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폐쇄적인 삶을 살자니 건강에 어떤 문제든지 생길 것 같아서 링 피트를 시작했다가 그것도 결국은 실내에서만 하는지라 상쾌한 진짜 개방감 같은 것을 선사하진 않는다는 걸 깨닫고 하루에 30분씩 런닝을 한지 8개월쯤 된 것 같은데, 의욕이 넘치던 여름과 달리 이것도 정신적인 마모가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파트 단지 안쪽만 똑같이 빙빙 도니까 풍경이 넌더리나고 지겨워지는 것이다.
김연아 같은 선수도 연습장이 맨날 똑같아서 지겹다고 한 적이 없듯(아마 없을 것이다), 항상 한계를 시험할 정도로 뛴다면야 풍경이 어쩌니 환경이 어쩌니 할 여유고 뭐고 없겠으나, 나는 프로 선수 수준으로 한계를 시험하긴커녕 충분히 열심히 뛰었다고 자신할 수준에도 이르지 못했으니 불평을 할 만도 하지 않은가 싶다.
써놓고 보니 자랑할 일도 아닌 핑계인데, 그래도 더 털어놓자면 요즘은 몸 상태도 정신 상태도 정상 범위에 속하지 못하는 나날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 과한 운동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수면 부족일 때는 운동을 피하라고 하지 않는가? 다만 그렇다고 컨디션이 좋을 때만 운동하기로 하면 영영 운동할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자연스럽게 ‘런닝’ 보다는 ‘숨 돌리며 빨리 걷기’를 주력 운동으로 삼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잠깐 뛰고 빨리 걷기를 반복하노라면 아무리 귀로는 재미난 팟캐스트를 듣는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풍경들이 질릴 수밖에 없다. 아파트 단지가 탁 트인 곳조차 아니라 화단, 나무, 이런 것 말고는 전부 거대한 벽과 건물뿐이기 때문이다. 봄 가을이면 모를까 겨울은 차갑고 비참하고 앙상한 광경뿐이다. 거기에 산책하는 어른들 몇 명, 산책하는 개 몇 마리가 고작. 이것의 반복이니 질리지 않는 게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파트를 벗어나서 근처 시장을 배회하기도 하고 잡화점을 구경하기도 하는데, 기운차게 살아가는 사람들 얼굴이나 내가 살 만도 한 물건들을 구경하자면 확실히 재미도 있고 질리지도 않아서 좋다. 엊그제는 아예 신제품 스마트폰을 구경한다고 근처의 삼성 디지털 플라자까지 가서 물욕을 북돋우고 왔는데, 이런 식으로 놀자니 기분은 좋긴 하나 이건 운동량이 산책 이하 수준으로 떨어져서 걱정이다. 흥미로운 것을 보고 기분을 끌어올려도 나쁠 거야 없지만, 내분비물질의 균형을 바로잡아 장기적인 정신 건강을 누리려면 육체적인 운동량을 늘려야만 하니까 단기적 즐거움과 장기적 정신 안정의 중간점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여기서 증강현실 글래스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고 하면 좀 억지일까?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런닝을 돕는 앱중에서 좀비가 쫓아오는 상황을 가정해서 실감나는 소리를 들려주며 좀비와의 거리까지 설정해주는 것이 있는데, 증강현실을 이용하면 여기저기서 쫓아오는 좀비를 직접 보고 도망치는 게임을 즐길 수도 있을 테고, 더 발전시키면 런닝과 산책 자체를 아예 롤플레잉 게임처럼 꾸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 단순한 것으로는 앙상한 나무에 가상의 벚꽃을 피우는 것도 기대할 만하다. 그런 기술이 보급되면 런닝을 돈과 시간이 없어서 못하지 재미없어서 못한다고는 못하겠지?
요즘 나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운동도 루틴에 추가해서 하고 있는데, 이것도 배경이 너무 답답해서 고역이다. 정체된 공기도 답답할뿐더러 한참 나아가야 겨우 센서등이 켜지니까 어둡기까지 해서 이게 지금 폐허를 조사중인지 거주중인 집으로 올라가는 것인지 모를 판이다. 이럴 바에야 아예 여기도 증강현실 기술로 정체 불명의 괴물이나 귀신이 쫓아오는 곳으로 바꿔버리면 운동이 박진감 넘치지 않을까 싶은데…… 성실하게 운동하는 대신 이따위 생각을 하는 것은 다 내가 나약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어디에나 나약한 사람이나 일시적으로 나약해진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하면 못 이룰 게 없다는 식으로 격려하는 건 서로 마음만 상하는 일이 될 공산이 크다. 그러니 그런 사람이 나약함을 극복하고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과학이 이뤄낼 수 있는 기적 혹은 복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운동에 지쳐서 해보았다.