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비대면 시대의 문이 대뜸 열리고 말았고(혹은 대면 시대의 문이 대뜸 닫히고 말았고), 평소에도 친구들끼리 모여서 보드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같이 보고 놀기를 즐겼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온라인에서 그런 유희를 즐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각종 ott서비스도 그런 흐름을 따라 여러 사람이 접속해서 같은 타이밍으로 영상을 감상하게 해주는 방편을 내놓긴 했다. 그래서 나도 이것을 이용해봤는데, 나의 개인적인 감상은 아주 만족스럽진 않다는 것이었다. 기술적인 문제를 겪은 것은 아니다. 상영회는 잘 진행되었고, 종종 잡담도 하고 과자도 먹으며 무난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엔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고, ‘열광적인 맥락’을 형성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본 영화들은 그래선지 대체로 인상이 흐리고 제목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반면에 그동안 여럿이 실제로 모여서 본 영화들은 그야말로 뇌리에 강렬하게 새겨져 있으니…… 일단 엠티 가서 본 ‘버드 박스’는 넷플릭스 영화는 별로 아니었나? 하고 의심하고 보기 시작했지만 미지의 존재를 보면 자살한다는 설정의 매력에 빠져서 모두가 안대를 하고 사진을 찍을 정도로 열광했다. 여럿이 놀러 가서 영화를 본다는 게 이 정도로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실감과 기쁨을 선사한 영화였다.
그 뒤에 본 ‘일라이’는 수상쩍은 정신병원의 공포를 다룬 작품인 줄 알았는데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만족시키는 반전으로 이어져서 그야말로 다같이 열광하고 기립박수를 칠 지경이었고, 영화 보는 흥이 오른 김에 바로 이어본 ‘미드소마’는 몹시 기괴하고 컬트적이라 감상이 난해한 작품이었는데도 모두가 이상할 정도로 장면과 설정을 즐겨서 우리의 집단 문화에 녹아들고 말았다.
이런 경험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영화를 참 잘 즐기는 게 분명한데도 온라인으로는 크게 흥이 난 적이 없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인데, 생각해보건대 영화를 온라인으로 모여서 볼 때 재미가 없는 것은 영화를 동시에 감상하는 동안의 미세한 반응이 모여서 형성하는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기 때문인 것 같다. 슬쩍 던지는 농담이나 탄성,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도 내 옆에 생생히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전선을 타고 간 곳에 있는 화면 너머, 손바닥보다 더 작은 화상 채팅 창 안에 갇혀 있으니까 나를 둘러싼 분위기 자체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분위기가 없으니 농담이 시들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장면에 인상을 더해주는 실제 세계의 사건이 줄어드니 영화도 기억에 남지 않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물리적 한계라는 뜻이다.
하지만 부득이하게 온라인 영화 모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도 분명 있을 텐데 이런 모임을 더 재미있게 만들 방법은 없을까……. 나는 일단 화면을 키우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모든 온라인 모임에 해당되는 방법인데, 상대의 얼굴이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화면을 몇 분할한 수준으로 작아선 목소리만 듣는 것만 못할 수 있고(오히려 목소리만 들을 때 상대의 말에 집중하는 경향도 있다), 어쨌거나 사람 얼굴은 크게 봐야 생동감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더 첨단 기술을 사용하면 아예 VR 기기를 써서 모두가 가상현실 세계에 아예 들어간 다음 가상의 스크린을 통해 감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미세한 움직임과 표정, 소리까지 다 전달되진 않겠지만 모여서 본다는 맛은 제법 날 것 같고, 가상현실인 만큼 과격하게 날뛰어도 문제가 없으니 그 나름의 반응을 즐기는 것도 제법 재미있을 것 같다. 실제로 공연이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져 대성공한 예도 많다고 하고.
그나저나 요즘 어디서든 메타버스 타령이 안 들리는 곳이 없는데 가상현실에서 음식을 맛보는 시대는 언제 올런지? 당장은 가상 음식점에서 음식을 시키면 모임중인 사람 모두의 집에 같은 음식이 배달된다는 식으로 구현할 수밖에 없겠고, 아마도 뇌에 전극을 박아서 감각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근본적인 해결이 될 것 같다. 그때가 되면 아무리 실제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라도 언제 어디서든 모여서 신나게 영화도 보고 팝콘도 먹을 수 있으리라. 그만한 기술로 고작 한자리에 앉아 영화나 보고 팝콘이나 먹는다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인간의 사교 활동이 음식을 나눠 먹는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상현실에서 음식을 맛볼 수 있게 되어야 모임이 모임으로서의 실감을 충실히 갖추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만약 그게 당장 가능하니 수술을 받아보겠냐고 제안한다면 어지간해서야 거절할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