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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Feb 09. 2022

죽어가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아이폰 3GS로 스마트폰에 입문한 뒤, 나는 줄곧 아이폰만 쓰다가 이어폰 단자 삭제와 가격 폭등 등으로 빈정이 상해서 안드로이드로 떠났고, 절 떠난 중처럼 이 폰 저 폰을 전전하다 LG에 정착해서 G6 부터G7+, G8까지 쓰고 있다. G8은 2019년 하반기에 중고로 사서 2022년 2월인 지금까지 쓰고 있으니 대략 30개월 정도 사용중인 셈인데, 중고로 구매한 것을 생각하면 제품의 실제 가동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그런데 슬슬 그 G8이 죽어가는 징후가 보인다. 옛날에 산 스마트폰을 딱히 수리하지 않고 5년 넘게 쓰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까  뽑기 운이 좀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초기 증상은 어쩐지 종종 지문 인식이 안 되는 귀여운 것으로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주머니에서 꺼냈더니 완전히 먹통이 되어 반응하지 않는 심각한 증상으로 진행되었다. 심지어 그 증상이 나타난 건 하필 PCR 검사 직전으로, 나는 한 시간을 기다려놓고 스마트폰이 켜지지 않아 제발 켜지라고 간절히 빌며 뒷사람을 하나씩 보내다 포기하고 스마트폰이 고장나서 QR코드를 보여드릴 수가 없는데 다른 방법이 없겠냐고 물어 신상을 입으로 말한 끝에야 간신히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오싹한 일이다.


여기에 바로 며칠 전에 추가된 증상은 마이크가 먹통이 되는 것이다. 전에도 통화하다 상대가 말을 못 알아듣는 일이 가끔 있어서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무선 이어폰을 연결하기까지 수십 초 내내 음성이 전달되지 않았다. 용건이 아주 중요하거나 급하지 않아서 망정이지, 거래처 전화거나 긴급 신고 따위였으면 야단났겠구나 싶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스마트폰 교체를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모든 증상이 다 메인보드 문제로 추정되는데 메인보드 수리에 중고가의 두 배는 들 게 뻔하기 때문이다. 통화를 그리 자주 하지 않기도 하고 여차하면 이어폰을 연결하는 수가 있긴 하나, 전화가 울리기 시작해서 상대가 포기하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이어폰을 찾아서 귀에 끼는 작업을 반복한다는 건 결코 수월하지 않은 일이다. 애초에 태생이 전화기인데 전화가 안 된다는 건 주 기기의 자격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런데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요즘 스마트폰이라는 게 ‘바꿀 때 됐으면 바꿔야지’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주문할 만큼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나는 스마트폰을 중고로만 사니까 중고가만 보는데도 당장 근심스러워진다. 물론 ‘자주 쓰는 것은 좋은 것을 쓸 것’이라는 격언을 신봉하는 만큼 확 질러버리면 삶의 질이 약간 올라가긴 할 거라고 예상하긴 한다. 그러나 저번 달에는 맥북을 수리하느라 16만원을 지출했고, 엊그제에는 로봇청소기가 고장나서 어떻게든 고치려고 뜯어봤다가 포기하고 수리 보낸 참이다. 그런 와중에 20~40만원 가량을 또 지출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게다가 G8이 당장 완전히 못쓰게 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G8을 당장 못쓰게 되었다고 한대도 이미 어정쩡한 대안들을 확보하고 있어서 또 고민이었다. 대안 1은 샤오미의 포코폰 f1 . 출시 당시에 가성비 폰으로 소문난 물건으로, 방수방진이 안 되고 카메라도 시원치 않지만 성능만은 훌륭해서 게임 전용으로 구해놓은 것인데, 샤오미가 어느 국가에서 단어 검열을 한다는 얘기가 있어서 믿고 쓰기가 어렵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어지간히 절박한 상황이 아니면 주 기기로는 쓰고 싶지 않다.


대안 2는 형이 안 쓰니까 팔지 말고 잘 쓰라고 빌려준 아이폰 11프로다. 성능이야 앞으로 몇 년은 버틸 만큼 짱짱하고 완성도도 더할나위가 없는 데에다 나도 익숙한 물건이지만, 안드로이드를 한참 쓰고 나니 답답한 iOS로 돌아가기가 도무지 내키지 않는다. 게다가 애플페이가 없으니 스마트폰만 달랑 들고 나갔다가 뭘 사오는 것도 불가능하고, 통화 녹음도 되지 않는다.


특히 다른 건 다 참고 넘어간대도 통화 녹음이 되지 않는 것은 도저히 감수할 수가 없다. 아이폰을 익숙하고 당연하게 써온 사람들은 통화 녹음이 그렇게 쓸데가 있진 않다고도 하고, 중요한 업무 내용은 어차피 문서로 다시 오가니까 상관 없다고도 하지만 안드로이드를 몇 년 써본 프리랜서로서는 이 말이 ‘자동차 블랙박스 볼 일이 얼마나 있냐’는 말로 들린다. 통화 녹음은 자주 유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종종 대체할 수 없을 만한 가치를 지니는 기록이 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폰으로 통화 녹음을 하는 방법을 뒤적여봤는데, 스피커로 통화하며 다른 기기로 녹음하는 것, 아니면 스위치라는 서비스를 경유해서 녹음을 서비스업체에 남기는 것 두 가지 정도다. 그중에서 다른 기기로 녹음하는 건 너무 번거로우니 스위치 서비스를 쓰는 것만이 답인데, 이것도 알아보니 수신 전화 녹음의 경우 착신 전환을 이용해서 서비스 가능한 번호로 돌려 받아야 하는지라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큰 돈이야 아니지만 번거로운 설정을 돈 까지 내고 하자니 이렇게까지 꼭 쓰고 싶을 정도로 내가 아이폰을 사랑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싶다. 단순히 쓰는 것만으로 즐거워질 정도로 UI가 매끄럽고 아름답고 카메라도 마음에 든다는 건 인정하지만, 내 가치관으론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밖에서 마스크를 쓴 채 아이폰을 집어들 때마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번거로움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서 매달 ‘녹음비’까지 더 쓰는 건 결사반대다.


그리하여 오로지 적당한 갤럭시를 뒤적이는 것만이 최선의 선택지로 남고 말았는데, 그나마 가격 부담이 덜한 2019년 모델을 쓰자니 성능이 지금보다 별로 나아지지 않는데다가 번인이 걱정이고 2020년 이후 모델을 쓰자니 가격이 무섭다. 게다가 부모님은 구형 폰을 멀쩡히 잘 쓰는데 나같은 밥벌레가 몇 대째 스마트폰을 갈아대는 것도 면목이 없어서 결국은 이도저도 택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으니, 앞으로는 G8이 더 망가지지 않길 바라며 이어폰이나 세트로 잘 챙겨 다니는 것이 상책일 모양이다.


기계는 어디서 와서 왜 고장나고 또 어디로 가는가? 요 두 달 사이 전자 기기 세 대가 고장났는데, 시간의 흐름과 부서지는 것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허허롭고 나도 이제 고장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하며, G8처럼 고치는 것보다 떠나보내는 것이 합리적인 상황이 되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추신: 어젯밤엔 어머니가 잠깐 응급실에 가시게 되었는데, 정신이 없다 보니 이어폰을 빠뜨렸습니다. 때문에 한 시간 반 가량 통화가 제대로 안 되면 어쩌나 걱정하게 되었으니, 통신 기기의 신뢰도는 확실히 중요한 듯합니다. 다행히 어머니는 건강히 나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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