 여러 종류 제공하고 있다. 이것저것 시험해 보니, 멜로디가 단순할수록 효과가 좋다. 하지만 너무 단순하면 듣는 동안 잡념이 끼기 쉽다. 비유하자면 동네에 오래전부터 있는 구덩이처럼 익숙하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금방 굴러 떨어지는 그런 암담한 잡념이다. 그렇다면 멜로디가 다채로운 것은 어떨까…… 당연히 멜로디가 지나치게 화려하고 쾅쾅 때리면 자다가도 깨어나게 되어 있다. 스윙재즈처럼 관악기가 찌르고 나오거나 교향곡처럼 수십 대의 현악기 소리가 장엄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이 그 예다. 수면음악이래서 무작위 재생을 했다가 이런 곡이 나오면 화가 치민다. 한편 유튜브에서 찾은 ‘윤한’의 수면음악은 잠은 잘 오면서도 멜로디가 적당한 균형을 잘 잡고 있다. 이건 종종 듣고 있다.   


-뇌파 음악: 유튜브에서 무슨파를 나오게 해주는 음악이라고 다양한 음악을 찾을 수 있는데, 예전에 엠씨스퀘어 끼고 잘 잤던 걸 떠올리면 효과가 없지 않겠구나 싶기도 하고, 실제로도 괜찮은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듣기에 좋은 소리는 또 아니라서, 자다 깨어나 이 웅웅대는 소리를 듣자면 어쩐지 비밀조직의 개조인간처럼 세뇌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유쾌하지 않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삶을 위해서 잘때 이런 소음이나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개운치 않아서 요즘은 듣지 않게 되었다.   


-팟캐스트/오디오북: 하루가 불완전연소한 것 같고, 대충 잠드는 것으로 처분하기 너무 아쉬울 때 팟캐스트나 오디오북을 듣곤 한다.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다지 재미가 없을 때는 나쁠 게 없지만, 얘기가 너무 재미있으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잠이 오지 않는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요즘은 이것도 버릴 습관이라 생각하는데, 재미있게 자는 유일한 수단이라 고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타협안을 찾자면, 재생 속도를 늦춰서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듣는 것. 너도나도 졸리거나 취한듯 웅얼거려서 잠들지 않고 들어줄 재간이 없다.


-미소녀 잠자는 소리: 우주 공간에 홀로 버려진 듯한 고독감에 시달릴 때 시도한 방법으로, 이것도 뭐든 다 있는 유튜브에서 찾았다. 범람하던 ASMR 유행의 기괴한 유산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주로 듣는 것은 미소녀 둘이 잠자는 소리라는 설정의 숨소리가 두 시간 연속으로 나오는데, 듣고 있자면 이게 바로 디스토피아인가 싶어서 웃음이 나온다. 아무튼 미소녀 숨소리라고 해서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든가 야한 꿈을 꾼다든가 하는 효과는 일절 없고, 제법 잠이 잘 오는 것 같다. 놀러가서 여러 사람이 같은 방을 쓰면 타인의 숨소리가 방을 가득 채우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과 상당히 유사한, 잠으로 꽉 찬 공간을 연출해주는 효과는 확실히 있다. 다만 ‘미소녀’임을 어필하기 위해서 넣은 것인지 목소리와 숨소리의 중간적인 끙끙거림이 종종 들리는데, 이럴 때마다 옆 사람이 깰 것 같은 묘한 불안감이 찾아올락말락 한다. 게다가 쓸데없이 ‘무대 뒤’를 상상하게 된다는 점도 문제다. ‘이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두 사람이 두 시간 동안 마이크 앞에 앉아서 끊임없이 숨쉬는 소리를 내고 또 냈구나’ 같은 생각을 하자면, 창작의 세계란 참으로 가혹하구나 싶어 마음이 영 편치 않다.  


대강 정리하면 이렇게 많은 시도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내가 코를 곤다고 해서 Snoreclock이라는 앱으로 녹음을 시작했다. 결과는 충격적으로, 나는 나흘간 매번 코를 골았다. ‘나는 피곤하지 않으면 코는 안 골지’라고 생각하고 그 사실을 내 마음속 작은 모닥불처럼 여겼는데, 죄다 허상이었던 셈이다. 심지어 코만 고는 게 아니라 이도 갈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코골이와 어머니의 이갈이를 한몸에 이어받은 기적의 자식이었다. 기왕이면 마족의 무력과 신족의 마력 같은 걸 이어받을 것이지……



어디서나 아무때나 막 자는 잠천재는 필시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이다


깨어서 사는 시간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듯이, 잠든 시간도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요즘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깨어 있는 동안도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잠들어야 할 시간에도 헛짓을 하면 안 된다. 아휴, 이제 좀 쉬겠네, 하고 스마트폰을 뒤적이며 자는 것도 자지 않는 것도 아닌 시간을 즐기다 보면 삶에 누수가 생긴다. 그런 누수에 너무 지쳐서 그제부터는 스마트폰을 아예 책상에 두고 자기로 했다. 대신에 수면 명상 음악을 녹음해서 메모리카드에 옮기고, 그걸 블루투스 스피커에 꽂아서 자는 내내 반복재생한다. 이게 블루투스 스피커로 가능하다는 것을 떠올리기 전까진 mp3p를 살까 고민할 정도로 필사적이었는데, 다행히 효과는 다른 어떤 방편보다 나았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는 일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살던 시절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게 거짓말 같고 씁쓸해진다. 이제 취미를 즐기다 잘 수도 없고, 취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잘 수도 없다. 전력질주하는 올림픽 선수처럼 이를 악물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필사적으로 자야 한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화면 하나 없는 스피커로도 나의 숙면을 도울 수 있도록 부단히 습관을 들였다는 사실이다. 나를 돕는 것은 결국 온갖 기기와 앱과 기술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누적된 나 자신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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