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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Feb 16. 2022

최고의 명상앱을 찾아서

명상 앱을 이것저것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년쯤 된 것 같은데, 명상이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하겠다. 깊고 확고한 안정감을 얻을 순 없으나 안 하는 것보다는 약간 더 몸이 가벼워지고 심박수가 낮아지는 정도라고 할까. 아마 명상을 했을 때 반드시 나아진다는 믿음이 자리잡히면 기도처럼 꾸준히 효과가 강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믿음을 갖는다는 것도 자기 세뇌의 일종 같아서 어딘지 모르게 좀 무서운 느낌도 있고, 이런저런 일로 초조하고 급박하고 정신이 무너지려 할 때 느긋하게 심호흡을 하고 앉아 있기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그러기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짧게나마 유튜브 보는 게 더 즐거울 것 같기도 하고.


그리하여 내가 명상 앱을 사용하는 것은 주로 잠들 때다. 빠르게 깊이 잠들어야 할 때 막연히 잠이 빨리 오길 바라며 기다리자면 심심하기도 하고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되지 않기도 해서 스마트폰 따위를 집적거리기 일쑤인데, 이럴 때 수면용 프로그램을 재생하면 효과도 빠르고 지루하지도 않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무슨 영상을 보지 않으면 안정을 찾지 못하는 유아 같은데…… 인간은 영원히 누가 말 걸어주지 않으면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인가?)


아무튼 꽤 오랫동안 KLAR라는 무료앱을 써왔고 효과도 좋았는데, 그러다 영화를 보고 충동적으로 빌린 소설 ‘듄’을 꾸역꾸역 읽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서 전자책을 들으며 자는 습관이 붙고 말았다. 이건 내용이 재미있으면 잠이 달아나는 경우도 있어서 수면에 아주 좋은 습관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크게 지루하지 않고 질리지도 않으면서 수면에는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다 발견하게 된 것이 바로 유명 명상 앱인 Calm이었다.


유명한 만큼 Calm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쏙 든 것은 ‘굿나잇 스토리’다. 이건 간단히 말해 목소리 좋은 성우나 나레이터들이 여행기나 동화 따위를 읽어주는 프로그램인데, 잠들기 좋게 큰 톤의 변화 없이 차분하게 읽어주는 데다 내용도 딱히 흥미진진할 게 없는지라 일단 재생하기 시작하면 ‘나일강의 모습이……’ ‘열차가 산을 오르는데……’ 하다가 금방 잠들어버린다. 성우의 가족으로 태어나서 보살핌을 받는 게 아닌 다음에야 이 정도로 달콤하게 안정적으로 재미를 느끼며 잠들 순 없지 않을까? 그래서 큰맘먹고 1년 결제까지 해버렸다. 구독하는 게 한둘이 아닌 세상에 제법 과감한 선택이었다.


명상=100퍼센트 평온 보장이라고는 못하겠다. 내 몸에 꼭 맞는 목소리도 찾아야 하고...




그런데 이 Calm도 시간이 지나며 은근히 소소한 문제가 느껴지기 시작했으니, 일단 앱에 포함된 음악 외에는 반복 재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30분쯤 나오고 자동으로 꺼지는 게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합리적이긴 하겠지만, 새벽에 깨어나서 다시 잠을 청하는 버릇이 있는 나로서는 스마트폰을 열어서 재생 버튼을 또 누르는 게 상당한 고역일 뿐더러 스마트폰을 쥔 김에 딴짓으로 빠질 수 있다는 위험부담도 상당하다. 그래서 제작사측에 반복 옵션을 넣어달라는 부탁도 보내봤지만 업데이트를 두 번인가 거치고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용자가 잠결에 무슨 이야기를 무한정 듣는 것은 제작사에서 추구하는 이용 방식이 아닌 모양이다. 하기야 고요라는 앱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하여 ‘코끼리’, ‘마보’, ‘루시드’ 등등 인기 명상 앱 여럿을 다 테스트해봤는데, 반복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공교롭게도 KLAR와 Calm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콘텐츠가 가장 빼어난 것도 이 두 가지라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KLAR는 콘텐츠가 적지만 충실하고 나레이션의 음색과 어조가 적절하며 마음가짐에 대한 가이드(바꿀 수 없는 환경에 가치를 두지 말라든가)도 썩 좋은 수준이다. Calm은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 앱답게 콘텐츠도 많을 뿐더러 나레이션의 실력은 물론이고 녹음 상태마저 훌륭하다. 한편 다른 앱들은  녹음 상태가 아쉽거나 나레이터션이 성우 수준으로 매끄럽지 않고 콘텐츠가 부족한 경우가 태반인데, 그중에선 ‘코끼리’가 가장 괜찮게 들을 만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녹음은 편차가 있지만 준수한 범위고, ‘굿 나잇 스토리’ 비슷한 것은 물론이고 심리 관련 프로그램도 이것저것 늘고 있어서 유튜브에서 자기계발 영상 보듯이 골라 들을 수 있다. 반복도 된다. 참으로 발전적이다.


결과적으로 최고의 명상앱을 찾는 모험은 KLAR로 시작해서 Calm을 거쳐 코끼리에서 끝나게 되었으니, 앞으로 좋은 말을 좀 듣고 정신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을 때는 KLAR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으며 잠을 청할 때는 Calm을 이용할 생각이다. 그리고 Calm 구독이 끝날 때까지 반복 기능이 추가되지 않는다면 코끼리로 갈아타야겠다. 어쩌면 수면 시간 내내 말소리가 들리는 게 숙면을 방해한다고 생각해서 반복을 추가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이유 없이 깨어나는 새벽마다 밀려드는 갖가지 감정에서 도피하고자 이 커뮤니티, 저 SNS 따위를 뒤적이는 습관에서 나를 지키려면 악마의 속삭임이라도 들어야 할 판이니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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