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를 체감하면 건강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게 당연한 이치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운동을 해야 하는데, 맨손으로 하는 것보다는 기구를 써서 하는 게 좀 더 수월하게 느껴지므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운동 기구를 하나씩 사 모은다. 거주 환경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자신이 해야 하는 운동에 도움이 되는 운동 기구가 제법 싼 값에 나온 것을 보면 조금이라도 혹하는 게 현대 한국인의 보편적인 감성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그런 이유로 우리집에도 이런저런 운동 기구가 있고, 있었던 것은 더 많다. 그중에서 가장 부피가 컸던 것은 단연코 트레드밀, 보통 러닝머신이라 부르는 물건이다. 어디서 어떻게 찾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가 중고로 구해온 우리집 러닝머신은 상당히 거대한 데다 경사까지 조절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손잡이 부분에 전극까지 달려 있어 심박수를 측정하는 기능도 있었다. 일반 가정용보다는 업소용에 가까웠던 게 아닐까. 아무튼 이 거대한 운동 기구를 층간 소음이 심한 아파트에서 무작정 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소음 방지용 매트를 2중으로 깔고 러닝머신을 그 위에 올리는 것도 모자라서 경사를 조절할 때 바퀴가 잘 굴러가도록 레일까지 마련해 깔아줘야 했으니, 모시기 어려운 운동 기구로는 러닝머신이 제왕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러닝머신이 그렇게 자주 이용되지는 않았다. 영화 따위를 틀어놓고 이용하기에 제법 괜찮은 기구라는 것만은 확실했지만, 아무도 이걸 좋아하진 않았던 것같다. 나는 좀 싫어하는 편에 가까었다. 깨끗한 운동화를 가져와서 신고 올라가는 것도 번거로웠고, 가동에 전기가 들어간다는 사실도 싫었다. 내가 이렇게 에너지를 소모해서 바퀴를 굴리고 또 굴리는데 대체 왜 전기를 소모해야 하느냔 말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보니 러닝 머신에 부착할 만한 발전기도 비쌌고, 심지어 동력이 들어가지 않는 러닝머신조차 매우 비쌌다. 인간이 달리기 적당한 벨트를 인간의 힘만으로 매끄럽게 돌아가게 만드는 것부터 기술적으로 어려운 모양이다. 그러니 러닝머신으로 유의미한 전력을 생산하는 건 훨씬 어렵고, 생산을 가능케 한다 해도 그 전력을 얻자고 만들어 팔기에는 너무나도 비싼 물건이 될 수밖에.
가동에 돈이 들어간다는 것 말고도 싫은 점은 많았다. 멋대로 돌아가는 벨트에 맞춰서 뛰는 게 너무 힘들고 부자연스러웠다. 잠깐 숨을 돌리고 싶을 때마다 버튼을 조작하는 게 성가셨다. 게다가 조금만 뒤쳐졌다간 뒤에 있는 테이블을 걷어차게 되어 항상 긴장해야 했고, 그렇다고 손잡이를 잡고 있으면 움직임이 운동 같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실에서 러닝머신을 쓰고 나면 십중팔구 ‘고작 그거 하고 끝이냐’는 말을 듣게 되는 게 결정적이었다. 이건 러닝머신의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그런 저런 이유로 운동하는 모든 순간에서 자율성을 빼앗긴 기분이 도통 즐겁지 않을 뿐더러 성취감도 없어서 좋아할 수가 없었다. 아마 가족들도 엇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러닝머신은 흔히 그렇게 되듯, 종종 빨래 걸이 역할을 하다가 방출되었다. 크기만 한 게 아니라 심지어 시커먼 색이라 보기도 싫었던 그 물건이 빠지고 나자 거실은 대궐같이 넓어졌다.
러닝머신 도입 전부터 후까지 제법 오래 버틴 운동 기구로 실내 사이클도 있었다. 이건 나도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이패드를 보면서 타려고 옷걸이나 골판지 따위로 거치대를 만들기도 했다. 베란다에서 타면 운동 시간에 대한 잔소리도 좀 덜 듣는 편이었다. 이것을 탈 때도 영상을 주로 봤는데, 딱히 손 쓸 일이 별로 없어서 게임을 하기도 했다. 특히 게임 중에선 레이싱 시뮬레이션 게임이 재미있었다. 실제 게임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데도 가속할 때마다 페달을 더 열심히 돌리게 되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집 베란다는 반쯤 창고라서 운동하기에 그리 쾌적한 곳이 아니기도 하고, 운동을 하러 굳이 편치 않은 곳까지 움직이는 게 귀찮기도 한 데다가, 그렇게까지 보람이 느껴지지도 않아서 결국은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러닝머신과 마찬가지로 가족 모두가 점점 쓰는둥 마는둥 하다가, 빨래를 걸어 말리다, 최종적으로는 팔아치우게 되었다. 그 큰 쇳덩이를 헐값에 팔면서 지하까지 끌고 내려가 구매자의 차에 싣기가 아주 어렵고 힘들고 한심하게 느껴졌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자전거가 허벅지 근육 단련에 좋은 것만은 사실이라, 자리를 덜 차지하는 실내 자전거가 없나 검색한 끝에 좌식 실내 사이클을 사서 대체하게 되었다. 회전 반경이 작아서 효과가 그리 좋을 것 같지는 않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한다. 이것은 소파 생활자인 어머니의 전용이 되었다. 나도 방에서 뭐 볼때 쓸 생각을 하긴 했지만, 거실에서 방까지 가져오기가 귀찮아서 완전히 포기했다. 이쯤되면 운동의 가장 큰 적이 귀찮음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도 된 것 같은데 발전이 없다.
근래에는 홈트레이닝이 유행하면서 전신운동에 좋다는 로잉머신이 각광받게 된 것 같다. 우리집에는 아주 먼 옛날부터 로잉머신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가 쓰던 것으로, 긴 손잡이 하나를 잡아당기는 요즘 제품들과 달리 양손으로 별개의 손잡이를 잡고 노 젓듯 자유로운 각도로 당길 수 있는 기구였다. 움직이는 좌석과 발판도 달려 있어 어릴 때는 그것으로 우주선 조종석 놀이를 했다. 정말 아무거나 갖고 노는 시절이었다. 이 로잉머신은 어지간한 어린애보다 크고 무거워서 이사할 때인가 처분했는데, 2년쯤 전에 유사 모델을 다시 샀다.
다시 산 로잉머신은 일부러 비슷한 모델을 고르긴 했다지만 놀라울 정도로 변한 부분이 거의 없었다. 계기판이 생겨 횟수나 칼로리 따위를 볼 수 있게 된 부분만 달라졌을 뿐이다. 이 로잉 머신도 옛날처럼 아버지만 전용 기구로 사용했다. 사용하지 않을 때 들어다 벽에 세워놓는 것부터 일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의자가 움직이고 멈추는 소리가 은근히 시끄러워 사용이 꺼려졌다. 이 물건도 작년 2022년 여름에 또다시 처분했다. 별로 운동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몇 번 써본 느낌으론 조금만 더 작고 가볍기만 해도 쓸만 했을 것 같지만……. 아무튼 이 역시 당근마켓으로 팔기가 쉽지 않았다. 모든 부분을 닦고 크기를 재서 올리고, 약속 시간에 혼자 수레에 싣고 나가서 길을 건너 중년 여성 구매자의 차에 실어주었다. 계측하진 않았지만 그 로잉 머신을 이용해서 소모한 칼로리보다 로잉 머신을 옮기느라 소모한 칼로리가 더 많을 것이다. 그나저나 그 구매자의 차에는 이미 의자 따위 가구가 가득 실려 있었는데, 생활공간을 새로 꾸미면서 그 커다란 운동 기구까지 작심하고 마련한 것일까?
몇 가지 운동 기구를 연달아 처분하고 나자 우리집은 겨우 평화를 찾은 듯싶었다. 거실에는 좌식 실내 사이클과 제자리 계단 오르기 운동용 플라스틱 계단만 남았다. 플라스틱 계단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유압식 스태퍼를 시끄럽고 무릎에 안 좋다는 이유로 처분한 이후로 시간이 제법 지난 뒤에 들인 것인데, 아주 짧은 시간만 이용되다 잡다한 물건을 올려두는 선반으로 용도가 변경되고 말았다. 잡동사니를 바닥에 그냥 놓는 것보다는 안전한 상태니까 나름대로 적당한 이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평화도 오래 가진 못했다. 불과 몇 주도 지나지 않아서 산책을 나간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 ”누가 로잉 머신 작은 걸 버렸는데 가져갈까?” 하고 물었다. 이미 운동 기구 처분에 넌더리가 난 나는 당연히 반대했지만,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새로 들어온 로잉머신은 철골로 연결된 손잡이를 호 모양으로 잡아당기는 유압식이었는데, 좌우 구분이 없는 만큼 전에 쓰던 것보다는 확실히 작았다. 그만하면 그냥 두고 써도 크게 보기 싫지는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오로지 발받침 끝부분이 상해있고, 발 거는 고리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좀 더럽기도 했다. 자국을 보아하니 개가 씹어댄듯 했다. 별로 쓰지도 않는데 개까지 자꾸 물어뜯으니 내버린 것이리라.
내력이야 어떻든 이 로잉 머신은 잘 닦아서 지금까지 쓰게 되었다. 아버지는 또 약하다고 안 쓰지만 어머니는 근력 운동 기구로 애용하고 있다. 앉아서 TV를 보는 모습이 더 자주 목격되긴 하나,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애초에 운동 기구의 용도 중 상당 부분이 자리를 차지하고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라는 압박을 가하는 것이기도 하고, 빨래걸이로 이용되기 힘든 구조이니 합격점을 줄 수 있겠다.
그렇게 우리집 운동 기구 시스템은 완결되는 듯싶었는데…… 근래에 플랭크를 하던 아버지가 성에 안 찬다고 생각했는지 코어 근육 강화용 운동 기구를 새로 주문하고 말았다. 바이크를 타듯이 앞으로 비스듬히 앉아서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부분에 무릎을 얹고 당기고 미는 구조다. 실린더 따위 없이 중력만을 이용하는 방식이라 반드시 필요한 물건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새것 주제에 수평이 안 맞고 나사산 하나가 엉망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허용 범위다. 올해 정도는 버틸 것 같다.
그러나 이 많은 운동 기구를 겪으면서도 내가 가장 애용한 것은 닌텐도 스위치의 피트니스 게임, 링 피트였다. 필라테스 링과 움직임 감지 센서의 가능성을 모두 끌어내어 별별 운동을 다 시키면서도 간단한 롤플레잉 게임을 접목하여 질리지 않게 만드는 이 첨단 운동 기구를, 코로나 대유행 기간 내내 제법 열심히 했다. 지금도 가장 재미있는 피트니스 게임과 운동 기구를 고르라면 이것을 고를 수 있다. 요즘은 운동을 뒷산 산책으로 대체한 탓에 게임은 켜지 않고 링만 꺼내서 팔 운동과 복근 운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도 제법 효과가 있다. 필라테스 링 광고란 광고는 모두 미녀가 쓰는 사진뿐이라 성인 남자가 쓰기엔 약하다고 여겼는데 참으로 건방진 생각이었다. 집어들고 운동을 시작하기는 쉬우면서도 효과는 나쁘지 않다. 게다가 나의 만성적 어깨 통증을 재발시키지도 않고, 심지어 자리를 차지하지도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곁에 두고 애용할 만한 운동 기구의 조건을 다 충족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거대한 바벨이나 체스트프레스 같은 기구를 써서 효율적으로 근육을 키우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시간, 공간, 돈 모두와의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처지에는 이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아무리 빼어난 카메라가 많아도 가장 좋은 카메라는 당장 내 손에 있는 카메라라는 말이 있듯이,
운동 기구도 가장 좋은 것은 당장 내 손에 집어들고 쉽게 근육을 쓸 수 있는 기구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걸로 근육량이 얼마나 늘었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궁색해지지만, 가만히 앉아서 노화에 떠밀려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이 개정되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9577892619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리며, 책 속의 세 부분을 남깁니다.
버림받은 물건이나 버려질 때가 된 물건을 쓴다는 행위는 대개 이런 식이다. 같은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새것을 사서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편이 합리적일 때가 많다. 그런데도 이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첫째가 돈이 불충분하기 때문이고, 둘째가 사람이란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남이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알아보았을 때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타인과 식사를 할 때면 아무래도 부끄러워진다. 혼자서만 메뉴판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저렴한 음식을 찾는 것 같아 쓸쓸하기도 하고, 성인으로서 온당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같아 괴롭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충분히 노력했으니 자신이 가끔 호사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호캉스를 긍정하려는 이유는 그게 합당하고, 자격을 따져선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